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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정리 하다가 깜짝 놀랐던 일

 

 

어제는 어떡하다가 보니까 아침 뜨는 시각을 깜빡 넘겨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어머니 어디론가 떠나면서 부엌 식탁에 올려 둔 국물 식으면 곧바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저더러는 냄비에 남은 국물로 아침을 뜨라고 했었는데 뒤늦게 그게 생각나서 컴퓨터 책상에서 벌떡 일어섰어요.

 

그때가 바로 정오를 지난 지도 멀지 않았던 시각입니다.

부랴부랴 식탁에 덩그러니 앉은 국그릇을 들고 냉장고 문을 땄습니다.

 

냉장고엔 그제 시골에서 올라오면서 가져온 보따리(고기를 비롯한 잡다한 물건이 든 상자)에 끼었던 막걸리 통을 닮은 물통도 서 있네요.

거기에 처음 떴을 땐 뜨근뜨근했을 국물이 완전히 식었기에 인제는 냉장고에 넣어도 충분한 그 국물을 올리고는 물통에 얼음이 식었을지를 가늠하려고 그 물통을 들고 흔들어 봤습니다.

 

그저께는 시골에서 보낸 그 물통에 도대체 뭐가 든 줄도 몰랐지만, 설마하니 먹고 죽을 걸 담지는 않았을 걸 뻔히 알았기에 어머니와 저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그 물통을 훑어 마셨답니다.

'도대체 이게 뭘까? 도대체 이게 뭘까?' 어머니와 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뭔지 짐작이 안 갔던 겁니다.

'고로쇠라면 달짝지근했으련만…'

그런 식으로 우리 둘 같은 맘으로 의심도 해봤답니다.

차갑다 못해 거기에 든 것 너무나도 시원했었습니다.

 

그렇게 그 해괴한 액체 모두를 다 마시려고 했었지만, 막판에는 덜그럭거리면서 빠져나오지 않는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아직 덜 녹았던 탓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놈을 그냥 상온에서 녹이면 변질할 수도 있겠기에 냉장고의 냉장실에 넣어두었던 것이에요.

그 덩어리가 원체 적었기에 녹아봤자 물컵 하나에 반의반도 안 찰 적은 양이었을 게 뻔했거든요.

아^ 그랬는데 세상에 그 물통을 들어보니 묵직한 거 있죠?

'뭐야! 어머니 또 허튼짓(?)을 해버렸구먼^^^'

 

가끔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고깃국이 됐든 된장국이 됐든 그 국물 떠서 먹고는 냄비에 남은 국물 나중에 먹으려는데 그 양이 너무 적으면 거기에 영 점 일 초의 주저도 하지 않고 그냥 수돗물 틀어서 더 채우는 거 있죠?

그렇게 해서 다시 불을 지펴 데우면 국물은 많아지겠지만, 음식을 그리 조리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말려도 도무지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겁니다.

 

국물이 남은 거가 쪼끔 밖에 안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데우고 부족한 부분은 그것대로 따로 조리해야 옳은 방식이 아니겠어요? 물론 공(?)이 더 들 것은 당연하겠지만, 저는 그런 태도가 음식에 대한 식성에 대한 도리라고 여깁니다.

어머니 그런 이유로 거기 물통을 닮은 그 통에 그냥 맹물을 더 부었을 거로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어요(나중에 확인했더니 실제로 그랬데요).

 

밥솥을 열어보니 그득하니 밥도 있고 국솥에는 생선 대가리를 비롯해 뼈다귀가 작은 국물에 덩그러니 나뒹구네요.

화가 났습니다. '에이^~ 차라리 라면이나 끓여 먹자!!!'

 

지갑엔 여전히 십 원짜리 한 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상 은행과 연결해서 쓰는 제 카드(직불 카드-단말기를 통해 대금을 결제하면 대금이 고객의 은행 계좌에서 가맹점의 은행 계좌로 직접 이체되는 카드)를 써야 했습니다.

 

이달 치 장애 연금(중증장애인기초연금법안: 1~2급 중증장애인에게 기본급여와 생활급여 2가지의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법안. 장애인의 노후대책 마련을 위한 국가의 근본적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해 이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다. 최저생계비 100분의 150 이하에 해당하는 18세 이상의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기본급여 18만 원과 생활급여 20만 원, 즉 매월 최소 18만 원 최대 38만 원의 연금을 지급한다. 이 연금제도가 도입되는 대신 기존에 지급되고 있는 장애 수당은 폐지된다. 참고로 저는 매달 22만 원쯤 받습니다.)이 들어왔는지도 궁금하고 통장 잔금도 궁금했습니다.

장애 연금이 제때 안 들어오면 아파트 관리비가 참으로 난감해지거든요.

 

일단은 통장에 얼마쯤 남았는지를 알아야 라면을 사든지 국수를 사든지 했을 거잖습니까?

