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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_주방세제_통의_뚜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4.18 우산 받쳤는데도 양어깨 늘씬 비에 젖어 들어온 날

우산 받쳤는데도 양어깨 늘씬 비에 젖어 들어온 날

 

어제는 아침부터 우중충한 날씨였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어머니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로 일자릴 얻어 격일로 나다니시는데 어제가 마침 그 순번 일이었지요.

어제는 그것뿐만이 아녔습니다. 어제도 우리 마을에 그 사람들이 온답니다. 그러면서 만약에 비가 안 오면 저더러 거기로 나와 달라고 그랬거든요.

적당한 공터에 상품 전시장을 급조하고는 노인네들 불러모아 별의별 물건 팔아대는 장사치가 그 사람들인데 바로 그런 치들이 들어오는 날이랍니다.

거기선 말이 별의별 물건(잡곡, 잡과, 달걀이나 여러 가지 떡 등등)이지 그따위를 시중가보다 턱없이 싸게 팔긴 팔지만 제 생각엔 싸게 파는 진짜 이유가 '수백을 넘어서는 목적 용품(건강보조식품 또는 건강보조기구 등등) 팔기 위한 떡밥!'으로 여기기에 이는 '서민을 갖고 노는 사기 상술'이라고 부릅니다만, 우리 어머니 어처구니없게도 거기에 관심이 높으십니다.

물론, 저의 반발 나올 때마다 '내가 바보 쪼다냐 미쳤다고 그런 비싼 걸 사게? 나는 그렇게 비싼 건 못 싸니까 산 것만 사오잖냐!' 하시면서도 '뉘집 자식들은 그 비싼 걸 몇 개씩이나 사줬다느니…'하며 아쉬워하곤 했더랍니다.

그것 싼 물건도 아무나 내키는 대로 사 갈 수 없게끔 규칙이 있어 서둘러야 가능하다네요.

그런 점에서 어제는 떡을 싸게 많이 주니까 무거워서 들고 올 수 없으니 저더러 들고 오라고 부탁했던 겁니다.

 

어차피 큰돈들일 처지도 아니니 어머니 교회 나다니시는 거냐 거기에 가서 이것 도무지 말고 안 될 일이지만, 그 장사치 나불대는 대로 입만 뻥긋하며 불공드리는 거나 매한가지라고 여겼습니다.

그 역시도 '노인네의 문화생활' 중 한 양식으로 봐주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것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제 나름의 범위 안에서 말입니다.

그런 까닭도 있는데 마침 어제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인 떡을 싸게 준다는 말까지 들렸으니 마다할 이유 거의 없었지요.

그랬든 저랬든 비라도 많이 오면 다 틀린 거였기에 은근히 걱정이 들더라고요.

 

초등학교에서 급식 수발도 마치고 곧바로 전시장으로 이동해서 자리 잡으려면 오후 세 시쯤이면 가닥 잡힐 테니 그때쯤 연락하마고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컴퓨터에서 쓸데없는 짓거리에 몰두하다가 어느 순간에 시계를 봤더니 오후 두 시가 넘어버렸습니다.

부랴부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우중충하더라고요. 그래도 조바심에 아예 거실 밖으로 나와서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밖은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 오늘은 글렀구나! 어떡하지? 아침을 들까? 이발하고 나서 아침 들까?'

 

시간이 꽤 됐건만, 그다지 배가 고프진 않았습니다. 해서 이발을 먼저 생각했는데 세수도 안 한 몰골로 무작정 이발소 찾는다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닐 듯도 싶데요.

하여 세면기 거울 앞에 섰는데 턱수염 콧수염이 또 돼지 털 갔습니다. 한참이나 공을 들여서 말끔하게 면도해버렸죠.

 

그런 뒤에 바깥을 내다봤는데 아직도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이발도 이발이지만, 오늘 같은 날 비 구경 좀 할까…'

지금은 몸이 안 따르니까 해볼 수도 없지만, 그 옛날 멀쩡할 땐 비 맞기를 무척 즐겼습니다.

보슬비 보슬보슬 내리는 감촉 / 좀이라고 굵어지면 처마 끝에 주룩주룩 떨어지는 소리 / 천둥·번개라도 치면 오염된 하늘땅 깔끔하게 초기화하는 기분…

어린 시절 산중에서는 태풍에 개울가 돼지가 떠내려갔어도 바닷가 내려와서는 돌절구통이 바다로 끌려가고 담장이 무너졌어도 또 초가지붕 다 걷혀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어도 저는 그 비가 좋았습니다.

