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창 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세월_앞에_망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10.17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어쩌면 나 이리도 간사하고 한심해졌을까요.

이따금 그분이 떠올랐습니다. 토기처럼 선한 그분의 눈망울, 말끝마다 차분하고 다정다감했던 그 언사…

그랬었던 그분 가신지도 어언 스무 해가 넘었겠네요.

 

그 긴 세월을 저는 뭐가 됐으며 뭐로 살았는지 깜깜합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그렇게 차오를 때마다 그분 보고 싶었습니다.

 

부산 아니지, 전부터 짐작만 했지 확실히 몰랐던 그 자리! 이번에 찾아보면서 확실해진 경상남도 양산의 솥발산에 누인 조수원 열사 이야깁니다.

얼마 전에 저의 어떤 분이 영면하셨기에 시골 내려가서 장사를 치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부산에서 오신 한 형님과 무슨 이야길 나누던 중 우연하게도 그 자리를 말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진상을 정확히 몰랐던 제가 괜히 좀 아는 척 '부산의 솔밭산 공원에 누운 한 친구(?)'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했더니 형님 '거기 부산에 있는 게 아니라 밀양인가 어딘 기라^'하셨거든요.

 

40여 년도 훨씬 더 된 아주 먼 옛날 홀몸으로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움막을 짓고 온 산천에 염소를 풀어놓고 기르셨던 형님이셨습니다.

'형님 그 깊은 곳에서 안 무서웠어요? 밤이면 비둘기 울고 난리가 났을 텐데요'

제가 산중에 살면서 뻐꾸기 부엉이 소린 다 아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깊은 밤중 '구구~ 구! 구^' 울어대는 그 소리 정체를 몰라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아주 먼 훗날에야 그놈이 비둘기 우는 소린 줄 알았지 그 시절(1963년부터~1970년까지)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너무 어려서 비둘기가 뭐였는지도 몰랐거든요.

 

'비둘기 그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기라 / 그 첫날밤에 어찌 됐는지 아나 /

자보려고 눴는데 그 뭔가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은 기라 / 그 산중으로 그 밤중에 누가 왔을 리가 있나 /

머리끝이 바짝 서고 등골이 오싹했겠지 / 그 뭔가가 와서 산 쪽으로 내 논 봉창을 두드리는 거 같았어 /

그렇게 무서운데 어떻게 잠이 오겠어? /

해서 문밖으로 나와서 기어이 그걸 캐내고 싶었지 / 그 밤중에 집 뒤꼍을 샅샅이 뒤진 뒤에야 찾아냈지 뭐 /

내 거기 겨울에 안 들어갔나? /

집 뒤쪽으로 봉창 내면서 그 자릴 좀 많이 파냈는데 그 분분 파낸 자리 위쪽에 달라붙었던 흙이 /

얼었다가 녹으면서 이따금 봉창으로 쏟아졌는데 그 소리가 바로 그거였던 거야'

 

그때 형님이 솔밭산이라고 했는지 솥발산이라고 했는지 저는 아직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야기 본론은 저한테 절대로 자살하지 말라는 거였으니까 그거 말고는 또 아무것도 걸릴 게 없었으니까.

 

가끔 옛날 친구들 만나며 그분(조수원 열사)을 꺼내서 나중에 언젠가는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랬습니다.

지난 추석을 지나면서도 친구들 따로따로 들렀기에 개중 한 놈한테 그 얘기 꺼냈더니 그럼 그러자고 하데요.

최소한 절반은 따놓은 셈인데…

 

궁금했습니다. 부산에 형님도 그 자리가 부산이 아니라 했고 나도 잘 모르니까 궁금하고…

문제는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조수원 열사' 그 이름마저도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 어쩌면 나 이리도 간사하고 한심해졌을까요 -

 

검색엔진에서 마구 뒤지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성씨와 이름 비슷한 걸 찾아냈습니다.

그 옛날 그 시절 나와 대척점에 섰던 놈 이름이 조수원 열사 이름 성과 비슷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한참을 더 뒤진 뒤에 겨우 정확히 찾아냈지요.

어쩌면 우리 함께 지냈던 '민주당 마포 당사'를 먼저 연결했다면 더 먼저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었어요.

 

하여튼, 이름 성 정확히 알아내자 이제는 열사가 묻힌 자리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 역시도 검색엔진과 네이버 다음 지도 모두를 공략하여 그 자리 솔밭산이 아니고 '양산의 솥발산공원묘원'이란 것도 확인합니다.

 

~ 덧(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 인생 - 01 ~

 

 

~ 덧(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 인생 - 02 ~

 

그 모든 것 확인했는데 이번엔 왜 이리도 허전하고 허탈합니까?

예전에도 그런 순간이면 귓가에 걸릴 듯 입가에 맺힐 듯 아스라이 스치는 거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꽤 오래됐지요? 김창완의 어쩌면 '산울림의 청춘'이 말이에요.

 

~ 덧(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 인생 - 03 ~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젋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곳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청춘

지고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이건 이 글의 주제와 별 상관도 없지만, 제가 조수원 열사를 잊지 않으려고 떠올렸던 착상 중 하나입니다.

그 옛날 제가 살았던 시골 마을엔 두 개의 커다란 골짜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엔 우리 처음 오두막이 있었던 골짜기고요, 그 나머지가 더 큰 골짜기인데 훗날 우리 모두 산산이 흩어지자 형님 홀로 찾아들어 움막 짓고 살았던 골짜기지요.

그런데 그 골짜기 최근 10여 년 새에 툭 막아서 커다란 저수지 돼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옛날 형님 살았던 흔적이라곤 깡그리 사라지고 산등성이와 산골만이 기억해 낼 것입니다.