이렇게 되자 제시간(열한 시)에 아침 뜨는 건 이미 늦어버렸고 그나마도 뒤늦게 깨치고 먹으려 했던 시간도 더뎌지게 생겼습니다.

하여튼, 얼른 컴퓨터를 다시 켜고는 해당 은행 사이트에 들렀습니다.

하필이면 또 '보안 파일' 하나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며 그놈 설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처음엔 설치하고 나면 반드시 웹 브라우저를 새로 고쳐 달라는 주문까지 하데요.

그러더니만, 막상 설치에 들어가니까 브라우저를 종료해 달라고 주문합니다.

 

그렇게 그놈 설치하고서 다시 은행을 찾았어요. 그러고는 들어오자마자 계좌의 거래 내용 조회에 들어갔답니다.

'뭐야 이건! 이 날짜에 난 시골에 있었는데 어떻게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지!!! 그것도 연달아서 두 번이나???'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달랑 만 원짜리 한 장도 안 되는 적은 거였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통장에서 돈이 빠졌기에 흔히 말하는 바로 그 '맨붕'에 빠져 휘청거렸죠.

'혹시 내가 언제 문건 샀던 게 이제야 빠졌을까?' 그런 의구심에 거기 거래 명세에 나온 상표를 검색엔진에 찔렀건만 그런 이름으로 나오는 결과치도 없고 도무지 모르겠는 겁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그러다가 퍼뜩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 맞아! 휴게실에서 카드 썼었지---'

 

며칠 전엔 우리 고향 땅 시골에 제게는 삼촌뻘인 어르신이 타개하셨다는 소식을 우리 집 막내를 통해 들었습니다.

거기 어르신 밑으로 둔 아들 하나가 우리 막내와도 친구입니다. 그래서 친구들 간에 서로 주고받은 내용을 통해 알게 되어 우리에게도 전해진 거죠.

 

뒷날 바로 가려고 녀석이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함께 떠날 참으로 준비했는데 녀석이 돌아와서는 당장 내려가지 않고 내일 가도 늦지 않다고 전합니다.

삼일장으로 치르지 않고 어떤 이유에선지 나흘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꽂았던 이것저것을 모두 빼내고 입고 있던 옷도 모두 벗어서 내려놨어요.

동생의 휴가도 하루를 연기해서 냈다네요.

 

그렇게 하루를 늦춰서 내려가긴 했는데 만나는 마을주민들 하나같이 반가이 맞아줍니다.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노제를 지낸 고향 마을에서도 장지인 산자락에서도 모두가 너무나도 반가이 대해 주시니 상가의 엄숙한 상황에서 그런 거가 되레 묘(?)해지더라고요.

 

우리도 너무나도 오래간만에 시골에 들렀기에 내려온 김에 막내 친구 놈들 부모님을 찾아 몇 군데를 들러보기도 했답니다.

어느 댁에선 조그만 시골의 그런 위중한 상황임에도 어머니가 아파서 그분 병간호하느라고 집안에서 꼼짝도 못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거기 마을 앞바다(여기가 전남 고흥의 바닷가 마을이니까)에 엄청난 어장을 펼쳐 뒀기에 일분일초도 그 어장들 눈을 떼서는 안 되는데 초상집에 예우 갖춘다는 명목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에서 꼼짝도 못 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들렀던 곳이 바로 그 집이었는데 거기도 역시 막내 친구네 집이었지요.

이번에 그 어르신 돌아가시자 이번엔 이 댁 어르신이 마을에 최고령 어르신 축에 들게 된 그런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장지인 산에 있을 때 자꾸만 연락해서 우리더러 얼른 내려오라고 보채기도 해서 부득불 장지에서 대충 인사하고서 내려와 들렀던 집이 거기기도 했고요.

그렇게 내려오면서 길거리에서 만난 그 누구와도 우리의 만남은 푹신하고 살갑데요.

 

그러고 마침내 최고령의 어르신이 계시는 거기에 들어가니까 여태까지의 환영 인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엄청난 차림과 인사로 맞아줍니다.

마치 우리를 위해서 몇 달 몇 년을 걸려 준비라도 해둔 거처럼 말입니다.

 

문어로 죽을 쑤어 두질 않았나 낙지 무침이며 닭볶음탕에 양태를 비롯한 갖가지 생선구이에 신선한 떡이며 나물까지 더해서.

그 가짓수며 양이 어찌나 푸졌던지 입이 떡 벌어져서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을 정도였답니다.

 

그렇게 거나하게 대접받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나누다가 어느 한때는 잠깐씩 눈물을 훔치기도 했었답니다.

그 반가움이 그 살가움이 제아무리 크다 해도 우린 아무것도 못 한 채 그저 그 고마움을 마음에 안고 길을 나서려는데 거기 어르신들(막내 친구의 어르신이니까 당연히 우리에게도 그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우릴 그대로 보낼 태세가 아닙니다.

