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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30 우리 아버지 하늘로 가셨을까? 더 멀리 가셨을까?

우리 아버지 하늘로 가셨을까? 더 멀리 가셨을까?

 

 

인부들이 아침 일찍 와서 기다릴 거라면서 여덟 시까지는 내려오라고 시골에서 이번 일(가족 묘원 설치에 관해 그 전반을 다루는 일)을 도맡아서 꾸려가시는 시골 사촌 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사는 광주 집에서 시골 형님이 사는 고흥의 형님댁까지 가려면 아무리 빠듯하게 잡아도 두 시간 반 남짓은 걸릴 거 같았습니다.

 

그랬기에 그제 저녁엔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버티다가 어제 새벽 두 시 반에서 세 시쯤에 먹은 라면 한 그릇이 그 새벽부터 일 마치고 올라오는 내내 얼마나 사람 불안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다섯 시쯤엔 출발해야겠기에 그 시각에 건넌 방의 동생을 마구 깨웠지요.

 

우리 막냇동생 공장에서 크게 산재를 당한 거가 벌써 10년 세월도 더 지났건만, 지금도 퇴근길엔 꼭 병원에 들러서 물리치료(재활치료)를 받는 중이라 깊은 신음을 토하면서 겨우 추스르며 일어나데요.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엄청나게 졸려오는데 제가 깜빡깜빡 조는 동안 운전하는 동생마저 졸아버리면 세상만사 끝날 것이기에 그 불안도 대개 컸던 순간에 계속됐었고…

동생 놈의 산재 후유증으로 유독 눈에 보이는 것이 오른 다리입니다. 해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조수석에서 동생의 그런 다리에 자꾸만 신경이 가는 거예요.

 

어찌 된 까닭인지 평상시 유독 그 오른쪽 다리에 쥐가 자주 내렸으니까…

운전 중에 쥐가 내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하기도 싫고 정말이지 그것 끔찍하잖아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않았기에 그 자격마저도 잃었겠지만, 한때 저는 1종 보통 면허증을 갖고 있었거든요.

 

친구 놈이 저 차를 내줘서 두세 번 몰아본 거며 면허 시험장 실기 시험에서 두세 번 떨어진 까닭에 단번에 붙은 놈보다 더 몰았다면 더 몬 경험이 전부인 제가 자동 변속장치가 달린 승용차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기껏해야 트럭 몇 차례 몰았던 게 유일한 실무 경험일 뿐인 제가 말입니다.

 

- 야! 오른발 맨 오른쪽이 액셀, 그 옆으로 가운데가 브레이크, 그러고 왼발이 클러치냐? -

어머 세상에 자동엔 클러치도 없답니다. 그러면 클러치도 없이 어떻게 변속하지? 궁금해서 그것마저 물었는데 잘 안 들렸는지 대답했는데도 제가 못 들었는지 그 또한,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제 몸에서 조금이라도 말귀를 알아먹을 수 있는 놈이 오른쪽 귀뿐인데 하필이면 조수석이 오른쪽에 있으니 그쪽 창문이 열렸거나 하면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온 누리가 어수선하거든요.

 

그러면 우리 막냇동생 하필이면 오른 다리 고장이 큰 놈인데 모는 승용차 오른 다리에 조작 틀이 다 달렸다니^ 허허~ 그것 처음 알았고 또 놀랐습니다.

그래서 유독 오른쪽에만 쥐가 자주 내린다고 동생이 그럽니다.

 

그 졸음을 다 쫓으면서 중간에 딱 한 번 들른 휴게실에서도 소변만 보고 바로 출발했었습니다.

그렇게 죽자사자 달렸더니 얼마나 내 달렸는지 광주 우리 집에서 6시에 출발했는데 막상 고흥의 목적지까지 두 시간도 채 안 걸려 들어갔답니다.

 

일 보시는 형님댁(큰댁)에 먼저 들러 인사 여쭙고는 얼른 나와서 거기서 100m 거리쯤의 작은댁에 들러서 온갖 과로로 앓고 계시는 작은 어머니를 비롯하여 작은아버지께도 인사 여쭙고 돌아왔지요.

