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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26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지난 토요일(2016-09-24) 아침나절입니다.

밤새 컴퓨터에 앉아서 노닥거렸기에 이제 밤새 열어뒀던 창문이며 다 닫고서 기지개 한 번 켠 뒤 한숨 때릴 참이었습니다.

 

그러기 전에 내 이러저러한 상황이니 깨우지 말라며 밖에 계실 어머니나 동생한테 아침 인사 겸 전하면서 이불 속으로 직행하려던 찰나입니다.

제가 잠에서 깬 거로 여기셨던지 바로 그런 순간에 한발 앞서서 어머니 넌지시 말 걸어 묻습니다.

'중근아~ 오늘 막둥이가 고흥 내려가자는데 내려갈 거니?'

막 짜증이 올라오려는 걸 애써 누르면서 대꾸했지요.

'그래요^~^. 그럼~ 내려갈 채비 하세요~~~'그 처음 약간 싫은 내색 짙어질 무렵 잽싸게 좋은 내색으로 바꿔서 돌려보냈답니다.

 

제 고향이 전남 고흥인데 사실 지난 추석에 바람도 분다지 비도 내릴 거라지 거기다가 태풍마저 다가올지 모른다니까 왠지 꺼려졌습니다.

바닷가에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배 단속하랴 집 단속하랴 어구 단속하랴 사람 단속하랴… 누가 됐든지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 상황에 외지에서 누군가가 들이닥친다면 이는 태풍 맞는 것보다 더 불편한 상황 될 게 너무도 뻔한 걸 우린 잘 아는 터라서 그렇게 미적댔지요.

 

한 박자 처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이 딱 좋은 시기입니다. 고향 내려갈 수 없었던 추석에 이미 그런 시기 오면 내려갈 것을 약속한 터라서 더 미룰 어떤 이유도 없는 터였고요.

고향에 달리 가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 몇 곳에 우리 친족 윗대 선친의 묘소는 물론이거니와 외가 쪽으로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이 누워계시거든요.

 

다른 어느 가까운 친척보다도 외조부·외조모·이모부·이모님·외삼촌 그리고 저희 아버지 산소에는 반드시 들렀다 오는 형편이었어요.

그날도 내려가면서 운전하는 동생과 먼저 약조했지요. 먼 곳에 있는 외가 쪽에 먼저 들린 뒤 아버지한테 들리고 그다음으로는 어머니와 저의 옛고향(70년도 이전에 살았던 산골 집)에 들러본 뒤 마지막으로 그 나중에 살았던 고향 마을의 마을 숙모님 뵙는 것으로 마무리 짓자고 약조했었던 겁니다.

 

그 마을 숙모는 삼촌도 없이 사내자식들과 어렵게 사는데도 우리가 갔다 하면 뭐가 됐든지 싸주려고 안달복달하시거든요.

이번에는 그 부담 덜어 줄 목적에 어떻게 해서든 우리 준비한 선물 얼른 전하고는 곧바로 올라올 참으로 내려갔던 겁니다.

그것 어머님과도 약조해서 우리 나름으로는 철저히 준비해서 내려갔는데…

 

마을 앞을 지나야 아버지 계시는 공동묘지나 외가 쪽 산소에 들릴 수 있기에 거길 지나칠 땐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인 양 선팅 처진 차창을 모두 내리고서 벼락같이 빠져나갔답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가장 높은 곳 이모부와 이모님 산소에 먼저 들러서 가볍게 예를 갖추고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누워계신 곳으로 들어갔지요.

 

이렇게 막상 들어왔는데 여태까지는 그야말로 달밤의 체조(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산소에 잡초가 얼마나 자랐던지 어머니 저 남동생 모두 허리 부서져 내릴 지경이데요.

그래도 그 벌초 다 하고서 그 깔끔한 제단에 제물 올리면서는 그 마음 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외가 쪽 산소를 모두 봉양하고서 마침내 아버지 계실 우리네 땅(외가 쪽 하고는 면의 행정구역이 달랐으므로) 공동묘지에 들어섰지요.

