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창 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컵라면_빈_통'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1.15 컵라면 빈 통도 궁합만 잘 맞으면 한 살림 밑천 한다!

컵라면 빈 통도 궁합만 잘 맞으면 한 살림 밑천 한다!

 

'재수에 옴이 붙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진다더니…'

이걸 장애라고 불러야 할까요? 장애 고사하고 오히려 진화했다고 읊조릴까요?

다름이 아니라 제 손가락의 감각에 대한 이야깁니다.

대략 십 년쯤 전 일인데 그때 어느 날 큰 장애를 입은 뒤로는 유독 손가락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감각이 엄청나게 민감해졌습니다.

 

한쪽 귀의 청력이 손실됐다는 것, 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말도 더듬거리고 괴팍한 소리로 새 나온다는 것, 코는 또 일절 어떤 냄새도 못 맡는다는 것, 시신경이 어찌 됐는지 안경을 끼면 복시가 너무 뚜렷해진다는 것 그 모든 거에 몸이 비틀거리기에 난장에서 움직일 때마다 생사를 건 사투라는 것!!!

어쩌면 그런저런 거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저의 피부가 그리 민감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맨 처음 걸음 연습할 때만 해도 공원 산책로의 흙이 발바닥을 지날 때마다 마치 발에 붙은 지구를 뒤로 밀면서 돌리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감각이 훨씬 나중에 숟가락 젓가락이나 밥이나 국그릇 설거지하면서 비로소 알아챘답니다.

제 피부가 엄청나게 민감해서 그랬다는 걸.

 

거리의 식당이나 그런 데 가서 만져본 수저는 안 그랬는데 유독 우리 집에 있는 식기나 수저들이 그랬습니다.

마치 밥풀 묻은 손으로 뭔가를 만졌을 때 그런 거처럼 너무나도 끈적이는 거예요.

어쩔 땐 그랬지만 또 어떨 땐 그와 반대로 엄청나게 미끄러운 겁니다.

뭣 때문인지 그것도 나중에야 알았죠. 물때 탓이었음을 말이에요.

처음 몇 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멀쩡한 그릇(사기그릇 또는 경화 유리그릇) 많이도 깨 먹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지는 못할망정 걸핏하면 깨 먹기 일쑤였으니…

 

그게 물때였음을 깨달은 뒤로는 어지간하면 제가 설거질 하곤 했답니다.

제 딴에 설거지 좀 했다고 해서 얼마나 했겠습니까? 어머니 함께 사는 처지인지라…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제가 무슨 결벽증이나 있어서 그런 거로 보였던지 자기가 뭘 잘못하느냐며 무척 불쾌해 하십니다.

그러면서 굳이 자신이 설거지하겠노라고도 그러시지요.

 

그런 판국에 제가 고안해 낸 것이 저 자신이 급할 때면 그 당시에 다시 씻어서 그 그릇에 담아 먹는 거에요.

미끄럽거나 끈적거리지 않거든 그대로 쓰는 것이었고요. 대신 수저만큼은 제 나름의 수저통을 만들어서 그곳에 따로 씻어 보관해두는 거로 말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요 아래 수저통도 생겼는데 몇 번째 제 전용 수저통인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몇 번째였는지는 몰라도 어딘가에 유리병이 보이기에 그놈을 수저통으로 쓰기로 했던 겁니다.

그냥 쓰기가 뭐해서 유리병 구조를 약간 바꿨죠.

부드러운 페트병 대가리를 잘라서 수저와 젓가락 가운데로 몰리게끔 깔때기를 만들어주고 그 끝에 물이 고이니까 어디선가 주어온 병뚜껑에 달군 송곳으로 송송 구멍 뚫어서 밑동에 댄 것이 요것입니다.

 

~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 01 ~

 

요놈은 우리 집 온 식구가 공동으로 쓰는 수저통인데 어머니가 설거지할 때면 이쪽으로 다 쌓이거든요.

저는 제 통 수저가 떨어질 때마다 여기서 몇 가닥 꺼내서 다시 씻은 뒤 제 통에 집어넣지요.

 

~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 02 ~

 

그런데 제 수저통! 이거 아무래도 불편합니다. 통 자세가 냉랭한 유리라서 그런 것인지 설거지하고 나서 물방울 맺힌 수저 그대로 꽂고 나면 꼭 바닥으로 물기가 남은 겁니다.

처음엔 그냥 마를 줄 알았거든요. 했는데 요거 좀처럼 안 마릅니다. 그럴 때마다 수저통 기울여서 바닥의 물기 빼내곤 했답니다.

어쩔 땐 병뚜껑까지 차올라서 젓가락(대나무 젓가락) 끝이 젖기도 했지 뭡니까?

 

이걸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죠.

'저놈의 유리병에 밑구멍 뚫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옛날 옛적의 그 시절을 떠올렸지요.

