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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12 은행 옻 그리고 고추가 불량 애호박 돼버리다

은행 옻 그리고 고추가 불량 애호박 돼버리다

 

어제 일인데 참으로 오래간만에 상큼한 들녘으로 나가서 가을바람 듬뿍 쐬고 온 것까진 무척 좋았습니다.

문제는 돌아오면서부터 예견됐던 상황인데 어젯밤을 지새우면서 오늘 아침 새벽이 되어서야 그 참상(?)을 확인했네요.

 

어제 그곳 담양 쪽의 대나무 숲 공원을 뒤로하고 돌아오면서 지난날 그 어느 때보다도 한적하고 흐뭇했었거든요.

그래서 평소 다니던 넓은 길을 마다하고 좁은 길을 달렸든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일부러 좋은 길 마다하고 나무 우거져서 사방으로 낙엽이 채인 곳을 비비기도 했답니다.

 

왜냐면 자전거 바퀴에 낙엽 밟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꼭 듬뿍 쌓여 온 천지가 하얀 곳 눈 밟을 때 사각거리며 나는 소리와 매우 닮았었거든요.

좋았습니다. 말도 못하게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리 벗어나서 한적한 공단길에 들어섰는데 그 길에 심은 가로수들은 온통 은행나무더라고요.

온통 노랑인 은행나무도 예뻤고 주변에 떨어진 은행잎들도 무척 예뻤어요.

 

워낙 천천히 달렸기에 한창이나 감상에 빠졌답니다. 그랬던 감상이 불현듯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은행나무 효능에 대한 생각으로 바뀐 겁니다.

얼마나 효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은행나무나 은행잎이 벌레 퇴치하는 데는 그 어떤 살충제 못지않을 천연 방충제라고 들었거든요.

 

요새는 거의 안 보이지만 요 며칠 전 그 순간엔 웬일로 깨알보다도 작은 개미들이 방안 곳곳을 지나다녔었거든요.

바로 그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서 은행잎들을 몇 장 주워가려고 그랬답니다.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 걸친 채로 내리지도 않고 엎드려서 은행잎 몇 장을 주우려는데 그것 생각만큼 쉽사리 잡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바닥에는 그것 은행잎만큼이나 은행알도 엄청나게 굴러다니데요. 그것들 보자마자 잽싸게 내려섰지요.

 

'하나둘 셋 넷' 어차피 씨는 딱딱해서 먹을 수도 없었으니까 뱉어내고서 부드럽고 달콤한 껍질만 계속해서 주워 먹었지요. 촌놈의 버르장머리 어디 가겠습니까?

얼마큼 먹다 보니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잡히는 대로 주머니에 주워담았죠. 정작 은행잎 줍는 일이 나중에서야 떠올랐기에 그곳에 섰던 체면치레로 은행잎도 몇 가락 주워담았답니다.

그러고는 쌩쌩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머니한테 그것 자랑 늘어놨더니 되레 야단칩니다. 어머닌 자신도 전에 겪었다면서 옻 올라서 고생하니까 얼른 버리라고 성화입니다.

 

그랬어도 야금야금 먹었답니다. 어쨌든 맛있으니까.

 

그런데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면서 낌새가 묘해지더라고요. 더우나 추우나 훌러덩 벗고 자거든요.

대신 무더운 여름날엔 얇은 이불을 덮고요, 냉방(최하 온도 10℃에 맞춰둔 귀뚜라미 보일러를 뺀 그 어떤 난방장치도 쓰지 않고 있음.) 비슷한 겨울철엔 두꺼운 이불을 덮었으니까.

그런 모양새로 잠드는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닌데 밤중에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데요. 팔등에 상처가 난 곳이며 아래쪽도 가려웠는데 핵심 사타구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려웠지요.

 

얼마나 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가려워서 꾹꾹 버텨내다가 마침내 새벽녘에 샤워라도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서야 그것이 장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네요.

 

조막만 했던 고추가 퉁퉁 부어서 거대한 고구마처럼도 보이고요, 애호박처럼도 보였습니다.

그것도 불량 애호박처럼 생겼는데 묘하게도 그 끝 부분의 대가리는 그대로인데 몸통 둘레가 울퉁불퉁 엄청나게 커진 겁니다.

 

더군다나 대가리 발라당 드러났던 본래의 모습 오간대도 없고 그 절반을 축 늘어지고 뭉툭한 껍질이 덮고 있습니다.

놀랍다 못해 초조하고 불안해졌지요. 얼른 물 틀어서 빡빡 문지르고 벗겨봤는데, 이 괴물 같은 놈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오로지 몸통 부분만. 난생처음입니다. 이렇게도 커진 모양새 놀랍습니다. 엄지와 중지 손가락 가득히 힘줘야만 닿을 정도로 굉장히 커졌습니다.

 

자연적으로 이렇게 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옻이 올라서 하필이면 사타구니 그 자리가 퉁퉁 부어서 그런 것이니까 이 황당한 모양새가 좋게도 싫게도 안 보이데요.

마침내 마땅한 조처를 하고 시간이 흐르니까 축 늘어져서 개떡 같은 모양새로 돌아갑니다.

 

아침엔 그래도 주어온 몇 가닥 안 되는 은행잎 추려서 혹시라도 다시 나타날지도 모를 개미가 끓었던 자리에 뒀었는데 물이 안 나와서(아파트 물탱크 청소하는 날이었기에) 남은 은행알을 씻는 건 늦은 오후에야 가능했답니다.

늦은 오후에 물이 나오는 것 확인하고서 한바탕 또 후련하게 샤워했지요.

 

지금은 사타구니 가려운 게 살짝 죽은 것 같은데 대신 귓불도 가렵고 눈자위 쪽도 가렵네요.

저녁에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 얼굴이 퉁퉁 부었다고 그러더라고요.

 

바보 같지만, 내일은 저기 말려둔 남은 은행알 몽땅 먹어치울 겁니다.

제 몸은 옻에 약한 체질인가 봐요. 예전에도 한번 옻닭 먹은 뒤 옻이 올라서 무척 고생한 적이 있었으니까…

기왕에 고생할 것 한번 해 보겠습니다.

개념 없이 맹목적인 지금의 이 '멍청함'이 이기나 불량한 체질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면 언젠가는 바뀔 수도 있다는 '긍정의 힘'이 이기나를 말이에요.

 

~ 고추잠자리 - 01 ~

 

~ 고추잠자리 - 02 ~

 

~ 고추잠자리 - 03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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