그러고는 우리 둘 다 밥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도 오래간만에 시골에 들렀기에 우리 사정만 생각하여 차려주시는 형수님 성의를 봐서라도 마냥 싫은 태도 못 내겠고, 아주 적은 양이나마 한술씩 떴던 게 그러잖아도 쏟아지는 잠을 더욱 부추겼답니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기에 얼마간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일해주실 아저씨 두 분(인부들)이 오셨습니다.

우리 차가 먼저 가고 그분들이 뒤따르게 해서 마침내 아버지 누워계시는 옛 고향 집 곁의 공동묘지를 찾아갔지요.

 

공동묘지 밑으로 난 큰 신작로에서 묘지가 시작하는데 아버지 산소는 거기서도 거의 가장 적막하고 높은 부위로 봐도 무방할 신작로에서 산 능선 쪽으로 100m 지점(공동묘지 맨 위쪽 지점)에 있습니다.

거긴 수풀 우거지고 수목마저 빽빽하기에 거기로만 봐선 누구도 거기가 공동묘지 안이라고 못 느낄 만큼 험준(?)한 곳이기도 해요.

 

그런 곳에 있던 아버지의 산소 - 얼마나 벌거숭이였던지 40여 년 거의 해마다 그 벌거숭이 바꿔보려고 애썼는지 모릅니다.

잔디 닮은꼴의 풀(잡초) 아무리 떼어다 심어봐도 다음 해에 가보면 말짱 도루묵이라서 그 허탈함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오죽했으면 작년 가을에 동생 놈이 인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자며 잔디 씨를 사 왔습니다.

우린(어머니 나 그리고 막냇동생) 그걸 마치 논밭에 씨앗 파종하듯이 산소 곳곳을 파 헤집으면서 뿌리고 심었답니다.

 

그러고서 이번에 올라가는 길이었지요. 마침내 산소에 도착해서는 동생과 나 얼마나 놀랐던지 서로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묘지 곳곳에 풀이 무성하지 뭡니까? - 이건 우리를 위해 준비한 하늘의 기적입니다. -

 

~ 그리움에 대하여 - 01 ~

 

우리 놀라는 것 아랑곳하지도 않고 일꾼들은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 아버지 형상 인제 다시는 볼 수도 없을 거기에 거기 따라 왔다는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저씨들께 헤아려줄 걸 권했더니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알아서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

 

우리 동생도 마찬가지지만, 저로선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깊이 팠습니다. 얼마쯤 들어가면 아버지 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우리들(동생과 나)의 그 꿈은 너무나도 철없는 망상이 되더라고요.

- 42년 세월 동안 관이 그대로 남았을 리가 절대로 없을 터인데 우린 그걸 몰랐으니까 -

 

평지에 이를 때까지 파내는 건 당연하겠고요, 그러고도 거의 어른들 허벅지가 다 들어갈 만큼 파 들어가니까 드디어 흙의 색깔이 변해서 굴착되는 겁니다.

아저씨들 담배 두 세대 무는 시간 빼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내 팠으니까 아마 두 시간은 너끈히 팠을 겁니다.

 

드디어 아버지의 그것이 조금씩 드러나는 겁니다.

그것도 온갖 옷가지에 실타래처럼 엉켜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상상하길 십자가만 없지 십자가에 묶인 열십자 대문자로 유골이 놓였을 거로 상상했었지 이렇게 실타래처럼 엉켜서 거기서 일일이 떼는 거가 그 일의 주업이 될 줄은 상상을 넘어 아버지를 맞이하는 죄스러움이요, 몰랐던 거에 대한 치욕이었답니다.

 

아버지를 만지고픈 아련한 기대 아버지를 느끼고픈 달콤한 로맨스~

그건 순식간에 '우리 아버지 손톱 하나라도 허투루 해선 안 되겠다. 우리 아버지 머리털 하나라도 여기 두고 갈 순 없다!' 그런 각오로 그런 다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실재론 손톱자국도 머리털 한 올도 안 보였지만, 엉겨 붙은 그 옷가지와 흙더미에서 뼛조각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이 잡듯이 세심하게 뒤지고 발라냈습니다.

