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창 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어머니! 부디 노여움 푸시고 푹 주무십시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2.06 어머니! 부디 노여움 푸시고 푹 주무십시오!

† 어머니! 부디 노여움 푸시고 푹 주무십시오! †

 

작년 해넘이와 올 해맞이는 친구 어머니 저세상으로 모시는 거로 마무리 진 것 같습니다.

그일 하면서 너무 서두른 탓에 그만 넘어졌는데 여태까지 여전히 옆구리 결리고 온몸이 찌뿌둥하네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좀 나아질 걸로 기대했지만, 한 주일이 다 돼 가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까 하는 수 없이 약국에 들렀네요.

제가 허리나 발목을 자주 뼜기에 늘 보는 아저씨는 2천 원짜리에서 한 단계 독한 3천 원짜리로 주곤 하던데 그날은 아저씨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있더라고요.

붙일 것을 같이 줄 거냐고 묻기에 그건 필요 없다고 했더니 정으로 된 알약을 줍니다.

그날이 그저께였는데 2천 원짜리라데요.

이렇게 안 들 줄 알았다면 아니 아저씨랑 마주했다면 더 독한 3천 원짜리로 가져왔을 텐데…

 

설 쇠고도 며칠이나 지났는데 가까운 동네만 돌았지 하고많은 날 방구석에 처박혔다는 게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막냇동생은 그 일을 겪은 후 감기몸살로 끙끙 앓으면서도 꾹꾹 버텨내면서 일 나가는데 형이란 작자가 이래서야 어디…

그런 생각이 스치니까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더라고요.

 

'밖으로 나가면 추울 테니까 단단하게 채비하자!'

- 면장갑, 목도리, 방한모자, 전조등과 깜빡이, 지갑, 휴대폰, 자전거 열쇠 -

대략 그 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점심도 안 먹은 상태라서 뭐라도 좀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거실에 나와보니 부엌에 감귤 봉지가 보였지요.

어머니 약국인가 당뇨 수치 확인하려고 드나드는 병원 그것도 아니면 아파트 경로당에서 얻어왔을 알맹이가 아주 적은 알사탕도 보입니다.

감귤 푸짐하게 다섯 개에 알사탕 세 알을 봉지에 싸서 자전거 공구가방(안전 백)에 담았지요.

그러고는 집을 나섰답니다.

그때가 네 시 반을 조금 넘어섰을 땝니다.

 

막상 아파트를 내려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졌거든요.

또 뭔가를 빠뜨리고 나온 거 같기에 찜찜하기도 했었고요.

일단은 하천길(영산강 천변 자전거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가 '고창 담양 고속도로'를 만나면 더 올라갈지 거기서 그만두고 내려올지는 해거름을 봐서 판단하리라고 달리는 중이었습니다.

'아차 안경을 빼먹었네! 엉! 그러고 보니 집에 아무것도 안 써놓고 그냥 나왔네!'

그제야 생각이 나는 겁니다.

 

집에서 나와 삼사십 분쯤 달렸을 거예요.

이미 하천도로에 접어들어서 달리는 중인데 그제야 목적지가 슬며시 바뀌는 겁니다.

'이렇게 막무가내 나갔다 오면 뭐하나? 아버지한테나 다녀오자!'

곧바로 올라가야 담양 쪽으로 들어가는데 꺾어서 '용산대교'를 건너버리는 겁니다.

A

 

그곳으로 들어서면 아버지 누워계시는 광주시립묘지인 '영락공원'이 있거든요.

계속하여 올라가는 길이라서 내려올 때는 날아가지만, 찾아들면서는 무릎이 고생깨나 해야 하거든요.

기왕에 다짐했으니 무릎 좀 쑤시는 것! 그 정도쯤이야 뭐^

B

 

집 나오면서 은근히 걱정했었답니다.

'산중에 들어가면 금세 해져버릴 텐데…'

지난해 어느 여름날에 그곳에 들렀다가 오면서 너무나도 일찍이 해가 지는 바람에 길을 잃고는 죽을 둥 살 둥 몰랐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아니지. 동지가 지났으니까 밤이 많이 늦어진 것이네요.

 

친구 놈이 와서 그랬을 리는 없고 저번에 왔을 때도 사방에 담배꽁초며 시든 생화 또 빈 술병이 나뒹굴어서 여간 기분이 상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자리가 지저분하더라고요.

