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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09 사노라면 언젠가는…

사노라면 언젠가는…

 

평소엔 절대로(?) 그러지 않았었는데 하필이면 어버이날에 늦잠을 자 버렸습니다.

늦잠 정도가 아니라 매달 7일에 있는 도시가스 계량기의 계측 눈금 아파트 현관문 밖에 써 놓는 것도 잊은 채 잠들었던 겁니다.

문짝에 그것 독촉장(안내장) 붙은 것 떼어오신 어머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불안해하시면서 부스스한 제 눈앞으로 들이밀더라고요.

 

시계를 보니 저녁 6시도 넘었습니다.

'이 시각이면 다 퇴근하고 없을 텐데…' 긴가민가하면서 급하게 계량기에 다가가서 확인하고는 전화를 넣어봤지요.

출퇴근 시간하고 그것 계량기 검침 내용 보고하는 거는 무관한 거였던지 다행스럽게도 어떤 분이 받아서 처리가 잘 됐습니다.

 

이렇게 늦잠에 빠지고 일상까지 그르쳤던 건 사실 어제로부터 시작했지요.

바람도 쐴 겸 운동도 할 겸 가까운 하천에나 다녀오려고 사실은 나갔던 거였거든요.

그때가 점심때도 한참 지난 시각이라서 멀리 가려도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었고요.

 

동생 놈이 간식으로 사다 준 초콜릿 과자 몇 개를 주머니에 담고서 나가려던 찰나에 며칠 전에 겪었던(다짐했던) 그거가 생각났지요.

- 문밖으로 나가려거든 무조건 안전 장구들부터 들고 나서야겠네(15년 5월 2일) -

하여 그 작은 '안전 가방(주머니)'에 자전거 전조등을 비롯하여 몇 가지를 챙겨서 나섰답니다.

그리고는 가까우니까 대략 2~3십 분 안쪽으로 그 자리에 들어갔을 겁니다.

 

우두커니 앉아서 초콜릿 물고 있는데 가족이나 직장 동료로 보이는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낚시하는 것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저도 자리 좋은 곳에 앉으려고 이리저리 살피는데 거기 돌 틈으로 내버린 낚싯줄 나뒹구는 것도 보였지요.

'아~ 저것 낚싯줄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1 ~

 

그 옛날 초등학교 1학년(1971년)에 막 들어가면서부터 산중 오두막에서 바닷가로 내려와 살았던 그 시절이 아른거립니다.

저런 낚싯줄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였었거든요.

어쩌다가 한 번씩 태풍이 불어왔다가 밀려간 뒤에 저는 온통 바닷가를 쏘다녔습니다.

태풍이 한 번 쓸고 지나가면 요즘처럼 산업 쓰레기(스티로폼, 어망, 음료수병 등의 가정 쓰레기나 공장 쓰레기 등등)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따위가 주류였던 것에 반해 그 시절은 주로 바다에서 나는 먹을 수 있든 없든 해산물(잘피, 파래, 몰, 톳, 청각 등등)이 온통 바닷가를 뒤덮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틈바구니에서 혹시나 낚싯줄이 없을까 해서 그걸 찾아 쏘다녔던 겁니다.

 

주꾸미는 알을 적들로부터 안전한 곳에 쓸기 위하여 커다란 소라껍데기이나 조개껍데기에 파고듭니다.

사람들 참 나쁘지요. 그들의 그런 본능적 습성을 역이용해 사람들은 기나긴 새끼줄에 소라껍데기이나 조개껍데기 줄줄이 매달고는 낮은 뻘밭 연안에 풀어놓고는 다른 것 아무것도 없이 그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철이 좋으면 그 순간의 물 때(우리나라에선 보통 일곱 물 방식, 여덟 물 방식의 두 가지를 씁니다.)에 따라 한 뭇(열 마리) 아래로 걸려들 때도 있고 미끼(조개껍데기이나 소라껍데기)의 수량에 맞게 열 뭇 서른 뭇까지도 잡아내지요.

그런데 장어는 주로 주낙이라는 낚시를 통해 잡아냅니다.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묶어 놓고는 그 낚시마다 신선한 미끼(주로 싱싱한 전어를 가늘게 썬 것)를 달아 바다에 빠뜨린 뒤 그것도 주꾸미 잡는 것처럼 적절한 시간이 되면 훑어오곤 하거든요.

 

그것 장어 주낙의 낚싯줄이 혹시라도 엉켜서 안 풀어지거나 하면 그것 끊어서 바닷속에 수장하는 것 말고 다른 길 있었겠어요?