 

살아서는 아버지 등골 휘게 하여 결국은 저세상으로 보냈었던 제가 인제 와서는 저세상의 아버지를 끄집어내 그 뼛속까지 발려야 하는 사정이라니… 아~

 

한참을 그리 하고는 인제는 됐다 싶기에 파냈던 자리 멀끔하게 되묻었습니다.

 

아~ 40여 년 전 꽝꽝 묻어야 아버지 저세상 편히 간다기에 초등학교 육학년의 발로 꽉꽉 밟으며 묻었던 그 자리 주변 휑했었는데 어느덧 수풀 수목으로 밀림 돼버렸네요.

그리고 벌초 올 때마다 주변 잡목 다 베어버리고 동백나무를 닮은 동백 살 나무(우린 그렇게 불렀는데 이것 실제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개 동백나문지 산 동백나문지 그럴지도 모르지만,)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산소가 워낙 높은 곳, 험한 곳에 있기에 사지 올곧지 못한 제가 올라올 때면 금방이라도 온몸이 후줄근 해지기에 얼른 웃통을 벗어 저기 동백 살에 걸어두곤 했었는데요.

인제 아버지도 떠난 자리 홀로 그 자리 정승처럼 지키고 섰겠네요.

 

~ 그리움에 대하여 - 02 ~

살아생전 하늘만큼 땅만큼 컸던 우리 아버지의 얼굴 그 자리가 너무나도 작았습니다.

요술 부린 듯 작았습니다. 제 주먹보다도 작아진 아버지의 머리를 보는 순간!

처음엔 놀라서 숨이 막혔고 그걸 가다듬자 이내 눈물 왈칵 쏟아지려는 것!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 자리에 경사가 있었기에 그러잖아도 자꾸만 넘어질 뻔했기에

이번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 버둥대는 양 엉거주춤 자리 피해서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삼켰답니다.

아~ 불쌍한 울 아버지 왜 그렇게 작아지셨나요?

무엇이 그렇게 아버지를 쪼그려뜨리셨나요?

 

드디어 아버지 모실 곳(문중의 가족 묘원)에 아버지 모셔왔습니다. 거기 모실 다른 분들은 이미 다 유골함에 안착했지만, 아버진 방금 벌거숭이 골육(?)으로 들어오셨기에 그 마지막 관문(간이 화장 설비에서 사르는 일)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사진을 그대로 올려선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거기 매우 소중한 자리 가리겠습니다.

전에 어디선가 봤는데 모자이크 지우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걸로도 소용없게끔 아예 그 자릴 다른 칠로 메울게요.

 

~ 그리움에 대하여 - 03 ~

 

아무래도 이건 괜찮겠지요? 뭇 서민들에겐 돌아가신 분 평장 형식으로 '봉안'함이 대략 어떤 형탠지 궁금하기도 할 터겠고요.

저기 작은 평장 형식의 독립 한 객실 왼쪽이 아버지 유골함이고요, 오른쪽 빈자리가 함께 사는 우리 어머님 자리라네요.

 

~ 그리움에 대하여 - 04 ~

 

곧 저기 뚜껑을 덮고요, 그 위로는 흙을 깔지 않고 우리 가족 묘원에선 자갈을 깔았답니다.

그 모두를 마치고 주위로 잔디 무더기를 옮겨주는 등 대략 한 시간가량 거기 머물다가 우린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또 많이 깨우치면서 감동도 컸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40년을 없었던 잔디 - 물론 일꾼들 말씀으론 그게 잔디가 아니고 짐승들 사료로 쓰는 풀씨였기에 싹이 텄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 그것이라도 인제 와서 났다는 거가 어쩌면 우리 아버지(영혼)가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모두에 남기려 했던 증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까 그 자동 변속기 승용차 작동 원리도 둘이 올라오면서 나눴던 얘기 중 하나였음을 밝히면서 이제는 이 글도 마치렵니다.

 

- 아버지~ 인제 거기 새 둥지에서 아버지 고향 어르신 모두와 함께 영생을 훨훨 나시옵소서!!! -

- 아버지~ 날마다 좋은 날~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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