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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18 어^ 저 사람 소장님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어^ 저 사람 소장님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파트 우리 동과 옆 동 사이 중간쯤에 음식물 쓰레기 통 코너가 있습니다.

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면 어머니나 동생 혹은 제가 시간 날 때마다 번갈아서 다녀오는데 어젠 제가 마침 시간이 되어 다녀올 참이었습니다.

 

단지 안으로는 동 사이를 차량도 나다니는 큰길 말고도 보도블록이 깔린 샛길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 동에서 거기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엔 달랑 2~3초라도 더 빨리 나다닐 수 있는 샛길이 하나 더 트였습니다.

당연히 공식적인 길도 아니고 사람들이 자꾸 들락거리니까 그 발길 탓에 만들어진 깊은 산중의 등산로와도 같은 길입니다.

 

늘 그랬듯이 어제 역시도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그것 담았던 통마저 깨끗하게 씻었는데 평소와는 달리 왠지 지름길에 들고픈 생각이 안 미치데요.

그렇다고 보도블록이 깔린 샛길 따라 걸으려는 마음도 아녔기에 그 자리리 크게 돌아 아파트 차도를 따라 들어오려고 했답니다.

 

그렇게 몇 발자국 띄었는데 눈앞으로 건장한 남자 둘이 걸어오네요.

몸 평형이 늘 불안하니까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래쪽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러면 심리적으로도 몸 중심이 아래쪽에 쏠렸을 거로 여겨져 행여 넘어지더라도 최대한 부드럽게 천천히 넘어지려고 애쓴답니다.

그래야 발이나 손목을 삔다든지 여기저기 찰과상 입어도 그 상처가 덜했으니까.

 

누군가가 불렀을 때 갑자기 돌아보면 몸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일쑤인 몸이기에 저 알아서 누군가를 쳐다볼 때도 무척 천천히 고개 돌려서 확인하곤 했어요.

그렇게 눈앞에서도 보고 스쳐서 지나가는 걸 보면서 몸은 천천히 돌렸지만, 마음은 훨씬 급했습니다.

 

- 어^ 저 사람 소장님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

 

제 장애인증 등록 일자엔 96년 6월이라고 찍혔는데 그로부터 1, 2년 전 그 시절엔 막노동으로 살았습니다.

주로 철골 일이라고 부르는데 공장이나 창고 같은 건물을 지을 때 들어가는 H(에이치)빔을 자르거나 용접하는 일이 그것 철골 일입니다.

 

아까 소장님이라고 불렀던 분은 제가 그것(철골일) 초기에 작업할 때 저를 써준 사업주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 일에 다른 소장님들도 다들 비슷한데 그분도 역시 어느 거대한 사업장 한쪽을 빌려 거기서 부품을 만들고는 공장 터나 창고 터로 옮긴 뒤 조립하는 사업을 했던 분입니다.

 

용접봉 잡은 지도 오래됐고 해서 처음엔 무척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나중엔 감이 잡히니까 예전엔 미처 접하지 못했던 구조물의 도면도 보이더라고요.

그랬기에 전에 썼던 도면들 퇴근할 때 집으로 들고 와서는 구미가 당겨 한참이나 파보기도 했었답니다.

 

처음엔 공장 안에서 주로 했었지만, 막상 부재가 다 만들어지니까 머나먼 지역까지 출장 가서 일 끝날 때까지 머무는 날도 잦았었는데…

그러다가 군산에서 큰 공사(대우자동차)가 있다고 해서 나가질 않나 또 당진이었던가 어디에 또 다른 공사(한보철강)가 생겼다고 해서 호기심에 덜컥 나가질 않나…

그 통에 그 소장님과 헤어지게 됐네요.

 

그 뒤로도 다시 제가 살던 광주에 들어와 철골 일을 했지만, 그 자리는 아녔거든요.

막노동이란 게 그렇습니다. 일당으로 월급이 정해지지요.

당시에 전 5만 원짜리 일당이었는데 얼마나 술을 많이 처먹었던지 월급 백만 원 채울 때가 거의 없었답니다.

 

제가 몸 다친 그 마지막 달(노동자 인생 종친 달)에도 하루만 더 나가면 스무날 채워서 목표했던 백만 원을 해내는 달이었는데…

기껏 퇴근한 뒤 죽살이 나게 술 처먹다가 뒤늦게 맘잡고는 집에 온다는 게 그만 이렇게 해롱해롱 돼버렸어요.

 

술 먹은 것도 기억나고 어디서 먹었는지도 기억하며 집에 가야겠다고 떼쓴 것까지 기억하는데 왜 그날 눈 속에 파묻혔다가 119에 실려 가고 그 지역 병원에 방치됐다가 뒤늦게 상황 파악한 병원에서 큰 다른 병원으로 옮긴 뒤 수술했다는데 그 기억은 하나도 없습니다.

20년이 훨씬 더 지났는데도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주변에선 별의별 억측이 난무했지만, 정작 저 자신이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 판국이려니…

 

- 오호~ 이놈의 자판 새로 산 놈이라서 좋기는 한데 엔터키가 너무도 작아서 자꾸만 그 근처 키를 때려 오타가 쏟아집니다. -

 

그나저나 아까 그 소장님 일터에서 일할 땐 친구들도 몇 놈 있었답니다.

애초에 그 일자리 소개했던 놈이 직전에 같은 직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해고됐던 동지로서 한때는 해고자복직 투쟁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포장마차를 함께했던 벗이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들(안귀영과 신익수 그리고 김종근 등등)은 그 자리서 만난 친구들인데 개중엔 소장님과 같은 집안의 친구도 있었어요.

 

'보고 싶다 익수야~ 신익수^^^ 태수(소장) 형이랑 광수(소장의 형) 형님도 잘 계시니?'

모두가 큰 욕심도 없고 인정도 많고 괜찮은 사람들이었죠.

 

나를 비롯해 친구들도 배운 것 별로 없어 무식한 티 줄줄 흘렀지만, 서로 핏대 세운 일 없었고 한마디라도 정겹게 지내려고 애썼던 벗이었는데…

미안하다 친구야. 당시에 나와 영락없이 마찬가지로 YTN에 날씨 전하는 아나운서를 무척 귀엽게 보고 예쁘게 봤던 우리 종근이도 정말 그립습니다.

- 야! 94, 5년의 서진 친구들 어디서 멀쩡하게 잘살고들 있니??? -

 

오늘은 밴드의 어떤 벗 고향이 전라북도 승주라고 써진 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퍼뜩 어제 일을 되돌려보네요. 소장님의 고향이 전라북도 '순창'이었거든요.

- 야! 순창의 익수야~ 지금도 예전처럼 그렇게 술 한 잔씩 꺾어??? -

- 그리고 너희들 모두 장가나 갔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야~ -

 

~ 친구야 손목잡고 ♬ ~

※ 지도 출처: 네이버 지도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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