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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13 내 밥상이 낡아빠진 양말 한 켤레를 다 먹었습니다.

내 밥상이 낡아빠진 양말 한 켤레를 다 먹었습니다.

 

 

지금 걸 사들이기 전의 원래 밥상이 사실은 훨씬 더 고풍스럽고 적당했어요.

네 개의 접이 발은 지금 거와 비슷했지만, 상 전체가 나무 원목(?)에 짙은 갈색으로 옻칠 된 상이었습니다.

 

저렇게 조그만 걸 밥상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라고 찻상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어쨌든 십 년을 썼을지 20년을 썼을지도 모를 그걸로 몇 년 전 딱 석 달만 술 끊기로 했는데 아직도 술을 안 먹게 된 그걸 결정했던 그날(2012년 6월 27일)이 오기 전까진 그 찻상은 언제나 저의 주요한 먹거리를 담당했던 주안상이었답니다.

 

그놈 어찌나 미끄럽던지 술잔이 올라가도 주르륵 미끄러지고 어쩌다가 술과 함께 밥 끼니가 겸상 됐어도 밥그릇이 그냥 미끄러졌던 상입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몸이 흔들리는 제가 그 모든 것 부엌에서 차려 안방까지 들고 오기란 제가 살아온 모든 기간의 극기훈련보다도 더한 고통이었고 더한 훈련이었답니다.

 

그 모진 세월 제 몸과 맘 단련했던 도구이자 교구 나아가 스승(?)이었던 개념 가진 상징이었건만, 그 역시도 세월의 무게 앞엔 못 당해내더라고요.

밥상 다리 흔들려서 들어간 철 나사만 얼마나 박았는지 모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옻칠해 둔 자린 또 갈라지고 벗겨져서 맨살이 뻔히 드러나 있지, 색 바래서 덕지덕지 붙은 꼴이란 또 얼마도 추(?)했던지…

결국은 그것 갈아치워야 했습니다. 당장은 그놈 버리지 않고 거실 어느 구석에 박아뒀지만, 지금은 훨씬 격이 떨어지긴 해도 새로 산 이걸 쓰는 중입니다.

 

요것도 나름 그 바탕이 도톰한 나무판이라서 괜찮을 거로 여겼는데 막상 쓰려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의 술상처럼 맨바닥에 곧바로 차리지도 않고 미끄럼 방지판(냄비 받침판)을 두어 예전처럼 시체처럼 굳은 자세로 초당 10cm 속도를 낼 필요도 없는데도 그냥 손이 미끄러워서 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안 차렸는데도 말이에요. 하여 가장 먼저는 밥상의 네 면 뒤편으로 기역 앵글을 박았답니다.

그놈을 박으니까 제법 마찰력이 있어 상을 접거나 들 때 제법 효과는 있었지요.

그러나, 제 생활 방식상 밤낮이 따로 없었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은 주로 자정 안팎에 드는 습관인데 그 시간에도 그렇고 또 깜빡 그 시각을 넘겨 이른 새벽에라도 그렇고…

그 시간에 저 상을 식탁에 내리는 순간의 쩌렁쩌렁 울리는 접착 음(식탁 유리와 밥상 다리의 쇠가 부딪히는 소리)…

집안이 나 홀로 사는 것도 아니고, 가정의 나머지엔 치명적 수면 방해 소음이 틀림없을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방지책으로 뭘 해볼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바닥 긁히지 말게끔 고안된 걸상 발이 떠오른 겁니다.

짝은 안 맞지만, 마침 집에 그런 게 몇 개가 있어 얼른 가져다 박아봤어요. 했더니 처음엔 정말이지 안성맞춤이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밥상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도중에 놈 중 어떤 놈이 빠져서 어디론가 굴러가 버리고 그러더라고요.

 

그대로 둬선 안 되겠기에 좀 큰놈엔 헝겊 줄을 달아 책상다리 철판에 묶었고 작은놈은 접어서 타이로 가운데를 묶어 못 빠지게끔 해보려고 했는데 하나는 됐고 나머지는 너무 약해서 찢어져 버렸답니다.

하는 수 없이 헝겊 줄 묶은 놈, 타이로 맨 놈, 아무것도 안 한하고 그냥 걸상 발을 박은 놈 그러고 남은 마지막 자리에 오늘의 주인공인 양말이 투입됐었습니다.

 

제 양말 중 유독 늘어난 놈이 있었거든요. 할머니 버선발 신기듯이 그냥 신겨만 둬선 안 되는 거라서 그 역시도 헝겊 줄로 꽁꽁 묶었지요.

이렇게 나름대로 무장하고 나서 이틀쯤 지났을까요? 그날도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이번엔 눈에 확 띄게 아무것도 안 했던 놈이 빠져서 굴러가는 겁니다.

그래도 놈이 예의를 갖춰 빠졌으니까 저도 가던 길 멈추고 다시 주워서 조용히 박은 거로 정중히 대했어요.

 

대신 끼니를 다 두르자 상 위쪽 물건들 맨손으로 그냥 접어든 채 부엌 싱크대에 옮겨두고는 전에 한 짝만 쓰고 홀로 남은 나머지 양말을 꺼냈답니다.

 

인제 드디어 제 밥상이 완전무장했습니다.

물론 영원할 순 없겠지만, 이보다 더 나을 수도 없을 겁니다.

 

지금 다 써 놓고 사진 속 제 밥상을 들여다보니 상다리 모두 접으면 가운데 모이는 부위에 나무토막 하나 비닐 테이프 붙여 접이 충격음 줄이려 했던 고상한 노력도 있었음을 느낌입니다.

오늘은 여태 한 끼만 들어서 그런지 은근히 배가 고프네요.

 

'야^ 밥상아~ 오늘 밤에 배고픈 이 몸 알아서 책임질 거지! 응?'

 

~ 헐거워진 양말의 새 출발은 무죄 - 01 ~

 

 

~ 헐거워진 양말의 새 출발은 무죄 - 02 ~

 

 

~ 헐거워진 양말의 새 출발은 무죄 - 03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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