그런저런 낭만적 감성에 더해서 마침 요즘 들어 부엌의 주방세제가 바닥났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또 이럴 때 비옷이 있다면 비옷 입고서 자전거 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하니 내친김에 비옷도 사고 주방세제도 사고…

 

주머니로 지갑이며 핸드폰을 챙긴 뒤 방구석에 처박아둔 멜빵가방을 꺼냈습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약간 묵직하데요. 해서 열었더니 그 안에 마침 꼬막만 한 우산 한 자루가 들었지 뭡니까?

꺼내서 펴보니까 우산이 2단으로 접힌 건 전에 자주 봤었는데 요건 3단으로까지 접혔지 뭐예요?

어쨌든 자전거를 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놈을 믿고 길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이런 잡다한 물건 사려고 했을 때 제가 자주 들렀던 가게가 우리 마을 '천원 마트'였는데 이미 맘속엔 그 자리가 낙점되었기에 그리로 가는 중입니다.

제 몸이 워낙 비틀거리니까 오가며 누군가와 마주쳤을 땐 미리 제가 가만히 서 있어야 했지만, 특히 어제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더욱 그랬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더욱 몸이 떨리거든요. 그런 날이면 머리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니까 더욱 흔들렸겠지요?

'이런 날은 내가 많이 배려해야지…' 그런 맘이 컸었는데 제가 오가는 사람보다는 비한테 너무 배려했나 봅니다.

이미 양어깨가 흥건해졌어요. 폭풍우도 아니고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빈데도 말입니다.

 

~ 콩밭 매는 아낙네야 - 01 ~

 

한참이나 걸어서 목적했던 '천원 마트' 닮은 집에 들어섰지요. 그 자리 늘 아줌만지 아가씨들이 주로 점원으로 있던데 어제따라 거기 계산대엔 웬 점잖은 아저씨가 있습니다.

'오늘은 점원이 다르네~'

주방세제도 예전에 봤던 거와는 달리 예상 밖으로 비쌌습니다. 또 비옷은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였지요.

그랬어도 기왕에 나왔으니 가장 저렴해 보이는 봉지로 된 주방세제 하나를 들고나와서 아저씨한테 비옷을 물었답니다.

했더니 친절하게도 '옆집으로 가보라는 저로선 상당히 아리송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거기서 나와 옆집으로 향하면서 그제야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봤지요.

아~ 글쎄 아저씨가 말한 옆집이 바로 그 '천원 마트'였지 뭡니까?

 

드디어 천원 마트에 들어가서는 구시렁구시렁…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옆집의 아저씨한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까 비싸게 샀던 주방세제 무르지 않고는 화딱지가 나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그것 무르려고 다시 찾아가서는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맘·화끈거리는 제 얼굴 홍당무 됐을 게 뻔했습니다.

그래도 기어이 무르고는 천원 마트에 다시 찾아와서 그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그보다 조금 작은 그랬지만, 그 둘을 보태면 더 많은 주방세제 두 봉지를 쌌답니다.

바로 천 원짜리 두 개를 말입니다. 마땅한 비옷이 안 보여서 대충 하나를 들고나와서 계산대로 갔더니 그건 또 유아용이라며 다른 점원이 성인용으로 세 걔를 들고 나왔습니다.

개 중에 하난 일회용이라서 싸긴(천원) 했지만, 그놈 걸치고 자전거 타기엔 너무도 약해 보였지요.

해서 나머지 두 놈 중 그나마 짱짱한 놈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모두 합쳐서 5,800원을 줬는데 그 순간에 돌아서면서 깜빡 현금 계산을 왜 올리지 않았느냐고 따지다가 비옷 가격이 얼마쯤인지 묻질 못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까 5천 팔백 원에서 2천 원 빼면 3천 팔백 원이 되겠네요.

 

그렇게 비틀비틀 1km 남짓을 걸어오면서 혹시나 하는 맘에 어머니께 전화를 넣었는데 후후 우리 어머니 전화기 전원이 꺼졌답니다.

비틀비틀 집 앞에 다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발관을 봤지요.

이발하러 가려면 사전에 반드시 손님 한산한 걸 확인해야 하니까 물어야 했는데 전화할 수가 있어야지요.

집에서 나오기 전에 다음지도로 검색해봤는데 전화번호 너무도 흐릿했었거든요.

이번엔 코앞에 있으니 너무도 선명합니다. 얼른 핸드폰 들이밀었네요.

