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술^ 여태 끊었다더니만 그것 진심 끊었다는 거 맞아???
며칠 전엔 거실에 나가보니 식탁에 작은 상자 하나가 놓였더군요.
뭔지 궁금해서 열어봤더니 '홍초'라는 이름으로 병 세 개가 들었습니다.
그것 보자마자 몇 달 전에도 그와 똑같은 물건이 있었는데 당시엔 그것이 함께 사는 남동생이 몸 재활 치료에 필요해서 사 온 어떤 물건인 줄만 알았는데 요번에도 그것이기에 어머니 들락거리는 전시장(주로 넓은 공터에 노인들 불러놓고 홀리는 별의별 물건 판매점)에서 사 온 것임을 알아챘답니다.
이따금 텔레비전에서 그 비슷한 내용(발효 식초가 건강에 좋다!)을 봤던 적이 있었기에 어떤 맛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소주잔이 어딨을까? 찬장 어딘가에 있을 텐데 소주잔이 어딨을까…'
키 닿는 곳에는 술잔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입니다.
6년 전 어느 날까지 술 먹었을 때도 그 작은 소주잔으로 술 먹었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추석이나 설 명절 또는 아버지 기일에 제사 지낼 땐 꼭 써왔던 술잔이 그 작은 소주잔이었는데 안 보입니다.
어쩌면 얼마 전부터 집안에선 일체의 제 의식(추석, 설, 제사 등 그 모두를 포함해서)을 제가 없앴는데 그 탓으로도 얼른 눈에 띄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송편이나 떡국, 윷놀이 등 먹는 음식이나 놀이까지 없앤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기를…
식탁에 걸상을 당겨와서 올라서서는 찬장의 높은 곳까지 조심스럽게 뒤지니까 드디어 찾아냈어요.
그러고는 그놈 문제의 홍초 제 맘 같아선 그 작은 술잔에 가득 부어서 털어 넣고 싶었지만, 거기 자세히 읽어보니 500mg밖에 안 된 그거가 스무 번 분량(1회에 25mg)이나 된다는 거였습니다.
'뭐야~ 소주잔이 70mg 정도니까 반 컵도 채우지 말라는 이야기잖아^^^'
그랬기에 가득 차지 않게끔 6, 7부 정도를 붓고는 입술에 갖다 냈답니다.
제 생애 가장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성배를 들듯이 입술에 대었답니다.
그 순간에 제 몸이 냄새 맡을 수가 있었다면 제 몸이 제대로 들을 수만 있어도 들었을 겁니다.
'야! 반갑다 중근아!!!'
술잔이 제게 외치는 소릴 말입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두 눈에 진한 이슬이 맺혔을 거예요.
그랬겠지만, 입술에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 0.1초도 안 걸렸을 겁니다.
너무나도 달콤하데요. 너무나도 부드럽데요.
황홀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서웠습니다.
제 몸이 이리도 한심했다는 게 무서웠습니다.
낼모레면 술 끊은 지 6년이나 되는데 어찌 그리도 간단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치 술 먹을 때 그 자세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어쩌면 그렇게도 술술 넘어갔을까…
~ 약속의 땅 ~
그랬든 저랬든 술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그 날!
46년 하고도 한 달 스무 사흘쯤 남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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