그것이 고흥에선 유력한 '수원지'가 됐어요.

 

그러고 그 나중에는 제가 바닷가로 내려와서 살았기에 바다 생태를 많이 뀄거든요(물론 저만의 착각이겠지만,).

통발이나 그물을 써서 고기 잡는 거 말고도 달과 해가 만들어주는 조수간만의 차 탓으로도 바닷가 걸(개펄이 아닌 굵은 돌이나 바위의 거친 환경)에서 해산물(게, 낙지, 해삼, 미역, 바지락, 민물장어 등등) 채취할 일이 잦았습니다.

매일 두 번의 밀물과 썰물도 중요했지만, 매달 두 시기를 갖는 씨 때(음력 1일과 15일을 전후하여 밀물 썰물 차가 가장 큰 시기)가 그리도 기다려졌었답니다.

또 연간 어느 달 씨엔 그것 간만의 차가 최고점에 이르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 날 바닷가 저 아래까지 내려가면 눈에 띄는 것 그 모두가 보물이었습니다.

여기도 해삼 저기도 해삼 그냥 마구 주워 담고요, 곳곳의 미역이며 청각이 지천인 데다 그런 자리서 아무 데나 호미로 후벼 파면 아기 주먹만 한 굵은 바지락도 물 픽픽 쏘면서 널렸었지요.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저는 조금이라도 바닷가에 가까이 사는 선두주자로서 가벼운 습득보다는 보다 고난도 채취가 목적이었습니다.

 

물 밖에서는 50kg 100kg 나가는 제아무리 듬직한 돌덩이라도 물속에서는 그 절반도 못 나가는 멍텅구리 돌덩이에 불과하거든요.

그런 돌은 누구도 감히 덤비질 못하니까 저 같은 부류들이 주로 덤벼들었죠.

아무도 건들지 않은 만큼 그 속에는 틀림없이 커다란 게('돌게'라고도 하고 '독게'라고도 부름)가 있거나 낙지가 들었습니다.

문제는 놈이 외부에서 자기 있는 거 확인할 때쯤이면 벌써 눈치채고서 잽싸게 튀어 버린다는 거였지요.

 

'물 만난 고기'라는 말 달리 있겠습니까?

주꾸미 주낙에서도 바깥으로 감싸고 있는 주꾸미가 물 밖까지 미치기 전에 잽싸게 물속에서 덮쳐야지 그러잖으면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지는 그 원리와 여기서도 매한가집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커다란 바윗돌을 가슴에 안은 채 엎드려서 바위 밑을 더듬다가 게라도 걸릴 것 같으면 그놈 게가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게끔 가장 먼저는 놈의 심기를 건드려서 제 손가락을 물게 하는 거였지요.

놈이 물고 있는 처지에선 도망가지 않으니까요.

그다음은 다른 손마저 놈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부려서 놈에게 접근한 뒤에 놈의 등과 바윗돌 표면이 맞닿게끔 위치시키곤 살짝이 잡은 뒤 놈이 물었던 손가락을 놓게끔 놈에게 가했던 거슬리는 행동을 일절 멈춥니다.

그러면 놈이 다른 손에 의해서 이미 잡힌 줄도 모르고 가만히 풀어주거든요.

그렇게 되면 인제 바윗돌을 넘어뜨리든지 다른 방식을 써서 물속 커다란 돌의 틈바구니에서 빼내든 백에 아흔아홉은 잡은 겁니다.

 

그렇게 건져 올린 게의 등에는 그 게가 얼마나 컸던지 '굴통'이라고 불리는 기생 어패류가 붙었기도 했지요.

그놈의 굴통 참으로 징그러운 기생충이지요. 굴 껍데기처럼 날카로워서 그놈 떼다간 자칫 손바닥 피로 흥건해지기도 했으니까요.

 

김을 하려고 통통배에 싣고 개펄에 긴 말뚝(대략 10m에서 12m 사이의 둥근 낙엽 송이나 대나무)을 박아보면 바닷말이 사는 수위가 대충 보입니다.

그놈 말뚝이 마치 고층아파트 같지요.

저 아래 개펄에 묻힌 부위엔 아무것도 없이 말끔하지만요, 그 자리 1~1.5m를 빼고 그 위로 대충 1, 2m엔 아까 말했던 굴통이 붙었고요, 그다음으로 청각이 붙었지요.

청각과 미역이 자랐고요, 다음으로는 파래가 붙어요, 파래 위로 드디어 김이 자랍니다. 요놈 위로 맨 위쪽이 흔히 해장국에나 들어가는 매생이라는 해초가 자랍니다.

 

굴통이 커가는 수위만 1m에서 1.5m의 넓은 수심 폭을 갖고 그 외는 대부분이 얼추 30cm에서 45cm 사이의 생태 수역을 갖지요.

그러니까 좋은 김을 만들어내려면 이것 수역관리가 핵심입니다.

 

그것 새끼줄이나 나일론 줄로 잘 묶었다 해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조류 탓으로 또 바람에 흔들리는 양식장 탓에 어느 순간에 그것 조절해 둔 거가 무용지물 돼버리니까.

또한, 무엇보다도 좋은 해산물을 얻으려면 바람과 햇살 그리고 적당한 유속의 조류 이 삼박자가 가장 큰 자산일 것입니다.

 

흔히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도 그러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바다 농사 역시도 하늘이 돕는 거였네요.

 

~ 덧(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 인생 - 04 ~

 

하늘아, 고맙다~

 

 

Posted by 류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