했는데 그 처음부터 진입로를 잘못 잡았습니다.

전에도 늘 다녔던 길이 아닌 다른 숲길에서 그냥 호기심 일기에 나섰는데 그 길이 너무도 험준합니다.

 

공동묘지 밖 신작로에서 묘지 쪽 우거진 수풀 헤치고 100m에서 150m 정도 만 올라타면 나올 것도 같은데 길도 아닌 길을 따라 걸으려니까 이것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울퉁불퉁한 돌무더기며 가시넝쿨 그러잖아도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날 도대체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끝끝내 찾아간 아버지 자리 그 휑한 모양새 여전히 예전 모양새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 아버지 그간 잘 계셨는지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

- 기대해 보세요. 아버지께서 어머니 만나 최고의 사랑을 나눴던 그 자리 -

- 오늘은 기필코 둘러볼 생각으로 찾았으니까 염려 붙들어 매시고 기대하세요 -

 

약속한 대로 마을 길 한가운데를 아무 내색도 없이 훑고 지나면서 아버지 어머니 시댁에서 나와 맨 처음 독립 생활하셨던 그 터전을 찾아 나섰답니다.

그 자리가 우리 시골 마을 가장 위쪽 자락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마을 길 타고 올라가야 했답니다.

 

드디어 우리 집터가 있을 만한 자리까지 들어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답니다.

저는 몇 달 전에 한번 거기 시골 친구 부친이 운명하셨기에 내려왔다가 그 자릴 가보긴 했지만, 그때보다도 수풀이며 산림이 더 울창해져 버렸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니까 저보다 훨씬 먼저 들어와서 자리 잡았던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 눈가에도 애잔합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시집살이하다가 재 넘어 여기 산속으로 어떻게 분가하셨나 봐요.

제 위쪽으로 쌍둥이 누님이 있었는데 한낮에 개미떼 공격받은 뒤 가셨답니다.

그래서 그 산자락 어딘가에는 제 누님 두 분이 묻혔다네요.

 

그 산골에서 흙담에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초가지붕이 있었으며 집 둘레로는 굵은 돌을 모아 돌담을 쐈는데 그러던 중 아버님이 입대해 버렸다잖아요.

그 산속에서 수리가 염소 채가는 걸 지켜봤으며 잃어버린 염소며 소 찾아 가시덩굴 울창한 산림을 헤맸다는데 우리 어머니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아버지 돌아와서는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을 건너 야산에 매일같이 돌무더기 주워내면서 떼밭 일궈 드디어 천 평도 넘을 큰 밭을 만드셨다는데 오로지 삽과 괭이 곡괭이로만 해냈을 그 천근 같은 고통 그 또한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한참 전에 제가 어머니께 여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만나서 제일 좋았을 때가 언제였어요?' '흐흐 좋았을 때라… 거기 산에 들어가 떼밭 파던 시절이었을 거야~ 후^ 흠~'

그 탓에 요번 내려갈 때는 반드시 어머님 모시고 그 자리 들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참담했지요.

 

그러했기에 그 자리서 언제까지고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랑 함께 길 따라서 마구 올라갔는데 어느 지점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엔 긴가민가 어설프게 보이더니 수풀 헤치고 들여다보니까 이건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무릉도원(?) 입니다.

 

꾸지뽕이며 꾸지뽕나무 또 한편에선 산뽕나무가 흐드러졌네요.

꾸지뽕 한창이나 덜 익었기에 따서 먹으려는 순간 하얀 진물이 줄줄 흐릅니다.

여기 처음 들어와서 허탈했던 거 그놈 꾸지뽕나무와 산뽕나무가 후다닥 날려버렸습니다.

 

우리 집터가 있었을 만한 곳까지 아까 말했던 마을 숙모님의 자식들이 땅을 불하받아 '블루베리'를 키운다네요.

