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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만한 박근혜 정권, 오만한 삼성 재벌 / 홍세화

 

한겨레 | 입력 2016.03.17. 18:26 | 수정 2016.03.17. 18:56

 

- 일보다는 사랑 -

 

 

 

[한겨레]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와 슬픔의 감정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한 나라에서는 청춘들이 거리에 나서 “일보다는 사랑을 하자”고 외치는데, 다른 한 나라에서는 수학여행을 가다 한꺼번에 수장되고 일하다 직업병을 얻어 죽어도 책임지는 자 없고 오히려 그런 자들이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사랑을 하자! 연장 근로 말고!” 지난 3월9일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여 프랑스 전역에서 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자 등 40여만명이 벌인 시위에 등장한 구호의 하나다.

그들의 젊음이 뿜어내는 “연장 근로를 하지 말고 사랑을 하자”는 발랄함과 대비되는 ‘헬조선’의 암울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삼성’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을까, <르몽드> 기사를 읽는 순간 설 연휴를 앞두고 한국 언론에서 단신 처리된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 실명 위기’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에틸알코올 대신 값싼 메틸알코올을 사용한 두 협력업체에서 일한 파견노동자 네 명은 결국 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또 비슷한 공정을 한다는 3천여개 업체들과 원청회사에는 어떤 조처가 내려졌는지에 관해 후속기사를 읽지 못했다.

나 또한 이미 포기와 단념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했는데, 하긴 산업재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으뜸’이라는 오명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노동자 몇 명의 실명 위기가 무슨 대수겠는가.

세월호 참사 후 700일을 넘긴 지금까지의 과정은 동시대인들이 고통과 불행, 죽음의 심연 밑으로 가라앉을 때 아직 공감 능력을 잃지 않은 일부 사회 구성원들이 안타까운 시선과 함께 외마디 소리를 지르지만 국가로부터는 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노동자와 서민은 그런 불행한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 닥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지탱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웅변하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을 때, 거기엔 정상 국가라면 응당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본 소명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토머스 홉스의 자연상태를 벗어나 국민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계약으로 근대국가가 성립되었다고 할 때,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0그러나 참사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무엇과 대면하고 있는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쇄신된 국가의 상 대신에 사회 전체에 만연한 것은 분노의 감정조차 거세된 좌절과 절망, 무관심이며 그 표상으로서 ‘헬조선’이다.

이렇게 단념과 좌절, 포기의 사회문화적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된 배경 중에 오래전부터 국가기관을 돈과 인맥으로 관리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국가보다도 책임질 줄 모르는 삼성 재벌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나만의 판단이 아닐 것이다.

삼성 재벌한테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그들이 국민과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알게 해주는 가늠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그들에게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그 실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힘과 돈으로만 지배할 수 없으며 피지배계층에게서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적어도 국민과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그르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에게 응분의 보상, 배상을 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삼성 재벌은 국가권력보다 더한 오만함을 과시하면서 진정한 사과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고립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다.

최근의 한 토론회에서 “왜 삼성에서만 문제가 되느냐”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한 “문화적 배경 때문”이라는 답변에도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오만함이 오롯이 드러난다.

올림 쪽의 주장을 배제하더라도 한국의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직업병 피해자만 열 명이라는(삼성 재벌의 끈질긴 방해공작 속에서 이 결과를 얻기 위해 피해자들과 가족들을 비롯하여 반올림과 시민사회가 얼마나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던가!) 사실조차 가뭇없이 무시한 채, 잘나가는 기업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갖는 삼성에 대한 한국의 “문화적 배경” 탓에 억울하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실상 ‘문화적 배경’을 지적받아야 하는 쪽은 한국 사회가 아니라 한국 사회와 한국 사회 구성원들, 특히 노동자들을 일회용처럼 바라보는 삼성 재벌이다.

욕망을 매개로 사회 구성원들의 비판력과 정의감을 휘발시킨 ‘문화적 배경’이 바로 그들을 그렇게까지 오만하게 만든 요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산재 소송 중인 법원에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업비밀이라고 하여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외신기자들 앞이어서 그 자리만 모면하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언론과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애당초 반올림에 대화 제안을 먼저 한 것도, 또 반올림이 처음에는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위원회 도입을 밀어붙인 것도 삼성이었는데, 정작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무시하고 반올림과는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과와 보상을 강행한 일련의 과정 역시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빼놓으면 설명할 길이 없다.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지만 책임 주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점, 책임 당사자인 삼성이 보상액을 일방적으로 정한 점, 그러면서도 피해자들한테 아무런 근거도 남기지 않게 하는 방식 등 사과와 보상이라는 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태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내 언론에서 반올림을 고립시키는 데 성과를 거두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해봐야 하릴없다는 것을 삼성 재벌 스스로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을 한순간 속이거나 심지어 다수를 계속 속일 수는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을 끝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 강남역 8번 출구에서 오늘도 반도체 산업 직업병 해결을 위한 ‘이어 말하기’ 농성은 이어지고 있는데, 그 누구도 그 자리에 함께하는 황상기씨와 김시녀씨가 유령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만함에도 층위가 있다.

조금이라도 계면쩍어할 줄 아는 오만함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내면의 절제나 외부의 견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가능한 공격성까지 띠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오만함도 있다.

가령 세월호 참사 초기에 ‘악어의 눈물’이라도 흘렸던 박근혜 대통령도 두 차례 선거 이후에 언제 그랬느냐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던가.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독재로 치닫는다는 점을 최근의 ‘공천 학살’이 증명해준다면, 삼성 엑스파일 사건, 불법·탈법적 유산 상속을 비롯하여 온갖 작태들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통해 드러났음에도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건재할 수 있었던 삼성 재벌의 오만함은 어느 층위에 올라 있을까? 외롭고 어려운 싸움을 벌이는 반올림에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한 것이다.

 

 

- 꽃보다 홍세화 -

 

↑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장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매일 한겨레와 르몽드를 읽으면서 솔직히 말하건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와 슬픔의 감정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한 나라에서는 청춘들이 거리에 나서 “일보다는 사랑을 하자”고 외치는데, 다른 한 나라에서는 수학여행을 가다 한꺼번에 수장되고 일하다 직업병을 얻어 죽어도 책임지는 자 없고 오히려 그런 자들이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했거늘….

청춘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지 않기 때문인가.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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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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