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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7 히히~ 띠연죽을 쒔다!!!

히히~ 띠연죽을 쒔다!!!

 

'띠연죽?' 띠연죽이라는 소리 들어나 보셨나요?

사진 보시면 누구라도 그냥 다 아는 수제비, 수제비 그걸 우린 띠연죽이라고 불렀었거든요.

우리라고 하면 어떤 분들한텐 좀 억울한 점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아니라 그냥 우리 집이라고 해 둘게요.

전라남도 고흥에서 광주로 올라왔습니다.

고흥에서도 저 아래쪽 항구도시(?) 풍남의 가장 동쪽 고을인 전천후 힐링 쉼터 개내골 '강동'이 제 고향입니다.

 

이 글 쓰려고 네이버 뒤져보니 수제비를 이렇게 사전에서 정의했네요.

- 수제비: 밀가루를 반죽하여 맑은장국이나 미역국 따위에 적당한 크기로 떼어 넣어 익힌 음식. -

그래요. 떼어 놓은 상태를 전라도 사투리에서 '띠 놓는다'고 그렇거든요.

또 어딘가에 집어 넣는 행위를 '집어 연다'는 표현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런 표현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아야~ 부삭에 불 좀 여라!' → '애야~ 부엌 아궁이에 불 좀 넣어라!'

'아야~ 구멍에 좀 쑤셔 여 줄래?' → '애야~ 구멍에 좀 쑤셔 넣어 줄래!'

이런 따위가 거기에 속할 테니까 '띠연죽'은 어쩌면 의태어 명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질지 않고 되게 밀가루 풀어 반죽한 뒤 그 덩어리 잘게 떼어서 팔팔 끓고 있는 솥(냄비)에서 데친 듯 쫄깃하게 끓여 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먹었던 띠연죽이었었거든요.

 

아주 오래전부터 해 먹고 싶었었는데 막상 끼니때가 오면 그때 자체를 잊어먹곤 했었기에 그 식탐이 자꾸만 밀리곤 했답니다.

오늘 낮엔 그 무슨 훈풍이 불었던지 때마침 생각이 나더라고요.

 

해서 찬장을 뒤져서 밀가루 찾아내고는 가락국수 그릇에 적당하다 싶을 만큼 따랐답니다.

그 윤기 너무도 부드럽기에 주르르 흘러서 마치 물처럼 흐르더군요.

그리곤 어머니 커피 드실 때 쓰는 컵에 수도꼭지 돌려서 물 한 컵도 받아냈지요.

 

이런 반죽 해 본지가 너무나도 오랜 세월 멈췄었기에 그 감이 제대로 안 잡혀서 순전히 아마도(?) 개념에 맞춰서 밀가루며 반죽할 물을 받은 겁니다.

그런 다음 밀가루 담긴 가락국수 그릇에 조금씩 잔에 든 물 부어가면서 반죽하기 시작했지요.

뭐로 했을 거 같아요?

그것 반죽할 때까진 아직 손에 밀가루 한 방울 안 묻혔지요.

순전히 나무젓가락(대나무) 한 쌍으로 이리저리 움직거리면서 반죽했었답니다.

 

밀가루 반죽 아직 되긴 했지만, 이것 시간이 더 지나면 질어진다는 것 어렸을 적 경험으로 다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아주 치명적이고 괴팍한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조리하기 전에 조리뿐만 아니라 다른 거에서도 종종 그러하지만, 맘속으로 미리 정해둔 각본 그것이 그대로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라면 끓일 때나 밥할 때 미리 정해둔 가스레인지 조리 시간 같은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3분이면 3분 7분이면 7분 그 요리량에 따라 미리 책정해둔 시간이 그때그때 있습니다.

그 시각이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미리 불 꺼버리는 일이 없지요.

누군가 와서 이미 조리됐음을 짐작하고 꺼버리기라도 했다면 벼락같이 성깔을 부리기도 했고요.

오늘 밀가루 반죽하면서도 그 비율에 확신도 없었던 놈이 기어이 다 붓고 말았지요.

젓가락으로 계속해서 비비고 뒤집다 보니까 결국 질어지데요.

하는 수 없이 찬장에 올려뒀던 밀가루 봉지 내려서 살짝 더 부었답니다.