 

아무리 만류해도 도통 들으려고도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쌀 포대 하나에 생선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든 상자를 하나 더 받아안고 올라오게 됐지요.

 

광주에서 내려가면서는 어찌나 내리는 비가 세차던지 다음 날 장례를 어떻게 치를 수 있을지 걱정되더니만, 막상 장례 당일엔 하늘이 도왔던지 하늘은 온통 꽃구름에 쾌청하기만 했더랍니다.

우리 막내 산재 후유증으로 다리를 제대로 못 쓰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서 운전하는데, 저는 장애로 운전면허증도 취소돼버렸고 지금은 또 운전할 줄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동생한테는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런 막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겨우 휴게실에서 필요한 거 그냥 사주려고 했었는데 아무거나 필요한 거 고르라니까 달랑 스포츠음료 하나만을 치켜드네요.

 

그것 계산하고서 한참을 걸어서 돌아 나오다가 문득 아까 그 자리 어느 매대에서 봤던 간식거리가 눈에 밟힙니다.

얼른 되돌아가서 그것마저 사 들고 역시 현찰이 똑 떨어지고 없으니까 이번에도 카드를 긁었답니다.

 

바로 그랬던 까닭이 그렇게 후다닥 뇌리에 스쳤던 겁니다.

이걸 '건망증'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도 이미 늙었으니 '노망'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그러잖아도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시골 동생 '우락부락' 이는 저더러 '형님~ 언제 그렇게 늙어버렸소?' 그랬거든요.

저는 속도 없이 놈의 머리카락이 어찌나 짧으니까 오해해서 그만 저도 모르게 '야 놈아! 너 학교 갔다 왔냐? 머리가 왜 그래???'

'아따~ 형님~ 내 참! 허허~'

녀석이 벌써 삼십 년째 굴착기 같은 중장비를 끌고 일하고 있다네요.

 

장지에 들리기 전 마을 가운데서 노제 하는 게 너무 지루해서 저는 묘지가 다듬어지는 장지에 올라가 봤답니다.

그랬는데 글쎄 제게 형님으로 불렀던 어제의 그 친구가 거기서 굴착기로 터를 다듬고 있지 뭡니까?

거기다가 그 자리 어찌나 바닥이 돌과 바위로 험준했던지 굴착기 발이 자꾸만 덜컹거리고 돌 먼지가 피어오릅니다.

 

'어휴~ 노제는 끝나가는데 저리해서 제시간에 구덩이를 다 팔 수나 있을까?'

저는 녀석이 온통 정신 집중해서 쿵쿵 쪼아가며 일일이 바닥 걷어내는 건 아랑곳하지도 않고 오로지 시간 내에 장지를 마련해낼 수 있을지만 걱정되더라고요.

그야말로 제가 나쁜 놈이었지요. '손은 안으로만 굽는다'라는데 제가 꼭 그런 꼴이었습니다.

'시골에 멋진 동생!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랬는데도 동생 친구들이 저 아래서부터 손까지에 줄을 끼고 들고 온 관이 당도하자 머잖아서 약속이라도 한 거처럼 장지가 완벽하게 마련되더라고요.

 

장례식장과 같은 평지에선 조금이라도 도울 순 있었지만, 막상 그곳 장지로 올라가는 길은 비탈지니까 동생 친구들이 자꾸만 제 손을 밀치더니 이내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저는 끝끝내 가신 분의 운구에 접근하지 못했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떨 땐 마치 백kg의 돌덩이나 드는 거처럼 엄청나게 무거웠답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바꿔치기 당한 뒤로 저 역시도 나중에 누군가를 바꿔주려 했는데 그마저도 거부(?)당했답니다.

 

아^ 있었네요. 운구의 마지막으로 구덩이에 내릴 때 그 순간에 함께 했으니 그 역시 천운(?)이었고 저로선 행운의 천만다행이었었네요.

 

그리고 그것도 깨쳤답니다. 막걸리 통을 닮은 그 물통에 담긴 그것이 뭔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거기 함께 담은 생선들 따스운 날씨에 상하지 않게끔 넣어둔 얼린 물 담은 통이었음을 그제야 깨친 겁니다.

그런 거 깨치면서 어머니께 품었던 서운한 감정도 순식간에 달아나데요.

그래서 고기 머리며 뼈만 나은 국솥에 불을 댕기고는 한편으로는 밥솥에서 밥을 펐지 뭐예요.

라면 사러 가려는 맘도 벌써 십 리 밖으로 내빼고 없어졌으니 인제 밥만 축내면 될 일이었답니다.

 

아~ 이제야 또 한 분께 감사 인사와 그분의 남편께 사죄 인사 올립니다.

- 장지에서 한 길까지 그 거리가 얼마(1km도 넘음)가 얼마라고 세상에 거기까지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찾아와 주신 형수(응 인제 아주머님이라고 해야 하나?)님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

- 그리고 종신이 형님(응 인제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장지에서 형님을 못 알아봐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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