내려가면서 가져가려고 우선 급한 대로 대충 한쪽으로 몰아세웠답니다.

그러고는 점심 대용으로 먹으려 했던 것 그 자리에 올렸네요.

산소에 오르면서 다른 분들에겐 이미 인사를 나누었거든요.

너무도 늦은 시각이라서 꽃집도 문 닫았고요, 일대에 산 그림자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었답니다.

그래도 계단을 오르면서…

'모두 잘 계셨나요? 내가 왔습니다.'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제가 또 왔습니다. 잘들 계셨습니까?'

그렇게 올라서서 대충 치워놓고 절 올리고 나니까 드디어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며칠 전에 막냇동생이 한 손으로 사진 박는 것 가르쳐줬는데 아무리 해도 저는 그게 안 됩니다.

생각해 보니까 그럴 만도 하더라고요.

날이 따뜻하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날씨가 차가워지면 온몸이 엄청나게 떨리거든요.

머리도 떨리고 손발도 떨리고…

제가 앓는 장애의 본질인 뇌 병변이 본색을 드러낸 거겠지요.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답니다.

도리가 없기에 두 손으로 받혀서 겨우겨우 박았답니다.

01

- 2014년 2월 5일 오후 6:03:51 -

 

문자 한 통 들어온 것이 있기에 눌러보니 막냇동생한테서 들어왔네요.

오늘 상갓집에 다녀올 테니 전에도 늦으면 늘 그랬던 거처럼 먼저 밥 먹으라는 문자입니다.

제가 거기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는가 봅니다.

아버지 산소에 들렀는데 귤 까먹는 중이라면서 다 까먹고 나면 내려갈 거라고 답장해 줬답니다.

02

- 2014년 2월 5일 오후 6:05:03 -

 

그러나 실제론 다 못 먹겠더라고요.

껍질 뒤집은 놈만 까먹고는 나머지는 다시 챙겨 오기로 했답니다.

그리고는 굴러다니는 술병이며 시든 꽃바구니·담배꽁초를 챙겨서 내려왔지요.

03

- 2014년 2월 5일 오후 6:05:46 -

 

집에까지 들고오기는 아무래도 어려웠을 텐데 마침 아래쪽엔 음식물 찌꺼기 통을 닮은 쓰레기통이 준비되었거든요.

아직은 어둠이 덜 깔렸지만, 그 시각이 돌아오려고 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벌써 어두워질 게 뻔한 시각입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랜턴하고 깜빡이 챙겨온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04

- 2014년 2월 5일 오후 6:15:24 -

 

예상대로 공원묘지에서 얼마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바깥은 금세 어두워졌답니다.

어두워지니까 찾아갈 때처럼 쌩쌩 달릴 수도 없고 역시나 이만저만 곤란한 게 아니었지요.

05

- 2014년 2월 5일 오후 6:58:39 -

 

오로지 정신력에 의지해서 찾아오는데 그 어둠에 '용산대교'도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건너오고 하천길에서도 제 길을 찾았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도 짧은 순간 방심한 탓에 길을 잃기도 했답니다.

그 자리가 집에서는 2킬로도 안 될 거리였건만, 워낙 복잡한 공단 길이라서 일순간 당황스럽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휴대폰에서 지도까지 켜놓고는 온통 정신을 가다듬어서 어떤 길을 달렸는데 그 자리가 몸에 익은 감각입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요?

역시나 조금을 더 달리니까 방금 멈춰선 자리가 얼마 전에 하마터면 오가는 차에 부딪혀 하직할 뻔한 그 길목이 분명했습니다.

쭉 따라오니까 여러 차례 지나쳤던 '과학고등학교' 문패도 보이고 '광주과학기술원' 후문도 보이고…

이쯤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거 같아 멈추고서 들여다봤더니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어머니 경로당에서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 불안한 맘에 전화를 해봐도 누구한테도 연결되지 않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네요.

 

죄송하지요. 계획에도 없이 불쑥 떠난 것도 잘못이지만, 집 나가려고 맘먹었으면 그 목적이나 머물 장소를 꼭 남겼어야 했는데…

그래도 여태는 어지간하면 그렇게 해왔었는데 설쇠고 처음으로 나가면서 빼먹었네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어머니! 부디 노여움 푸시고 푹 주무십시오!'

 

 

Posted by 류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