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회피

내 평생의 화두가 되어버린 책임과 의무.

그 책임과 의무라는 바윗덩어리가 무서워서

허구한 날 이리저리 도망이나 다니곤 했다.

인과응보는 어김이 없어, 무심한 세월에

꽃은 죽어 없어지고 잔해만 남았다.

그 잔해를 차마 치우지 못해

벌써 몇 달째나 그대로 두고 있다.

- 권오영 <돌아와 앉은 오후 네 시> -

누구나 어느 자리에서건 본인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짐들이

마냥 무겁게만 느껴져 회피하게 된다면,

밀린 숙제를 잔뜩 쌓아둔 것처럼 그 무거움은

몇 배가 됩니다. 설령 운 좋게 책임을 지지

않은 일들이 별문제 없이 잘 넘어갔다고 해도,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나의 몫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내가 책임을 지니는 일은

끝까지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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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내가 부모가 돼버리고 말았을까?

이따금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천만 근의 돌덩이가 제 가슴 짓눌러서

옴짝달싹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그래도 명색이 제가 아버지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거처할 방 한 칸은 고사하고 게네들

사는 곳에서 오고 갈 차표 한 장도 건넬 수 없는 처지다 보니…

아픕니다. 정말이지 아픕니다.

얼마 전 친구놈 사무실에 갔을 때

그 아픈 것 털어놨더니

'그러지 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걔들이 널 버리고 가버렸잖아!'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놈이 건네는 위로의 말도

그 자리 놀러 왔던 동생 놈 보내주는 따스한 눈길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누구의 잘잘못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부모라는 게 죄인 겁니다.

아들아. 내 아이들아. 미안하다.

아버지 자격도 없는 아버지라서 정말이지 미안하구나!

그래도 사랑한다. 그래도 보고 싶다.

사랑할 자격도 보고 싶을 자격도 없으면서

그래서 더더욱이 미안하구나.

아들아. 내 아이들아.

이럴 땐 차라리. 내가 …싶더나!

아무리 그래도 그러지 않을게. 절대로 안 그럴게.

끝까지 견뎌낼게. 끈질기게 견뎌내 볼게.

그러니 너희도 이 아비처럼 끝까지 견뎌내고

이 하늘 아래 살아주려무나!

꼭 살아주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