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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02 향수의 노래 희망의 노래 산너머 남촌에는

향수의 노래 희망의 노래 산너머 남촌에는

 

한 개 한 개씩 서둔 글 올렸던 홈피 닫아가는 중이었어요.

드디어 다음 블로그에 다다랐는데 프로필 모양새가 어쩐지 탐탁지가 않더라고요.

'이거 괜찮은 거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나…'

그놈에 오른 마우스 누르고 속성을 떠서 복사한 뒤에 익스플로러 창을 한 개 더 열고서 붙여넣고서 때려 봅니다.

 

NamChon-01

 

NamChon-02

 

흐흐… '강동마을'이라…

참 좋은 곳이에요.

이 마을 표지가 가리키는 오른쪽으로 그 정점에 이르는 산중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저기 저 선창이 시작되는 그 첫 집으로 내려와 살았답니다.

71년 그 당시에는 당연히 저런 선창도 없었거든요.

해마다 여름철이면 태풍이 몰아치곤 했었는데 초가지붕이며 바닷물 쓸고 들어와 마당이 온통 몸살을 알았답니다.

태풍이 걷히고 잠잠해지면 지붕은 지붕대로 어렵사리 손봐야 했고 마당은 또 마당대로 산모퉁이 황토를 찾아다니며 흙을 이고 지고 얻을 수 있으면 손수레 빌려다가 싣고 와서는 깔아야 했었지요.

 

시골에서는 마당에서 할 일이 무척 많거든요.

우리 집엔 논이 없었기에 벼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지만, 남의 땅이긴 했어도 산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신혼 초에 개간한 산 밭이 꽤 컸었답니다.

하여 그 밭에서 걷어온 콩이며 참깨 털어낼 때엔 꼭 깔끔하고 바닥이 말끔하며 단단한 그런 공터가 필요했던 거에요.

바로 그런 적지가 황토를 깔고 빗물에 다지어 굳은 마당이었답니다.

시골에서의 마당은 그 집의 위엄이 어느 정돈지 가늠할 정도로 다른 어느 것 못지 않게 매우 소중한 자리였던 거 같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74년도 무렵이나 되었을까요?

'문세광'이 내려와서 나라의 대통령 부인을 쏴 죽였던 그 끔찍했던 해였었는데, 그 엄청난 불행은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집안에도 닥쳤답니다.

 

저에겐 어머니 위로 언니가 되는 큰이모가 계시고 아래로도 또 한 분의 이모님이 계셨거든요.

그 이모님! 우리 막내 이모님!!!

너무나도 미모가 출중하셨답니다.

유일하게 시골에서도 촌구석이 아닌 읍내(고흥군 고흥읍)에 사셨던 분이셨지요.

그쪽으로 시집을 갔으니까 거기 사는 건 당연하겠지요.

요즘 말로 하면 구멍가게를 하셨는데 장사가 참 잘 되었답니다.

 

그 이모님 아~ 그 곱던 이모님!

어느 날 밤에 강도를 만났는데 얼마나 많이 찔렀던지 병원에도 못 가시고 그 자리에서 선혈 낭자하게 흩뿌리신 채 가셨답니다.

'이모! 우리 이모! 보고 싶어요!!!'

잠시 창밖으로 고개 좀 돌렸다가 지금 조용히 되돌렸습니다.

 

제 나이 스물셋이나 되었을 때인데 그때까지도 저기 선창이 시작한 지점에 우리 시골집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시골집에서 전투복을 갈아입고서 방위병으로 군대생활을 했답니다.

'방위병'이라~ 방위병 우습게 보이지요?

 

지금 사진 박은 이 자리에서 뒤쪽으로 5분쯤만 더 들어가면 대단한 곳이 있거든요.

함부로 발설해선 안 되는 곳이기에 여기에 쓸 수는 없지만, 저를 비롯한 우리 대원들 현역 방위 가릴 것도 없이 그 근무환경 차이도 없어 고생깨나 하면서 보냈거든요.

 

74년 그 해에 그 자리로 하필이면 간첩이 들어왔기에 우리 얘들 눈초리 흐리멍덩한 얘들 없습니다.

저도 그 간첩 덕분에 호사(?)를 누렸답니다.

책에서만 봤던 총(당시엔 M1 소총이었을 겁니다.)도 만져봤지요.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우리 마을에서 헬리콥터도 붕붕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 봤다는 겁니다.

제 실력으로는 새총이나 화약총 만드는 게 다였고 조금 더 보태면 두 갈래로 크게 자란 나무 밑동 잘라서 '세 발 구르마' 만드는 게 전부였던 시절에 그건 완전히 새로운 도시 문명과 맞닥뜨리는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거든요.

74년 그 해부터 우리 아버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지요.

 

그러시더니 채 3년을 못 넘기시고 76년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는데 그 해에 가셨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선창도 규모는 달랐지만, 그해 전기가 들어온 해에 첫 삽을 뜨고는 그 규모가 우리 집 마당 끝에서 바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러더니 첫해엔 온 마을 사람들 다 나와서이고지고 목도로 떠메어서 쌓아갔었는데 그 첫 성과로 50여 m쯤 나갔을 겁니다.

물론 그 규모는 지금껏 보다는 더 작았지만 말이에요.

 

그리고는 그 끝에 가로등을 세웠는데 그 전기를 우리 집에서 끌고 간다는 거에요.

우리 어머니 생전 그런 경험도 없었기에 그 전기세 누가 감당할 거냐며 아버지와 한참을 실랑이했었다네요.

마을 부녀회에서 다 준다는 말만 덜컥 믿고서 그 스위치가 우리 집에 두꺼비집 밑으로 달렸거든요.

 

지금의 이렇게도 넓고 곧은 도로가 생긴 것은 최근 십여 년 새에 생긴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정확히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사진 작년에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내려오면서 박은 거에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추억하고서 그냥 접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시골이 좋습니다.

 

다시 내려가서 살 처지만 된다면 내려가서 살고 싶은데 제 처지가 도통…

어머니께서도 사시사철 쫄쫄 굶고 살던 그때가 지겹다면서 절대로 못 가겠다는데 아직은 제가 무슨 수로…

 

저는 철도 없이 예전에 그랬던 거처럼 저 푸른 물결에 그물 던져놓고 틈나는 대로 산자락 타면서 땔나무 져 나르고…

하여튼 제가 속이 없습니다.

 

맺을게요.

 

노래 들을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혹시라도 들어보려면 스피커 음량 완전히 죽여놓고서 찾아 들어가세요!

그놈의 플래시 파일이 열리면 가운데 보이는 하트가 시작하는 버튼이고요, 양옆으로 쪼끄마한 동그라미가 멈추는 버튼이니까 살펴서 누르시기를…

물론 컴퓨터에 플래시 플레이어가 안 깔렸다면 아예 재생도 못 할 겁니다.

그 점도 참조하시길…

 

그럼 갈게요. 여러분 좋은 밤 되십시오!

 

NamChon-03

 

※ 여기서 듣고자 했는데 자칫 이 노래가 저작권을 어겨 아무도 못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상황이 감지되면 어쩔 수 없이 이 게시물도 내리겠습니다. 참고해 주십시오!

산너머 남촌에는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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