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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03 내가 과연 지금도 예전처럼 날 수가 있을까?

내가 과연 지금도 예전처럼 날 수가 있을까?

 

사람이 날다니 그 무슨 개 코딱지 같은 잡소리나 싸지르고 있느냐고요!

창문을 열었더니 지금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해서 베란다로 나가 봤습니다.

길거리로 두런두런 우산 몇이 지나갑니다.

시내버스도 지나갑니다.

 

'으음. 비가 오기는 오는가 보다. 저건 아마도 봉선 27번이 맞을 거야!'

베란다에서 바깥이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쪽으로 옮겨오면서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치는 겁니다.

'내가 여기를 뛰어내리면서 곧바로 날아갈 수 있을까? 으흐흐… 어쩌면 못 날지도 모르지!'

우리 아파트가 7층이거든요.

7층 정도의 높이라면 바닥에 착지하기 전에 부양능력을 키워서 다시 비행할 수 있을 거리라고 예전엔 느꼈었거든요.

 

어디서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을 지녔는고 하면은요?

순전히 꿈 때문입니다.

그 나잇살 오십도 넘긴 놈이 지금도 손자뻘의 어린애처럼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실제로 가끔 꾸거든요.

그 꿈속에서 누군가한테 쫓겨서 나는 꿈도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길을 가다가 낭떠러지나 높은 벽 만나면 그 험한 길 에둘러 가기가 귀찮아서 그냥 날아가는 거예요.

그 나는 방식이 참새나 잠자리처럼 그 자리에서 훌쩍 박차고 날아내는 게 아니고 제가 부양능력을 갖추려면 예비 힘이 모여야 가능한 거였거든요.

쉽게 말하면 멀리 뛰기 하는 운동선수가 도움 판 밟기 전에 사전에 도움닫기 하는 것처럼 저도 그만한 날갯짓이 필요했던 겁니다.

혹시 바람이 없는 곳에서 연을 띄워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날씨에 연을 띄우려면 순전히 연 스스로 부양능력을 발산해야 가능하잖아요?

그러려면 우린 연줄을 점점 멀리 내보내면서 자꾸만 낚아채서 뜨는 힘(연 주위로 빠른 공기가 흐르면 베르누이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에요.)을 만든 경험이 있을 겁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땅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까지 마구 팔을 휘저어서 뜨는 힘을 만들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날았으니 그것이 아무리 꿈이라고 한들 공간을 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한 번씩 날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겁니다.

잠시라도 편한 길 택했다가 시간이야 많이 줄였겠지만, 거기에 소모해버린 에너지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것도 주로 불가피한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이 위쪽으로도 날아야 했지만, 그 대부분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용히 날아 착지하는 거였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몇 년 전에 태국으로 단체 여행 다녀올 기회가 있었답니다.

그 여행 일정에는 아주 빨리 달리는 수상보트에 마치 행글라이더처럼 생긴 것을 매달고서 마구 달리면 날아가는 코스가 있었지요.

제가 그것 가장 먼저 하겠다고 지원해서 부랴부랴 나섰건만 제 걸음이 불편한 탓에 다른 놈한테 그 순번 빼앗기고서 아쉽게도 그 차이가 단 몇 초이긴 했어도 맨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시승자가 돼버렸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없이 늘 맨몸으로도 날았었는데 그토록 단단한 안전장치를 매달고서 나는 상황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었겠어요?

 

좀 전에 거실에서 들어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태 제가 했던 건 나는 게 아니고 떠 있는 거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벌새가 비행고도 유지하려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갯짓하는 초고속 사진 보신 분 계실까요?

 

저도 그런 거였을 거에요.

어떻게 해서 공중에 뜨긴 했는데 그 부양 고도 유지하려고 온몸을 다해 휘저었거나 그 환경에서 약간의 힘 편향을 주어 방향을 바꿨을 개연성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또 다른 생각이 걱정과 함께 닥쳐오더라고요.

'그렇다면 난 인제 물속에 들어가면 그대로 가라앉을지도 몰라!'

 

사실 전 수영할 줄도 모르거든요.

바닷가에 오랜 세월 머물다가 보니 그 소금기 염도가 주는 부양능력 탓에 가라앉지 않았을 뿐입니다.

내용은 좀 다른 내용이지만, 요번의 세월호 사태이야기나 저번의 천안함 사태 때도 그랬을 겁니다.