그러고서 다시 반죽하니까 제법 되었었지요.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질어질 테니까 드디어 설거지하는 바가지에 수돗물 내리면서 손을 씻었답니다.

그래야지 이제부터는 반죽했던 밀가루 반죽 팔팔 끓는 냄비 속에 떼어 넣을 수 있었잖겠어요?

 

살짝 큰 뭉치로 네 번 정도를 덜어내 왼손에 들고는 오른손으로 자잘하게 떼어서 냄비에 떨구었지요.

동동 뜨더군요. 이런 모양새 데쳤다고 해야 옳을는지 튀겼다고 해야 옳을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왼손에 마지막 덩이 들었을 때는 처음부터 더 크게 잡았어야 더 정확하게 더 재빠르게 할 수 있었을 거란 판단이 섰었는데 이미 늦은 거예요.

 

그 모두를 떼어 넣는 그 마지막 순간에 불현듯 놓쳤던 게 떠오릅니다.

'아차! 반죽에 소금 간 안 했었네!'

그러면서 소금통 열어서 엄지 검지에 잽싸게 잡은 뒤 냄비 속으로 비벼 넣었지요.

'앗! 나의 실수~ 이렇게 한 게 아닌데…'

 

그때야 제대로 생각이 잡히는 겁니다.

콩나물 국 같은 맑은국에나 '소금'으로 간하고 이렇게 살짝 텁텁한 거에는 '조선 장' 써야 한다는 것이 그것도 한발 뒤늦게 떠올랐던 겁니다.

요즘 간장은 아무 데서나 살 수도 있지만, 조선 장 얻기는 어렵잖아요?

우리 아파트 아니 우리 사는 동네 여기가 말은 광주광역시 도회지지 조금만 집 나가면 논밭이거든요.

꼭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어머니 경로당 친구분 중엔 정통 시골 형 어르신도 더러 있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 찬장엔 그 귀하다는 조선 장이 일 년 내내 안 떨어지고 간신히 붙어있지요.

 

드디어 깔끔하게 팔팔 끓이고는 그 조선 장으로 한 숟갈을 부어 간을 냈습니다.

수제비야 놀자! -01

 

처음부터 살짝 덜었으면 좋았을 것을 가득 차도 수막이 생겨 얼른 넘쳐버리지 않는 원리를 알기에 기어이 다 부었지요.

물론 냄비가 뜨거워서 중간에 멈춘다는 것도 어려웠었고…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냄비에 것 오롯이 반죽했던 가락국수 그릇에 다 부었습니다.

수제비야 놀자! -02

 

그 옛날 술 마셨을 땐 이런 식으로 넘치기 일보 직전에 와 닿았어도 그대로 들고서 방으로 들어가곤 했었거든요.

만약에 넘치기라도 했다면 쟁반에 쏟아진 술 한 방울도 안 버리고 그대로 핥아 먹을 정도로 술 좋아했었지요. ㅋㅋㅋ…

어쨌든 술이 아니고 이건 그야말로 몇십 년 만에 해보는(5~6년 전에 부침개를 해 먹었던 적은 있었었지만…) 띠연죽이니 절대로 쏟아져선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덜 것 준비해서 국물만 덜어냈어요.

수제비야 놀자! -03

 

그러고는 드디어 텔레비전 바로 앞으로 이 한낮 최고의 진수성찬이…

수제비야 놀자! -04

 

밀가루 보니까 아주 옛날 아버지 살았을 때의 밀가루 개떡 먹었던 시절 떠오르네요.

마흔 해도 더 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 이야깁니다.

그 시절 살았던 분들 다들 기억하실 거에요.

 

보리 서리 밀 서리를 아실는지요.

요즘엔 그런 풍습도 못 찾겠기에 대처할 단어도 없지만, 그 시절엔 수박 서리며 참외 서리가 흔했던 시절입니다.

여름철 수박이나 참외가 막 익기 시작할 무렵이면 동네 처녀 총각들 저녁이면 몰래 들어가서 적당히 훔쳐와 많이들 노닥거렸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다 컸을 무렵(80년대 초중반)에도 친구놈들이 우리 집 닭을 저 몰래 털어가기도 했으니까 그 훨씬 전에야 오죽했으려고요.

