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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샤워·수돗물 바꾸는 핸들이 이렇게도 간단했던 걸 그 긴 세월 뭐 했던고?

 

어젯밤 그도 아주 깊은 밤의 일인데 양변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무념무상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러다가 그 무심한 시선이 바로 옆의 샤워기가 달린 수도꼭지(샤워 겸용 수전)로 옮겨갔지요.

그건 말 그대로 샤워기와 수돗물을 조작에 따라 골라 쓰는 기구라서 거기 수돗물 나오는 꼭지 위쪽에 달린 핸들을 위쪽으로 당겨놓으면 샤워기가 되고 다시 꾹 눌러서 원상 복귀 해두면 그 밑으로 수돗물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 샤워기의 평화를 위하여 - 01 ~

 

- 야~ 저거 잘만하면 어떻게 될 것도 같은데 말이야… -

 

벌써 19년째가 됐네요. 2000년도에 이 집에 이사했는데 이사든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아파트란 곳을 살 터전으로 자리한 것도 난생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죠.

그중에서도 특히 온갖 시설이 다 갖춰진 화장실이 좋게 보였습니다.

 

그랬었는데 막상 샤워라도 해볼라치면 아주 잠깐은 샤워기 쪽으로 물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쫄쫄거리다가 수도꼭지로 새는 물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샤워기로 물 나오는 시간이 고작 이삼십 초에 불과하니 속에서 화딱지가 나는 겁니다.

 

도저히 못 참겠데요. 그래서 이것 해소할 대안으로 시설한 게 저기 보이는 저 젓가락 갈고리예요.

마침 각이진 쇠젓가락 넓이가 핸들의 틈새와 비슷했기에 그놈을 깔때기꼴로 구부렸어요.

 

그렇게 구부린 놈을 핸들에 꽂아 좁은 쪽으로 당기면 핸들이 벌어져서 샤워기 쪽이 열리고요, 넓은 쪽으로 밀어 버리면 틈새에서 빠져서 핸들이 내려가니까 수돗물 쪽을 쓸 수 있게끔 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저 자리에 놓였던 세월이 어느덧 열아홉 해나 됐다니…

 

- 저것도 분명 산업 기기 중 하나니까 틀림없이 그 조작 원리가 있을 거야 -

- 그 조작원리만 캔다면 틀림없이 무슨 방도가 나올 거야 -

 

그런 맘으로 양변기에서 내려와 놈을 유심히 살폈답니다. 늘 봐왔던 거지만 그때처럼 유심히 봤긴 또 처음일 겁니다.

아래쪽으로 샤워기가 달린 호스를 연결한 곳에 인제 보니 아주 작은 나사가 하나 박혔습니다.

 

그게 무슨 실마리가 될까도 싶었지만, 너무 늦은 밤이라서 그 어떤 것도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어요.

그러고는 오늘 아침에 잠이 깼는데 얼마나 밤새워 뒤척였던지 왕창 늦잠을 자버렸네요.

 

오! 지금 생각하니 화장실 들렀던 시각이 어젯밤도 아니고 오늘 새벽의 이른 시간대였습니다.

아까는 잠들었던 기억 탓에 잠시 헷갈렸네요. 죄송~

 

하여튼, 일어나자마자 드라이버며 펜치를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지요.

그러고는 대뜸 샤워기 호스가 연결되는 곳에 달렸던 나사를 풀었답니다.

 

그랬더니 호스 좌우로 돌게 했던 그 틀이 툭 빠졌지요. 했는데 놈을 수전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게끔 지지대 역할만 했지 놈이 가진 다른 기능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도 기왕에 빼버렸으니 그대로 둔 채 수전을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이번엔 거기 끼워졌던 젓가락 걸쇠를 핸들에서 빼버린 채 말입니다.

 

그러자 뭔가가 보였습니다. 먼저는 그것 핸들 뚜껑처럼 보이는 반들반들한 것 이리저리 돌려보니 틈바구니가 보였다는 것과 거기 젓가락이 들어갔던 틈바구니 안의 핸들 부위가 완전히 동그란 게 아니고 어느 부위는 일자로 편편했던 게 보였습니다.

우선 뚜껑 위의 작은 틈새로 일자 드라이버를 넣어서 젖혔더니 아주 가볍게 뚜껑이 빠져나옵니다. 놈은 아무것도 없이 말 그대로 그냥 뚜껑일 뿐이데요.