사람 몸으로 물속에 특히 바닷물에 들어간다는 것!

그것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심 2~3m의 낮은 수심이라면야 저보다도 어린 초등학생들도 맘대로 식은 죽 먹기로 들락거리겠지만, 수심 10m를 넘어선 곳에 들어가기란 길가다가 술 취한 놈이 오줌이 마려웠는데 길가에 세워둔 빵빵한 시내버스 타이어 안으로 그 오줌 채워넣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수압 탓에 자꾸만 떠버리기에 물밑으로 내려가기도 힘든 일이지만, 엄청난 무게의 쇳덩이를 차고 어떻게 내려갔다손 치더라도 그 압력 탓에 고막이 안 터진 것만 해도 기적이고 몸 전체로 들어오는 강력한 압력은 우리 일반인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속에 들어가면 가만히 떠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민물에서는 그야말로 완전히 맥주병이 되고 말지요.

 

맥주병이라고 하면 좀 심했고 그래도 바닷가 살았던 놈이니까 '물 만난 제비(?)'의 표현이 뭐 없을까요?

네. 제가 민물에 들어가면 '얇은 비닐에 싼 솜사탕'쯤 될 것입니다.

그 비닐봉지 한끝만 터졌어도 우아한 솜사탕에서 곧바로 맥주병보다도 훨씬 참혹히 그 흔적마저도 녹아버릴 맹추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인데요.

그날도 지금의 제 생각과 매우 똑 닮은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중학교 2학년이나 3학년 때쯤이었을 거에요.

 

그 뒤로 월남전에도 다녀왔다는 마을에서 엄청나게 용감했던 어머니 쪽으로 먼 친척이었기에 저도 삼촌이라고 불렀었던 그분이 우리 집 아래로 더 바닷가 쪽에 축대를 쌓고서 집을 짓고 살았기에 우리 집이 결국은 두 번째 집이 되었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이 가장 바닷가였어요.

그래서 흙마루와 방 사이에 난 좁다란 마루에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마당 끝과 연결된 선창으로 달려가서 그대로 마치 수영선수가 다이빙이라도 하듯이 물속으로 첨병 처박히곤 했었답니다.

그렇게 뛰어내릴 땐 대가리부터 처박혀야 멀쩡했는데 그 대부분은 배때기부터 처박혀서 아랫배가 터져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잦았거든요.

 

 

그날은 문득 '그럼 어디 한 번 실험해봐?' 그랬거든요.

우리 마을 선창에서 옆 마을까지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주저하지 않고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곧바로 선창 끝으로 내달렸지요.

 

제가 아는 영법이라곤 기껏해야 개구리헤엄이 전부였거든요.

거기에 살짝 더 보탠다면 형님들이 몸뚱어리 좌우로 뒤틀면서 휘파람 날리면서 휘었던 어리어리 자유형이 다였답니다.

그렇게 출발해서는 의기양양했었는데 우리 마을에서 옆 마을에 이르는 거리 그 절반도 못 미쳤는데 벌써 온몸이 지쳐서 죽겠는 겁니다.

 

'들풍썰도!'

저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그때 이미 홀몸으로 그물을 놓거나 거둘 줄 알았거든요.

바로 바닷물 속 물 흐름의 방향입니다.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던 파도가 어떻게 치든 그런 것과 무관하게 바닷일에서는 물밑으로 물이 흐르는 방향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 방향을 살펴서 그물을 어디에서부터 어떤 방향으로 놓거나 거둘지가 결정되니까 말입니다.

그걸 모르고 무작정 덤볐다가는 그물이 엉켜서 홑몸이 아니라 여럿이라도 도저히 그 일을 제대로 추스를 수가 없기에 저렇게 약칭으로 외우고 지냈답니다.

 

'들풍썰도!'

시골의 우리 마을이 '고흥'에서도 '풍양면'과 '도화면'의 경계에 있었는데 저 뜻은 바닷물이 '밀물'일 때는 바로 곁은 풍양면 쪽에 '풍남'으로 간다는 이야기고 '썰물'일 때는 도화면 쪽으로 바로 옆 마을엔 '여의천'이란 곳이 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여의천이라고 부르지 않고 제 나름으로는 그쪽이 통째로 도화면이니까 '도'자만 따서 썰물 때는 '도화'쪽으로 흐른다는 말을 함축해서 '들풍썰도'로 외웠습니다.

