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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의_전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9.02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어젯밤이었어요. 평소엔 잘 되던 리모컨이 갑자기 말을 안 들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보자고 했던 그놈 드라마 할 시각은 다 됐는데 리모컨이 말을 안 들으니까 마구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모니터를 겸용해서 나오는 텔레비전을 포함해서 텔레비전이 두 개니까 그 각각에 리모컨을 뒀기에 다른 리모컨을 돌려도 그 리모컨이 텔레비전 구분하지 않고 잘 나오긴 한 거였지만, 해오던 버릇대로 꼼짝도 하지 않는 그 리모컨을 잡고서 생난리를 쳤답니다.

리모컨이 혹시 접촉 불량이지 싶어서 약을 넣어 놓은 채 그 약을 쿡 집어서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약을 뺐다 박았다 몇 번이나 반복해보고…

그래도 안 되니까 근처에 여분으로 있는 약 다섯 개를 돌려가면서 꽂아도 보고…

리모컨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겁니다. LED에 살짝 불이라도 한 번 들어 왔으면 더 바랄 것도 없겠건마는 세상에 어떻게 해도 리모컨이 죽은 체로 일절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중에 언젠가는 필요하면 쓰려고 리모컨들 모아둔 리모컨 상자에서 뭉툭한 리모컨을 하나 꺼내서 썼지요.

그놈 리모컨은 엄청나게 커서 마치 '노약자 리모컨 양식'을 갖췄지만, 그 크기에 비해서 '이전 채널'과 같은 기능이 없으니까 저로선 기피 1호 리모컨이 오래인 리모컨(바로 이 리모컨이 내 방에 두 개나 있다)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그놈으로 켜긴 켰는데 보려고 했던 드라마가 한창이나 흘러가는 중입니다.

 

저런 상태로는 드라마 못 보지요. 처음부터 봐야지 중간에서 끼어들면 김이 팍 새잖습니까?

차라리 보려고 했던 그것 접어버리고서 다른 걸 보다가 그마저도 접고서 잠들었답니다.

 

~ 사랑이 야속하더라 - 01 ~

 

~ 사랑이 야속하더라 - 02 ~

 

 

사실 어제는 좀 피곤했지요.

실은 어제 늦은 오후에 어머니와 깊은 알력싸움이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오래간만에 운동도 하고 바람도 쐴 겸 자전거를 몰고 나갔지요. 이걸 기회로 나간 김에 천원 마트에 들러서 바느질에 쓰는 명주실이나 자전거 전조등 같은 걸 사올 심산도 함께였으니까.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중에도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흐뭇했답니다. 왜냐면 사고자 했던 물건들(까만 실과 하얀 실 한 통씩에 명주실 타래 하나 그리고 전조등으로 쓰기에 요긴한 손전등 하나 - 모두 합쳐서 만원) 사서 들어오는 길이었으니까.

 

거기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후줄근한 차림새로 제 방에 막 들어서는데 거기 어머니께서 물걸레질하고 계시잖습니까?

 

'뭐하는 거요? 내가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기어이 물걸레질하셨네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 단 한 번이라도 하면 내가 어떻게 할 거라고 했지요?'

그걸 보는 순간 머리끝까지 울화통이 치밀어오르더군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참아선 안 될 일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제가 정해둔 금기 사항이 몇 개가 있지요.

가령 제 방에 허락 없이 빨랫거리를 들고 나간다든지 청소하는 일 등입니다. 또 밥 먹을 때 제 밥상 위로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둬서도 절대로 안 될 일이지요.

그렇게 선을 그어 둬야 저 때문에 받을 고충 조금이라도 덜 치를 것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 저 자신을 위해서도 이는 제 장애가 제아무리 심하다 한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해낼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하고 도움받기가 싫었기에 금기사항으로 못 박고 사는 처지였어요.

했는데 제가 잠깐 자리 빈 사이에 어머니께서 그 금기를 깨 버렸던 겁니다.

 

평소 엄포 놨던 그 사단(물걸레질하면 어머니 방에 양동이 가득 물 부어버릴 거예요!!!)을 실행하기로 했지요.

얼른 화장실 들어가서 재활용 양동이를 들여다봤더니 절반 정도밖에 안 들었습니다.

우선 급하니까 그것이라도 들고 나가서 부리나케 어머니 방에 쏟아버렸답니다.

 

방안에 성경책이 널렸든 반짇고리가 널렸든 또 어머니 피곤하시니까 대낮에도 늘 이부자리가 펴졌을 때가 잦았는데 어제는 이부자리가 웬일로 살짝 구석으로 밀렸습니다.

그랬든 저랬든 양동이 물 그대로 쏟아버렸답니다.

 

어머니 쫓아 들어오면서 벌벌 떠는 목소리로 난리를 치십니다.

어머니 그 모습이 들어오자 그때쯤에 저도 정신이 좀 들었지요.

 

'엄니 서운하지요? 제가 양동이 가득 담아서 붓겠다고 약속했는데 따라 둔 것이 없어서 우선 요까짓 거라도 부었어요. 좀만 기다리세요. 다시 떠 올게요.'

그 길로 나가서 그 양동이에 가득 채워 들어왔지요. 그러곤 어디 어디로 부어주면 좋을 거냐며 어머니한테 그 선택권을 줬는데 어머니는 또 얼마나 화가 치밀었던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 네 마음대로 다 해봐라!' 그렇게 체념하시데요.