 

이번엔 아무래도 거기 핸들 안쪽으로 납작하게 패인 부위가 걸렸습니다. 틀림없이 거기에 뭔가가 있을성싶었어요.

화장실에서 나와 아랫도리를 걸친 뒤 거실의 공구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양날에 스패너가 달린 스패너 세트가 있었으니까…

 

스패너 큰 놈들은 아예 핸들의 틈새가 좁아 들어가지도 않고 여러 개를 꽂아봤는데 14mm에서 15mm나 16mm 어디에서 걸린 놈이 있었습니다.

그놈이 걸렸기에 서서히 왼쪽으로 돌리니까 그 뭔가가 풀어지는 느낌 - 이게 실마리다 싶어 날아가는 느낌^^^.

네. 마침내 풀렸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그놈 샤워기와 수돗물을 결정 짓던 핸들이 그 자리서 빠진 겁니다.

 

별것도 없었습니다. 원래 그랬던 거처럼 잡아당기면 늘어나서 커지고 밀면 다시 작아져서 원상으로 회복하고 그런 구조였는데 잡아당겨 늘어났다가도 잠시 후면 다시 원상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보였지요.

문제는 그것이 가능케 했던 게 바로 그 안에 스프링이 감긴 탓으로 그랬던 겁니다.

 

- 이것이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잡아당긴 뒤 돌리거나 했을 땐 그 상태로 고정됐어야 했을 거야! -

 

커다란 스프링도 아니고 볼펜 심 끝에 달린 스프링 두께와도 별 차이 없을 만큼 가는 스프링입니다.

대신 살짝 더 두껍게 느껴졌고 또 그 모양새도 핸들 내부를 다 채울 만큼 나선형으로 컸지요.

 

어쨌든 놈이 올려둔 핸들을 다시 밑으로 끌어내린 주범이니까 끌어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송곳으로 쿡 찌른 뒤 걸려들면 끄집어냈어도 충분했을 걸 다시 공구함에서 아주 작은 주둥이 긴 '롱로우즈플라이어'를 가져와서 속으로 밀어 넣고 스프링이 닿을만한 아무 데라도 집은 뒤 당겼더니 그냥 걸려듭니다.

 

스프링 두께가 워낙 작았었기에 그랬던지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놈이 흐물흐물(탱글탱글?) 빠져버립니다.

 

그러고 핸들에 검정 고무 패킹이 달렸는데 그것이 헐었기에 제 손이 까매졌습니다. 손이고 핸들이고 간에 수세미에 비누를 묻혀서 깨끗이 닦아냈어요.

그런 다음 스프링 빼버린 핸들을 원래대로 꽂았답니다. 아까 빼 뒀던 뚜껑도 다시 꽂고요.

 

이렇게 해서 고장 났던 '샤워 겸용의 화장실 수전'의 '수리'가 끝났습니다.

 

~ 샤워기의 평화를 위하여 - 02 ~

 

스프링이 없으니까 혹시라도 핸들이 헐거워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거기 진득한 마찰력이 있는 거 같데요.

주섬주섬 작업했던 연장들 제자리에 갖다 두고는 홀라당 벗어 입었던 옷은 빨래통에 넣었지요.

그러고는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씻어봤지요.

 

화장실을 나와 불을 끄면서 환풍기도 틀지 않고 샤워했다는 거에 큰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그 직전에 샤워할 때는 추워서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완전히 찬물 쪽으로 돌려서 씻었다 해도 손가락이 얼어서 깨질 것 같았어도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그렇지 실제로 영하 날씨는 아녔을 겁니다.

적어도 십도 내외는 됐을 텐데 온몸이 바들바들…

 

대신에 대갈통은 무척이나 시원하데요. 거기 빨랫비누 닮은 거로 머리 감은지도 몇 달째 돼가는데 그냥 맹물이 아니어서 그랬는데 이건 시원하다 못해 상쾌했었답니다.

 

- 이 글을 쓰는 동안 그것 샤워기 수전을 보는 내내 옛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아아~ 그 사람은 잘살고 있을까? 아아~ 우리 행복할 때 저놈 샤워기도 무척 행복했겠지??? -

 

- 아아~ 세상의 젊은 청춘이라면 누구나가 다 아실 겁니다. 그것 샤워기가 뭘 보고 느꼈을지를… -

- 그 세월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났을지를…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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