뉘 집 보리 밀이 됐든지 그게 펴서 아직 여물기 직전에 끊어다가 불에 그슬려 싹싹 비벼 먹곤 했었는데 그 고소한 맛 죽였답니다.

우리 밀 그 밀이 보리보다 훨씬 고소했습니다. 생긴 것(참하게 빗어 내린 치렁치렁한 머리처럼 고왔던)도 예뻤었고요.

 

우리 시골 살 때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밀 방아 찧어온 날이 좋았습니다.

그 굵기가 5분 돈 지 7분 돈 지는 몰라도 그 마지막에 거르는 밀기울도 버리지 않고 가져왔지요.

밀가루는 아주 중요한 음식재료기에 어떤 경우에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될 귀중품이었었고 그나마 받쳐온 밀기울은 밀가루에 비하면 몹시 거칠었지만, 잘만 조리하면 비할 데 없는 우리 간식이었답니다.

그것이 바로 밀 방아 찧은 뒤 처음으로 맛보는 우리들의 특식 '개떡'였어요.

개떡의 그 빛깔 누렇다 못해 검게도 보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있는 집에선 그것 개돼지한테나 주는 사료였을 텐데 우리처럼 자연식(?)에 익숙한 가정에서는 별미 중의 별미였던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밀가루와 만나는 날이면…

그 빛깔 요리하고 나면 검정 티는 없었지만, 여전히 누렜었어요.

그래도 맛났답니다. 밀가루 팥죽처럼 밀어 써도 만났고 오늘처럼 수제비로 끓였어도 만났고 그도 아니면 호박잎에 얹어서 개떡으로 빚어도 만났었고요.

 

나무로 된 통 성냥갑 밑바닥엔 작은 널빤지 대고 부드러운 화촉의 양쪽 옆면엔 양철로 바꿔 대고는 그 양철엔 각각 굵은 전선 갖다가 끼웠죠.

그리고는 그 성냥갑에 아까처럼 됨직하게 밀가루 반죽 집어넣고는 두꺼비 안으로 두 가닥 전선 각각에 전선 갖다 대면은---

'따다닥 웽~'

엄청난 속도로 계량기 돌아갔습니다.

그리곤 성냥갑에 불이 붙었고요…

그게 바로 제가 만든 수제 토스트였어요.

밀가루 반죽 엄청나게 고소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양철이 있는 양면 쪽으로 타버렸고요, 그 가운데 쪽엔 아직도 생 반죽 그대로였지요.

 

76년 그 해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어요. 아버지 돌아가셨고요.

그 겨울 엄청나게 부잡스러웠던 저는 가장 현대식 토스트를 만들면서 두꺼비집 퓨즈 열 번은 더 태워 먹었을 겁니다.

바닷가에는 태풍이 한 번씩 지나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쓰레기기 밀려있지요.

그 쓰레기 속에는 다 써버린 알루미늄 치약 통이 섞였기도 합니다.

그 치약 통 길게 잘라서 타버린 퓨즈 대용으로 끼워두면 일반 전력으로 쓰기엔 무리가 없지만, 토스트 꽂아지면 여지없이 그도 타버렸어요.

해서 나중엔 주어온 전선 중에 적당한 단선 골라서 그것 잘라서 벗기곤 퓨즈 대용으로 쓰고 했답니다.

자칫 굵은 전선으로 썼다간 우리 집만 나가는 게 아니라 전봇대에 달린 퓨즈가 날아가 버리거나 변압기 퓨즈가 날아가서 전봇대 근방의 이웃뿐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암흑천지가 돼버릴 수도 있었거든요.

실제로 다른 이유로 그런 경험을 지녔으니까 저로선 엄청나게 조심해서 다루곤 했었답니다.

 

아아~ 우리 아버지…

거기 바다랑 마주한 공동묘지 저 놓은 자리에 지금도 누워계십니다.

낼모레 음력설이 돌아오지요. 그 설을 쇠면 그때의 울 아버지보다 제가 꼭 10년이나 더 오래 사네요.

마흔셋에 가신 그분. 보고 싶습니다.

그 먼 곳에서라도 비록 이승에서 놓쳤었지만, 그곳에서는 건강하게 보내십시오!

아버지~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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