양동이에 한가득하니까 요번엔 방을 네 방향 여섯 방향으로 나눠서 골고루 다 퍼붓고 돌아왔답니다.

 

천원 마트에서 사들인 물건 정리하면서 대략 1분쯤 지났을까요?

칠순을 벗어나 곧 팔순이 되시는 우리 어머니 저토록 커다란 가슴 뜯기는 상처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정말이지 큰일 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까 그 양동이와 제 방에서 얼굴 닦는 수건으로 쓰다가 그다음으로는 발걸레로도 썼다가 그 맨 마지막을 그냥 걸레로 순환하면서 여러 용도로 써지는 그런 수건 한 장을 들고서 부랴부랴 어머니 방을 찾아갔지요.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울며불며 큰 대야며 걸레들 들고 훔치면서 제가 퍼부어서 엉망이 된 방을 넋이 나간 모습으로 주저앉아서 닦고 밀고 훔치고 짜는 걸 침묵시위로 피멍 든 가슴으로 깊은 시름을 토해내시고 계십니다.

'…'

 

이 순간 제 가슴도 미어지데요.

 

저도 얼른 쭈그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레질 해댔지요.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든지 '미싱하우스(걸레나 천을 폭을 넓게 잡고서 물기가 있는 곳에 쭉 밀고 가거나 당겨와서 그 물기에 베게 함으로써 바닥을 깨끗이 정리하는 방식의 청소)' 다들 해 보셨을 겁니다.

가만히 서 있거나 걸레질 같은 건 중심을 못 잡는 제 몸 특성상 그따위 해내질 못했을 겁니다.

그나마 그래도 미싱하우스 만큼은 어느 정도가 됐습니다. 틀림없이 이는 어머니한테 저지를 죄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감지했기에 그 거에 대한 참회의 몸짓이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동안 자꾸만 웃음이 터졌습니다. 괴로운 속마음과는 어쩌면 그렇게도 어긋나 전혀 아닌 거처럼 자꾸만 그렇게 웃음이 터졌는지도 모르겠데요.

어제는 마침 바람도 몰아쳤어요. 그 덕분에 창문 활짝 열어서 여기저기 흩날렸을 수분이 어서 빨리 날아가길 바랐었지요.

 

그 모든 것에 앞서서 저는 가장 먼저 현관에 있는 우리 집의 중심 전원 두꺼비집을 내려버렸답니다.

우리 어머니 흥건한 방안에서 어느 순간에 전기에 감전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 정리될 때쯤엔 두꺼비집 다시 올린 뒤에 아까 흥건하게 적셔버린 이불이며 그딴 것들 세탁기에 넣고서 담요 모드로 돌렸답니다.

그런저런 거까지 하고 나니까 겉으로는 어머니와 '화기애애' 그리고 내 방에선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볼 시간이 다 됐던 겁니다.

 

여기까지가 저간의 사정이고요, 새벽에 잠이 깨서 텔레비전 보는 도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쩌면 약이 없어서 안 됐을지도 모르는 거였어!!!'

 

그토록 고쳐보려고 허둥댔건만 끝끝내 무응답으로 일관했기에 아예 '사망신고'를 낸 리모컨이었건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접촉 불량일 수도 있다)을 먹였기에 그 리모컨 아직 버리지 않은 상태로 있거든요.

얼른 다시 꺼냈지요.

 

그러고는 거기 리모컨 중 아직 약이 든 리모컨(LCD 전용 리모컨)이 작동하는지 텔레비전 모니터 겸용의 거기에 전원을 넣고서 그 리모컨을 켜봤습니다.

그랬더니 켜지네요. 이번엔 그 약을 빼서 내 딴엔 이미 사망신고 냈던 그 리모컨에 꽂았지요. 그런 뒤에 떨리는 심경으로 눌러보는데 텔레비전(LCD가 아닌 CRT 텔레비전)이 켜지지 뭡니까?

좀 전에 퍼뜩 생각난 데로 리모컨이 안 켜졌던 까닭이 건전지에 약이 없는 탓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 사랑이 야속하더라 - 03 ~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참에 폐기용 건전지와 뒤섞여서 굴러다니는 제 주변의 건전지(AA형 건전지 또는 AAA형 건전지 등)를 몽땅 쓸어왔답니다.

그리곤 커서 리모컨으로 해낼 수 없는 것(AA형 건전지)은 LED 전등 불빛으로 실험했었고 작은 것(AAA형)은 몽땅 리모컨으로 일일이 하나씩 교차해가면서 확인해서 두 부류로 나누었지요.

 

'더 써도 좋을 건전지(재활용 건전지)'와 인제는 '버려야 할 건전지(폐기용 건전지)' 이렇게 둘로 말입니다.

 

~ 사랑이 야속하더라 - 04 ~

 

 

~ 사랑이 야속하더라 - 05 ~

 

끝으로 어제 평생을 씻어도 다 씻기지 않을 상처 입게 된 우리 어머니께 깊은 사죄의 말씀 올리면서 맺을까 합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죄송합니다. 말로는 뭘 못하겠습니까?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제 마음 그동안 받은 은혜 갚는 데 바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어머니 고맙습니다.'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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