저 건너편에 우리 밭이 들어섰을 자린데 온갖 수풀이며 잡목이 가득해서 도대체 저곳을 어떻게 올라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건너편과 이쪽 사이론 작은 내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흔적이 안 보이더니 어느 지점에선 굵은 바윗돌이 이리저리 엉켰기에 어쩌면 그 자리로 물이 흘렀을 거로 짐작했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올여름이 어찌나 가물었던지 마을에서 거기까지 물을 길어다가 블루베리 키워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랬던 것을 숙모님 우리 집에 한 포대나 다른 해산물과 함께 싸서 보냈었지 뭐예요.

그런 사정을 알고 나니 더더욱이 숙모님과 거기 동생들한테 미안해지는 겁니다.

 

저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딸각산'이라는 산인데 지금 눈으로는 바로 눈앞이지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그곳은 제게 에베레스트 산만큼이나 험준하고 머나먼 거리였지요.

그래도 저기가 됐든 이쪽이 됐든 그 산허리 다 깨고 있었습니다.

 

어느 산마루엔 머루가 많고 어느 산골 어느 너덜겅 밭엔 산 복숭아며 어름, 산딸기, 잰피(초피)나무가 많았던지 그런 잡다한 것들 손바닥 안에 있었답니다.

그만큼 산타기를 좋아했었는데 오늘날은 차도 옆 그 넓은 인도도 너무 좁아서 비틀거리나니… 아~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1 ~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2 ~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3 ~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4 ~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5 ~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6 ~

 

저기 딸각산 너머로는 우리 초등학교 소풍의 단골메뉴였으며 오늘날엔 철쭉꽃 축제로도 널리 알려진 천등산이 자리합니다.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 07 ~

 

아~ 나에게 천등산 네가 과연 누구니?

- 치욕의 산·호연지기의 산·의지의 산·긍정의 산 -

 

때로 산은 산보다 더 높습니다. 또 때로 산은 산보다도 훨씬 더 큽니다.

그것이 산 특히 천등산이 제게 전하는 우렁찬 메아리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날마다 맞는 오늘을 사는 이유이기도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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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 애초에 약조했던 여정 모조리 깨야 했습니다.

산골을 떠나 마을로 들어서니까 그 옛날 함께 뒹굴고 부대꼈던 그 살결들이 눈에 훤히 들어찼거든요.

그 어떤 큰 죄 저질렀기에 이 정겨운 모습 그 살가운 맵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마을 분들 여럿 모인 곳에선 무작정 차 세워놓고 내려섰지요.

 

그분들 얼마나 반겼는지 모릅니다. 제 형제 제 자식 만난 거처럼 얼굴 비비고 마구 끌어안고 모두 하나같이 우리 허름한 몰골들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데요.

아~ 이래서 고향인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반가움이 정다움이 오가는 사이 몹시 서글픈 소식도 걸렸습니다.

인제 갓 쉰을 넘긴 동생 놈 하나가 저세상으로 떠났다지 뭡니까?

마침 그 집이 같이 간 동생 놈 친구 집이기도 해서 소주 한 병 들고 들어갔더니 그런 슬픈 소식이 전해옵니다.

 

- 아버님 어머님 힘내십시오! -

- 동생아 이놈아 너 제법 의젓하기에 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던 거냐! 너 어쩌자고 그리 갔더냐? -

- 녀석아 한 많은 이승 다 잊어버리고 그 머나먼 길 잘 가거라~ -

 

마을 분들 여기저기서 쌀을 가져오지 뉘 집 거라 주인 물을 것도 없이 호박이라도 큰 덩이 보이면 따오질 않나?

또 어떻게 해서 미리 만나게 된 숙모님은 또 어땠었고요.

마른고기며 생고기를 바리바리 싸주셨답니다.

 

그 고마운 성의 피하려고 그토록 애썼고 그 노력 모두 허사 됐지만, 우리 가족 요번 성묘 나들이는 대박 중에 초대박이었다 하겠습니다.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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