 

~ 콩밭 매는 아낙네야 - 02 ~

 

집에 와서는 입고 갔던 완전 겨울 방한복 맵시였기에 얼마나 헐레벌떡 들어왔던지 너무도 더웠습니다.

그래서 잽싸게 훌러덩 벗어 빨랫줄에 걸어놓고는 부랴부랴 쫙 날리려고 샤워기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지요.

그렇게 들어간 만큼 부리나케 씻고는 나와서 주방세제 통에 봉지 세제를 따랐답니다.

 

'뭐든지 양이 많으면 헤프게 쓴다.'는 어머니 말씀도 생각나고 해서 가득 채우지도 않고 절반쯤 채운 뒤 뚜껑을 닫기로 했죠.

비록 절반 정도밖에 안 찼지만, 그래도 묵직하니까 넘어지면 흘릴 수도 있겠기에 힘주어서 조여봤지요.

그랬었는데 그 약력 너무 셌을까요? 아니면 통이 낡아서 그랬을까요? '

'하더니 주방세제 통 뚜껑이 깨지고 터져버렸습니다.

'아휴 이런~'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뛰겠데요.

 

그걸 강력본드로 붙여볼까도 생각했는데 파손된 부위 너무도 컸습니다. 또한, 강력본드로 붙였다 쳐도 그게 제대로 작동해줄지 그것도 장담 못 하겠고요.

해서 이미 파손된 부위 완전히 뜯어내고는 그것 뚜껑이 밖으로 달아나지 않게끔 불에 달군 송곳으로 작은 구멍 두 개를 낸 뒤 나사못 두 개로 고정해 봤습니다.

그래놓으니까 뚜껑이 도망갈 염려는 없겠으나 만약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콸콸 쏟아질 판이었어요.

 

아무튼, 그렇게 임시처방해놓고는 어는 참에 깜빡 좋았는데 깨났더니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일어나서 소변도 볼 겸 화장실에 들렀는데 그때야 드디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 글쎄 어쩌면 3~4년쯤 전에 이미 바닥났을 빈 샴푸 통이 두 개나 있지 않겠습니까.

 

샴푸 통이나 주방세제 작동원리가 같았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순간입니다.

그 밤중에 죽자사자 씻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하나는 통 자체를 눌러서 작동하는 거라 그놈은 써먹을 데 없을 거 같아 씻기를 그만두고요.

주방세제도 가져와서 뚜껑을 푼 뒤 씻은 샴푸 통 뚜껑을 대봤지요. 같은 크기라면 바로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맞지 않았습니다. '후~ 이런!'

그로부터 그놈 샴푸 통 발가벗기려고 또 얼마나 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헹구고 씻고~ 헹구고 씻고^^^

 

그렇게 샴푸 자국 눈곱·티끌 아니 미세먼지만큼도 없게끔 발가벗긴 뒤 드디어 그놈 샴푸 통으로 주방세제 통에 담겼던 세제 몽땅 옮겼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가 아까 많이 안 채우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데요.

그것 따르는 동안 샴푸 통 끝에서 거품이 일기에 혹시나 넘치는 줄 알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후후 불면서 따랐더니 끝끝내 다 들어가데요.

이렇게 해서 헌 샴푸 통이 주방세제 통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지요.

 

이렇게 글 쓰는 동안 잠깐 작업표시줄 봤더니 벌써 아침 여섯 시 20분이 됐습니다.

'어^ 큰일 났다!!! 동생 벌써 가버렸으면 어떡하지???'

녀석이 아침 출근하는 것도 모르고 깜빡 보내버릴 때가 잦았습니다. 그러면 은근히 미안해지는 거 있죠?

그래도 한집에 사는 처지에…

 

그랬기에 얼른 문 열고 나갔더니 마침 아직 밥 먹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저를 쳐다보면서 '야! 저기 샴푸는 뭐고 그건 또 웬 옷이냐?' 그러네요.

나가기 직전에 어제 사들인 비옷이 어떤 건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놈 꺼내서 막 입고서 확인해가던 순간이기도 했었으니까.

 

~ 콩밭 매는 아낙네야 - 03 ~

 

그때야 저도 샴푸 통에 어떻게 주방세제가 들어갔는지를 설명해가면서 안심시키는 중인데 우리 어머니 제 비옷이 탐났었나 봅니다.

해서 그길로 어머니께 몇 마디 전하고는 비옷 어머니 방에 넣어두고 왔지요.

저는 이제 그 가격대로 알고 어떻게 사들일지도 알기에 이 아침의 출발이 편안해졌어요.

 

~ 콩밭 매는 아낙네야 - 04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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