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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07 어^ 닷홈에 깔아둔 홈피 세 개가 꼬르륵했네~

어^ 닷홈에 깔아둔 홈피 세 개가 꼬르륵했네~

 

 

홈피 동시 오픈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 부분에서 그 모양새가 이상하게 빙글빙글 돌더니 나중에는 결국 홈피 제목 탭에 '이 페이…'가 찍혔습니다.

그것도 거기 호스트에 올렸던 홈피 세 개 모두가 그러데요.

 

- 닷홈아 살아나라~ -

 

이런 현상 틀림없이 일시적인 현상일 거예요.

예전에도 다른 홈피들에서 이런 예를 몇 번 봤었거든요.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올리려고 홈피를 새로 고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또 그러기를 바라지만,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흠~ 그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순천에 가봐야 하는데…

 

어제는 그전에 오랜 벗으로부터 초대(?)하겠다는 전갈이 와서 아주 오래전에 다녔던 공장에 들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 노동조합 창립 30주년 행사를 녀석이 마련했데요.

 

그전엔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그래도 제가 지냈던 터전에 마련된 직장이고 또 어느 정도 규모도 갖췄기에 또 다른 친구가 마련해준 준비물 덕에 다행히 그곳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그때가 88년도인데 그 전해에도 모집공고가 있어 찾아갔는데 면접에서 떨어진 직장이기도 한 거라서 오기도 생겼던 직장이기도 했습니다.

안 떨어졌으면 저 역시도 운 좋게도 노조 창립 회원에 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어쨌든 제가 갔을 땐 이미 노조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70년대 후반에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장기집권하다가 그 수하인 '김재규'의 총에 사살된 적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수괴로부터 시작한 '12·12 군사 반란' / '5·18 광주 민중항쟁' / '전두환의 호헌정책' / '전 국민 민주화 총력 투쟁' / '항복을 가장한 노태우의 6·29 선언' / '87년 전국 노동자 대투쟁' …

 

일련의 저런 과정이 그 시절의 정국이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말도 들어보기 힘든데 당시엔 걸핏하면 '관계 장관 회의 / 시위주모자 구속수배'로 이어진 '공안정국'이란 말이 돌았는데 '공안정국' 그 말 자체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절에 우리 공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차츰 지역의 광범위한 '연대 노동조합', '강성 투쟁 노동조합'으로 자리매김을 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날로 그 위상을 달리하다가 지금은 '한국노총'과는 별개로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는데 당시엔 '단병호(전 국회의원)라는 작은 단위사업장의 노조위원장께서 원대한 꿈을 품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라는 전국단위 연대 투쟁조직을 만들어 계속해서 세력을 키워갔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그 '전노협'이 바로 오늘의 '민주노총' 전신인 셈입니다.

 

우리 공장의 주요 거점이 광주에 있었기에 그런 연유로 우리 노동조합에서는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광노협)'를 출범시키고 전노협의 결성 동기에 맞게끔 광주에서도 연대투쟁을 강화하고 세를 확장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당연한 결과겠지만, 많은 수의 열혈 활동가가 구속되거나 회사로부터 쫓겨나야(해고) 했습니다.

 

그 시절 비슷한 이유로 해고됐던 대부분의 동지가 복직했건만, 저는 93, 4년에 연이어 두 번을 해고된 뒤로 다시는 공장에 나다닐 수 없게 됐답니다.

그 대부분이 오랜 복직 투쟁 끝에 96년도쯤에 복직하기에 이르렀는데 저는 하필 그 시기에 지금이 이 장애를 얻게 됐지 뭐예요.

 

그런 연유로 훗날 함께 살았던 마누라가 대신해서 복직했지만, 그 마누라와 제 사이의 불협화음 탓으로 공장도 접게 되고 장기간의 별거에 들어가고 끝내는 이혼으로 이어지고…

 

거기 공장도 공장의 규모 면에서나 공장의 소유 형태 면에서나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 면에서 모든 거가 그 시절의 그거완 완전히 딴판으로 변했습니다.

 

외환위기와 여러 가지 원인이 결합해서 결국은 그 공자의 책임 단위마저 완전히 바뀌더군요.

공장이 넘어가면 대한민국에선 그것이 마치 정석이라도 되는 양 기어이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진 걸 봐왔는데 그 공장도 예외가 아녔답니다.

 

그 맨 처음 '김우중'이 끌었던 '대우'와 세계 최초로 에어컨을 만들었다는 미국의 '캐리어'가 합작해서 '대우캐리어'라는 걸출한 회사를 만들었는데 거기가 바로 제가 맨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공장이었습니다.

그 뒤로 아까 말했던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은 '오텍캐리어'라는 이름으로 에어컨의 명맥을 이어가기도 해요.

 

거기 갔더니 누군가는 최근 몇 달 새에 봤던 동료고 또 누군가는 그야말로 제가 쫓겨나면서 인사 나눈 뒤 나왔던 것도 아녔으니까 거의 25년 만에 만났을 동료도 있었습니다.

거긴 제가 있을 땐 아녔는데 나중에 사무직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했기에 사무직 조합원도 상당수라 하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누가 사무직 동료고 누가 생산직 동료인지 모르겠데요.

아무튼, 잘 보내다가 돌아왔습니다.

 

시내버스로 갈 수도 있는데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간 공장이니까 굳이 자전거를 끌고 갔는데 돌아오면서는 공단에서 길을 잃어 한참이나 헤맸답니다.

거기 공장 다닐 땐 그 지역에 살았는데 공단에서 나오면서 제가 아주 잠깐 그 시절에 살았던 집으로 자전거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공단 길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한참이나 이리저리 헤맸답니다.

 

처음엔 근처를 오가는 사람도 없어 물어보기도 어려웠는데 나중엔 지나는 어느 고마운 사람 덕분에 빠져나갈 통로에 들어갈 수 있어 겨우 돌아왔지요.

그렇게 바른길 찾아내고서도 길 건너편의 좋은 길로 넘어가질 못해 돌아오는 길 거의 절반을 반대편(역주행) 보도블록 위에서 힘겹게 페달 밟아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량이 한가할 때 차라리 무단횡단이라도 해서 건너편으로 넘어갈 걸 그도 아니면 네거리 갈림길에 들어섰을 때 시간 좀 걸리더라도 신호등 받고 건너편으로 가서 새롭게 출발하면 좋았을 걸 하는 맘도 생깁니다.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이기로 한 날입니다.

얘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니까 그 전체를 만나긴 어려울 것 같아 우리 지역(광주·전남)은 우리 지역대로 모임을 따로 갖고 모이기로 했던 모임입니다.

 

1977년 3월에 120명을 약간 초월해서 졸업했을 겁니다.

우리 반이 70명쯤 됐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많은 쪽수 중 우리 지역은 그 1할쯤 밖에 없습니다.

 

그 쪽수라도 다 모이면 좋겠는데 거기 불참자 위험군 1위가 바로 제거든요.

저만 나가도 일군의 무리가 될 터기에 - 어^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곧 아침이겠습니다. - 오늘은 내려가서 옛친구들 잘 있을지 그 면면 구경 좀 해야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지금쯤 어쩌면 오늘의 주인공 닷홈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글 닷홈에도 실을 거예요.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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