아주 오랜 세월을 그런 식으로 어망이 형성됐을 텐데 우리의 연근해 바닷속은 지금 온통 쓰레기 천지일 것입니다.

 

태풍이란 게 바다를 포함해서 그 밖의 모든 생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물이란 것이 고이면(사시사철 끊임없이 흐르니까 고였다는 말 자체가 사리에 안 맞는 말이지만) 썩게 마련이잖아요?

그렇게 썩은 물엔 고기도 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지막지한 태풍이 연안 바다 휩쓸고 나면 바다 밑바닥까지 한 번 확 뒤집어지거든요.

이를 강력한 진공청소기가 먼지투성이의 방바닥을 휩쓴 것에나 갖다 댈까요?

태풍이 막 지난 뒤의 어물이 제 느낌엔 이전보다 훨씬 싱싱하고 풍성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바닷가를 쏘다닌 이유는 오로지 그것 바다가 뒤집혔을 때 혹시라도 떠밀려 왔을 낚싯줄이나 낚시를 찾았던 겁니다.

운이 좋게도 어떻게 찾았다면 그걸로 낚실 했었지만, 보통은 무명실(김 만들어내려면 그 사전 작업으로 무척 많은 공정이 있지만, 개중에 하나 발 장(생김을 가루로 내어 넓게 펼쳐서 말리는 데 쓰는 도구) 만들 때 실이 필요하니까 그런 실이 무척 많았습니다.) 끝에 낚시를 묶고 그 위로는 엄지손가락보다도 살짝 작은 돌을 달아서 그 무게로 물에 가라앉게끔 봉돌을 삼아 기다란 신우대는 또 낚싯대 삼고 바닷가 바윗돌에 서서 낚시를 했었습니다.

어머니도 모르게 또 당연히 아버지도 모르게… 그따위 한량 짓 하다가 걸리면 틀림없이 제 다리 부러뜨렸을 겁니다.

 

그런저런 상념에 젖었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문득 그때(15년 5월 7일 오후 4시 44분 정도)는 시간이 어중간하니까 그냥 들어오기는 너무 이른 시각입니다.

해서 그 자리 찾아들었던 길이 아닌 다리를 건너서 저 건너편 길로 빙 돌아서 집으로 가고 싶은 겁니다.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2 ~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3 ~

 

다리를 건너서 한참을 달리다 보니까 아주 예전에 길을 못 찾아서 그쪽 길에서 헤맸던 것들도 다 보였습니다.

너무도 오래간만에 그 길을 달렸더니 또 다른 상념에 빠뜨립니다.

 

'이 길을 쭉 가면 본촌공단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그럼 한 번 가볼까…'

어제의 사단은 거기서부터 구체화했지요.

아직 그 길을 통해서 한 번도 지나보진 않았지만, 예전에 다음 지도를 통해 봤는데 실지로 그 거리 멀지 않은 것 같더라도요.

'본촌공단!'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선 월급도 못 받은 채 끝장났지만, 그 뒤 그 두 번째로 들어간 공장이 그곳에 있었답니다.

83년에서 85년 사이가 될 터인데 그 사이에 한 번 그만뒀었는데 공장(철재 책걸상을 만들어 조달청에 납품했던 공장) 무척 바쁘다니까 다시 들어가서 일해줬던 공장입니다.

또 제가 맨 처음 그 공장에 발을 디딘 까닭에 나중에 제가 다른 곳으로 갔음에도 바로 손아래 동생이나 또 어머니께서도 시골에서 정리하고 올라와서 객지 생활을 처음 시작한 장소였기도 하지요.

공단 가까운 그 부근에 월세를 얻어서 살기도 했었으니까…

 

입대가 거기를 떠난 가장 큰 이유였지만, 군대를 마치고도 그 자리에 가지 않고 변방을 떠돌다가 대구에서 제2 제3의 공장생활을 시작했기에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그 자릴 찾은 것입니다.

삼십 년도 조금 넘었네요. 몇 년 전에 물론 막냇동생 놈 차를 타고서 그 시절 맨 처음 자취했던 집 찾아가 보기는 했지만, 저 스스로 이렇게 맹목적으로 찾아간 건 너무나도 오래간만에 갔던 겁니다.

 

언젠가 한 번은 오비맥주(광주공장 준공 1987.05.)가 들어선다며 산이고 논밭이었던 그 자리 터파기 공사가 한창일 때입니다.

거기 높이 쌓아서 잘 다져진 둔덕에 기타를 메고 올라앉아서 흥얼거리고 왔을 때가 언제였을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엔 분명히 그 자리가 '연초제조창'이었었는데 어제는 'KT&G 광주공장'이라고 그 이름마저 바뀌었더군요.

