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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1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에게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에게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비가 어디서 무엇과

부딪히는가에 따라 그 소리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소리, 처마 밑 깡통에

떨어지는 소리, 비닐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창문에 떨어지는 소리, 나무의 어깨 위에 떨어지는 소리,

호수 위에 떨어지며 둥글게 퍼져나가는 소리….

사람도, 사랑도 그렇다.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 그 소리가 달라진다.

깊은 소리, 가벼운 소리, 행복한 소리, 시끄러운 소리,

슬픈 소리, 아름다운 소리….

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

 

- 권대웅 <당신이 사는 달> -

 

 

누구와 어떤 인연으로 만나는가에 따라

우리 삶은 참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함께 있어 더 밝아지는 사람도 있고,

더 검어지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과 맺은 인연의 끈들은

서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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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여기서 만났던 그 대다수도 그랬었지만, 이번에 만난 이 글도 무척 크게 다가오네요.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수더분하면서도 절제됐으며

단순한듯해도 매우 섬세한 감성의 글입니다.

권대웅 작가님 고맙습니다.

 

 

그렇잖아도 이발(아예 한 푼도 안 받거나 제가 우락부락 화내면서 난리라도 치고 생떼를 부리면 그나마 그 반절도 못 되게 받는 그 미장원에서 하는 이발)하고 들어온 제 마음 무척 홀가분하거든요.

일회용 면도기를 월회용(?)으로 아껴쓰다 보니 날이 무뎌진 까닭에 면도하면서 이따금 얼굴의 특정 부위 베 버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낯이며 콧잔등까지 두 군데나 베내고서 핏기를 내비치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일이면 부산에 누님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요.

 

60년대 초에 태어난 살아온 제 또래는 다들 비슷한 처지에 살았을 겁니다.

먹을 게 참 달렸던 시절이니 우리와 같은 서민의 삶이 얼마나 궁핍했을지 짐작 가기도 하거든요.

물론 저는 그 가난이 어느 정도였을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제가 기억하는 순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되짚어보려도 그렇고 어머니 말씀을 빌려도 그 대충은 알만합니다.

 

모두가 궁핍한 그 시절에 시댁살이 청산하고서 두메산골에 오두막 지으면서부터 고생 길이 더 커졌다는 우리 어머니…

그 오두막 지으면서 돌담 두르던 어느 날 아버지 느닷없이 군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며 제 위로도 두 누님(쌍둥이)이 있었는데 누가 봐줄 사람도 없어 방안에 눕혀둔 채 밭매고 들어와 보니 시름시름 앓더니 차례로 죽었다는 이야기…

그 뒤로 얻은 게 저였었는데 먹을 게 없었으니 젖이 말라 안 나오더라는 이야기…

그 탓으로 이모님한테 잠시 맡겼었는데 어느 날 찾아가 보니 이모님 아이(사촌 형)랑 나란히 누워서 너무나도 자지러질 듯 울더란 이야기…

 

그 꼴을 못 보겠기에 데리고 돌아오려는데 자신의 장녀를 달려 보내서 그 누님이 오두막에 들어와 저를 건사했다는 거였답니다.

다니던 학교(요즘 말로 초등학교)도 작파하고서 산골에 들어와서 날이면 날마다 저를 업고서 개천이고 논두렁을 쏘다녔네요.

제 식량을 보충하려고 말입니다.

그 식량이란 것이 다른 것도 아닌 개구리였답니다.

 

바로 그 누님이 내일 만나러 가려는 부산에 사는 누님입니다.

본래의 목적은 사촌 동생 놈의 결혼식이 있기에 거기 들리러 가는 길인데 함께 가는 일행(전라도 친인척)과 떨어져서 우리(어머니와 나 그리고 막냇동생)는 외따로 가겠다고 이미 주고받은 상태입니다.

 

그 누님에게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서 뒷날엔 결혼식장(로터스 웨딩홀)에 갈 예정이거든요.

그런 누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제가 아무것도 가져갈 게 없으니 조금은 무겁기도 하네요.

더군다나 제가 이혼한 사실도 모를 테니 그거에 대해서 물어오면 그건 또 어떻게 해야할 지 그것도요.

 

하지만 기왕에 벌어진 일 어떡하겠어요?

그 시절 자기 삶은 다 일그러진 줄도 모르고 산골 오두막에 들어와서 어린 절 업어 키웠던 그 살가운 누님을 생각하니 제가 겪는 사정은 아무것도 아닐 성 부립니다.

일단은 우리 누님 얼굴부터 봐야겠습니다.

그리하자고 제가 또 그 길(친인척 일행과 떨어져서 따로 가는 길)을 주장하기도 했었으니까 말이에요.

 

부산의 우리 누님!

내일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간이라도 절대로 아프지 마십시오!!!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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