일찍이 아버지 돌아가시자 바닷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제가 알아서 해내야 했었거든요.

어찌 보면 이는 '생계형 축약어'가 되겠습니다.

 

어쨌든 그날 바닷물의 흐름도 살피지 않고 호기심에 이끌려 무작정 뛰어든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날 물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내심 왕복 반 시간으로 충분할 걸로 믿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실제로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은 반 시간이 아니라 시간 반도 더 걸렸을 겁니다.

얼른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그딴 것 제대로 측정도 안 했을 겁니다.

 

여의천이라는 마을은 저의 외가가 있었던 마을이기도 하지요.

또 그 시절은 제가 어렸으니까 육로로는 자주 갈 일이 없었지만, 바다에서는 노 젓고 나다녀서 그쪽 연안으로 그물도 자주 쳤었거든요.

그런 이유로도 크게 생각지 않았는데 상상했던 거 이상으로 훨씬 힘들더라고요.

 

인제 그 길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해 볼 생각입니다.

딱 삼십 오륙 년 전에 헤엄으로 오갔던 그 바닷길 오늘은 '다음 지도'에서 추산해 볼까 합니다.

 

- 500m? 1,000m? 그도 아니면 1,500m? 아무리 왕복일지라도 설마 2,000m까지야…-

 

잠시 후에 확인해보고 그 지역 그림이나 결과를 여기에 싣겠습니다.

그 내막이 어떻게 나올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서 무척 길게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으흠…

 

 

흐흐흐…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도 뻔히 드러나네요.

좀 전까지 확인해 보기 전의 애초의 예상은 저보다 훨씬 짧은 이거였었거든요.

- 50m? 100m? 그도 아니면 150m? 아무리 왕복일지라도 설마 200m까지야…-

기가 막혀서 얼른 동그라미를 하나씩 더 붙여 버렸지요.

바닷길 그토록 나다녔다는 애가 그것 하나 눈짐작하지 못해서 창피하기도 하고요.

 

아까는 순전히 짐작으로만 왕복하는데 시간 반도 더 걸렸을 거라고 그랬는데 물길이 어디로 흐르는지 그것도 참조하지 않고 뛰어들었던 그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럴 만도 했겠습니다.

몹시 어렸지만, 또 무모하기도 했지만, 달랑 팬티 한 장 걸치고서 무작정 뛰어든 그 용기에 야단치기보다는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그 시절 그런 용기라도 없었던들 오늘날 이토록 괴팍한 세상사 감히 접어버리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반문도 생겨난 까닭이지요.

 

'야! 35, 6년 전 팬티 바람의 류중근이 잘했어! 참 잘했어!!!'

'인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런 용기와 배포 절대로 꺾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점차로 반드시 플러스 될 것이야!!!'

 

그때의 그 바닷길 왕복 거리가 고작해야 2킬로 m 남짓이었건만, 돌이켜보니까 괜히 으쓱해집니다.

쉰둘이나 된 놈이 아직도 꿈속에서 날아다닌다는 것! 하나도 안 부끄럽네요.

현실에서 자꾸만 막혔던 자아!

꿈을 통해서라도 돌파하려고 무의식이 작동했었나 봅니다.

그 시절이 살짝 지났던 고등학교 다니면서 봤던 프로이트 어르신의 말씀으로는 '자아의 본질이 성욕에서 출발한다.'고 그랬던 것도 같은데…

그것이 무슨 소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오랜 세월 마누라도 없이 홀로 지샌 밤 탓에 그런 해괴한 꿈이 죽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꿈이 고맙습니다.

 

아직도 제게는 재워버릴 수 없는 욕망이 살았다는 증거가 그런 것 아니겠어요?

 

체 게바라나 전태일 성자처럼 이룰 수도 해낼 수도 없는 거창한 건 꿈도 꾸지 않습니다.

아버님 기일하고는 희한하게도 앞뒤만 딱 바꾸면 그 날짜인 바로 그날이 우리 어머니 생신이거든요.

일흔을 넘기신 우리 어머니 요번 생신에 나머지 온 가족이 투덜대지 않고 우리 집에 모여서 삼겹살이라도 구웠으면 좋겠습니다.

 

- 엄니! 울 엄니~ 일흔두 번째 생신을 축하합니다. -

- 끝 -

 

 

Fly-01

 

Fly-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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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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