'오비맥주'도 보이고 '해태' 간판도 보였었는데 그 자리가 어디쯤인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힙니다.

그 옛날 그쪽 뒷산으로 공기총(아는 형님 공기총 몰래 들고 나가서) 들고 다니며 사냥하려고 했던 그런 자리로는 도저히 안 믿어지데요.

아직은 해가 창창한데도 너무나도 번화가로 변한 그곳이 인제는 낯설어집니다.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4 ~

 

은근히 걱정이 앞서데요.

이리 달려도 모르겠고 저리 달려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정녕 찾아들었던 그 길의 큰 줄기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이야!'

마침내 처음으로 휴대폰에 도움을 구했답니다.

'오케이~ 됐어. 됐어! 알았어!!!'

그 지역을 더 줄여서 봤더니 제가 처음 출발했던 영산강 줄기가 보입니다.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5 ~

출처: 다음 지도

 

일단은 그 자리가 어딘 줄은 알지만, 동서남북의 방위를 못 잡겠기에 어디라도 달려가서 누구라도 만나면 물어보기로 했답니다.

'해지는 방향이 서쪽!'

그런 식으로 방위를 잡는다면 못 찾을 것도 없었겠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걷는다'는 속담도 있잖습니까?

제 판단이 옳았습니다. 얼마쯤 가자 사통팔달 복잡한 곳에서 마침 중고생쯤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을 만났는데 붙잡고서 물었지요.

'저기요! 영산강이 어디쯤 있어요?'

'예? 영산강이요? 이쪽으로 가면 맞을 거예요!'

그 소리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 가느라고 여태 얼마나 많은 오르막길이며 내리막길을 달렸는지 모르니까요.

그것도 짐작했던 방향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차도의 순방향이 아닌 울퉁불퉁한 자전거길에서 역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젊은 친구의 조언을 따라 무작정 그 방향을 달렸지요.

얼마쯤 지나치니까 드디어 엄청나게 반가운 도로의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 첨단단지' 이 정도면 끝난 겁니다.

 

달리고 또 달려서 드디어 거기 떨구어 놓으면 걸어서도 찾아올 수 있을만한 곳에 들어왔네요.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6 ~

 

저 다리는 무척 넓습니다.

그래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차도에서의 차량 속도 무척 빠릅니다.

제 기분 좋은 것과 차도에서의 위험 지수는 무관한 거잖아요?

한참이나 차도를 달리다가 드디어 차도를 벗어나서 자전거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답니다.

자전거 곁을 스쳐서 지나는 돌아가는 승용차가 너무도 가까이 붙었습니다.

하여 맞보는 방향으로 직진해서 오르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오르려는 자전거도로와 같은 방향에서 핸들만 꺾고서 올라가 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자리 턱이 다른 곳 진입로보다도 더 높습니다.

자전거가 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미끄러져 버렸지요.

애초부터 천천히 들어섰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오히려 흠이 됐던지 대리석 위로 미끄러지는 자전거 브레이크도 안 먹습니다.

서서히 쓰러지면서 손을 짚었는데 손바닥이며 팔꿈치 그리고 엄지손가락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지나는 사람 많지 않았기에 서두를 것도 없이 안간힘 써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 자연스럽게 희망이_되어 - 07 ~

출처: 다음 지도

 

엄지손가락이 부러지진 않은 것 같은데 손톱 끝이 벌써 살짝 들춰진 듯하면서 피가 맺혔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앞쪽으로는 시커멓게 멍들어가데요.

이것도 다행이면 다행이겠지요. 마침 브레이크가 있는 왼손이 아니고 오른손이었기에 겨우 추슬러서 올라타고는 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지요.

인제 겨우 3~4백m만 더 가면 거기에 우리 집이 있는데…

'으흐흐 아프다…'

벌써 자정을 넘겼으니 어제 일이 아니고 그제 일이 돼버렸습니다.

그까짓 엄지손가락 좀 다쳤다고 몸뚱어리 요것 형편없습니다.

숟가락질 젓가락질도 못 하지 설거지는 또 어떻고?

거기다가 우습지만, 화장실에선 완전히 훌러덩 벗어야 그나마 세수라도 하거든요.

크크크…

 

그런저런 이유로 그날 밤 올랐어야 마땅한 글이 이제야 오르게 됩니다.

 

그간에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제가 만약 야구 선수였다면…

투수와 같은 중요한 선수가 만약에 어쩌다가 나처럼 손가락이라도 부서졌다면…

 

끔찍하잖아요?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매사에 안전사고 조심하세요~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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