초등학교 다닐 때니까 지금부터 40년도 더 됐을 이야깁니다.

1970년도를 맞으면서 초등학교를 시작했을 제 또래 중 저처럼 부잡스런 친구들은 다 아실 거예요.

 

그때 당시 우리가 어떤 식으로 꽃병을 만들었는지를 말입니다.

화려한 색상에 수려한 몸매로 치면 콜라병이나 사이다병만 한 게 없었을 겁니다.

그것 사이다병이나 콜라병 가운데나 모가지 밑으로 굵은 실 수십 바퀴 바짝 조여 묶고는 거기에 기름집에서 파는 석유를 빙 둘러서 흐르지 않을 만큼 적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인제 실을 감은 병 세워 놓고서 성냥 불(아버지의 지포 라이터 켰다가는 그날로 종아리 두들겨 맞아 부러졌을 테니까)을 붙였죠.

그러면 순식간에 병을 빙 둘러서 불이 붙었지요.

어쩌면 30초도 안 걸렸을 거예요. 그렇게 붙은 불이 사그라들 즈음을 기다렸다가 병의 아랫부분을 축축한 헝겊을 감싸서 잡고는 나무 자루가 있는 망치의 자루로나 뭉툭한 나무로 불 불었던 자리 '툭' 치면 '톡' 하면서 댕강 떨어져 나갔던 걸 떠올려 봤습니다.

그렇게 반듯하게 미끈한 모양새로 잘린 사이다병이나 콜라병 꽃병으로 쓰기에 너무도 좋았지만, 교실 안에서는 한 번도 못 썼을 거예요.

왜냐면 그렇게도 위험한 짓거리로 만든 물건이니 집 밖으로 내놓기도 어려웠을(무서웠을) 테니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혹시나 유리병에 구멍 뚫는 방법으로 더 진화한 방법이 있을지 찾아봤습니다.

개똥 진화는 고사하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구멍 뚫는 장비여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널렸더군요.

저놈의 유리병 계속 쓰는 걸 포기하고서 더 싸고 좋은 물품으로 수저통 삼을 만한 뭐가 없을지 우리 마을의 어떤 상점을 찾았답니다.

 

거기 수저통 있는 곳을 유심히 살피다가 수저통(대략 7천 원에서 만 원 선)보다도 훨씬 싼(2천오백 원) 물건이 보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구멍이 숭숭 뚫렸기에 어른 주워담았죠.

 

그날 사실은 어머니 좋아하셔서 동생 놈이 틈틈이 사다 바치는 간식(별 뽀빠이) 그게 저도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주방 탁자 한쪽엔 아직도 그게 있는데 어머니 거니까 먹을 순 없는 거잖아요?

그것도 살 겸 저것도 살 겸 달려갔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건 또 안 보입니다.

다 큰 체면에 '별 뽀빠이 어디 있어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명색이 수저통(?)을 들고 들어왔지요.

 

어쨌든 기뻤습니다. 이 기쁜 소식 혼자만 즐길 순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런 차원에서 사진을 박았는데 그때야 그것이 뭐였는지 정확히 알게 됩니다.

'억^ 하필이면 배수구 망이냐!!!'

뭐가 어때서?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스테인리스 공구니까 녹도 안 슬고 좋기만 하고 먼 그래…

 

~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 03 ~

 

문제는 이게 너무도 작고 가벼우니까 쉽게 넘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애초의 수저통이었던 유리병에서 페트병 대갈통이고 뭐고 다 꺼낸 뒤 그 속에 넣어보려고 했더니 거기는 또 너무 커서 안 들어갑니다.

주방 이곳저곳을 뒤졌더니 마침 귀퉁이가 깨져서 못 쓰게 된 컵이 하나 있네요.

그 속에 넣었더니 또 너무 헐거워서 내용물 조금만 옆으로 기울여도 넘어져 버리는 거예요.

'흐흐^^^'

 

~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 04 ~

 

또다시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지요. 마침 전에 언젠가 먹었는데 다른 용도로 쓰려고 버리지 않았던 컵라면 껍데기 하나가 보입니다.

요놈 밑구멍에 칼을 대서 사각으로 구멍을 낸 뒤 다시 그 모퉁이마다 칼집을 내서 그 안으로 수저통을 푹 꽂았답니다.

아아~ 이것도 쓸모가 있네요.

'하하^^^ 컵라면 빈 통도 궁합만 잘 맞으면 한 살림 밑천 한다!'

 

~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 05 ~

 

지금 생각하니까 아래쪽으로의 빈틈이 다가 아니라 요놈 밑동과 중간 사이로도 듬성듬성 구멍을 내서 혹시라도 남았을 물기 습기 마르게끔 조처해야겠습니다.

비주얼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먹거리 계통이라면 안전한 식성이 최우선일 테니까요.

 

 

Posted by 류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