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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29 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거늘…

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거늘…

 

최근 열흘 사이로 제 곁에서 두 분이나 저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두 분 모두가 제 어릴 적 친구(고등학교 동창) 놈들의 어머니였지요.

 

먼젓번은 영광(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장례식이 있었는데 광주에 사는 다른 친구가 지닌 승용차로 동승할 수가 있어 쉽게 다녀올 수가 있었는데 다음번에 연락받기는 타지도 아닌 같은 광주 시내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엄수한다기에 조용히 홀로 다녀올 참이었어요.

그런데 거기는 또 그리 먼 거리도 아녔지만, 제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동네라서 시내버스 길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단번에 가는 노선이 없어 제 사는 곳에서 출발하면 중간에 어느 지역에서 갈아타야 가능한 지역이었습니다.

그것도 생전 가보지도 않는 지역을 타보지도 않은 번호의 버스로 돌고 돌아 이름 모를 승강장에서 내려 또다시 이름 모를 번호의 버스로 갈아타야 했기에 그 노선을 간략히 편집해서 비상용으로 뽑았는데도(프린트)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전에 마침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동네를 돌고 나자 불현듯 용기가 생겼습니다.

 

얼른 컴퓨터를 켠 뒤 제 사는 곳에서 자전거로 찾아가면 어떨지 다시 거기를 검색해 봤죠.

15KM도 안 되는 거리에 50분도 안 걸립니다.

 

사지가 멀쩡했던 아주 오래전(1981, 82년도)에는 고물 자전거로 고흥의 시골까지도 오갔던 경험이 있었고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도 광주 시내에서 그보다 먼 거리를 찾았던 기억이 선연했기에 그 용기가 더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상황 모두가 뻔히 아는 길이었거나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던 길이기에 가능했었는데요.

 

이번에도 집 밖을 나서기 전까진 그래도 거의 본능적으로 짚이는 감이 있었습니다.

꼭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거기까지 가는 길로 자전거가 편히 갈만한 약도도 챙겼었고요.

 

~ 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거늘… 01 ~

 

그러나 아파트를 나서면서부터 무언가가 잘못됐습니다.

아파트 반경 500M에서 1KM는 어느 정도 꿰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자신감 넘치게 출발했는데 그 처음부터 어만 방향으로 500M나 경로를 벗어났던 겁니다.

그래도 그 정도쯤은 아는 거리였기에 즉시 갈피를 잡고 제 길을 찾아 달렸는데 그것도 5분 남짓을 더 달리고 나니까 그 순간부터 갈피가 안 잡히는 겁니다.

아마도 어쩌면 그 순간부터 자전거전용도로에서 벗어나 그 길을 잃었기에 그랬을 겁니다.

 

어쩌다가 지나는 사람이 있어 찾아가는 장례식장(천지 장례식장)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모두가 처음 듣는 듯이 모르데요.

어떻게 해서든 저 스스로 찾아야 했습니다.

'저기는 내가 지나왔던 방향이니까 이 방향으로 쭉 가야 해!'

 

그런 맘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도로 왼편 저 멀리에 '삼성아파트'가 보입니다.

'앗! 삼성이다!!! 옳거니 내가 지금 제대로 가는 중이야!!!'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지 거기가 자전거전용도로가 아니니까 또 얼마나 헤맸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죽자 살자 밟았던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고요.

그랬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달려서 또 그 막판엔 장례식장보다는 그 근처 '서광주역' 위치를 아는 분을 만나서 기어이 장례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1시 20분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장례식장 주차장에 자전거 세우고서 핸드폰을 들여다봤더니 오후 1시 19분입니다.

두시간도 아니고 정확히 한 시간 59분이 걸렸네요.

- 49분은 그야말로 개뿔이지요 -

 

아침을 뜨고 나가라는 어머니 말씀도 마다하고 달렸기에 배가 출출했습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그 넓은 홀로 오로지 나 홀로 상을 받은 느낌이데요.

그래도 배가 고프니 문상하고 부조하고 돌아와서는 돼지고기 몇 점을 빼고는 꼼꼼히 다 발렸답니다.

 

그러고 돌아오는데 돌아오면서는 또 갔던 길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해지는 쪽이 서쪽이니 나는 무조건 북쪽을 보고 가자!' 그것 뿐이었습니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기준점은 오로지 그것이 유일했기에 그것만 믿고서 달리는데 어느 순간엔 주위를 보니 그 부근이 '5.18 기념공원'이란 표지가 있습니다.

'뭐야 내가 왜 여기를 지나지???'

벌써 십여 년도 훨씬 지났는데 그 당시(2000년대 초) 아는 벗들과 모임이 있어 이곳에 들렀던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시청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당장에 그 자리서 꺾었다간 더 혼란스러울 것 같아 가능하면 직진해서 가려고 갖은 애를 다 썼어요.

그렇게 한참이나 달리니까 동림동이 보이는 겁니다.

 

거기서부터는 조금 안심이 됐어요.

그 정확한 길은 기억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전에 그 부근까지 자전거로 몇 번 드나들었던 기억이 있어섭니다.

 

그러나 안심했던 거와는 별개로 막상 거기서 집에까지 들어오는 길도 순탄하지만은 않데요.

장례식장 가는 길에 자전거에서 도로 바닥으로 철퍼덕 넘어져 팔꿈치며 무릎에 피멍이 들고 옷자락도 뜯겼기에 이 순간에 빨리 달리면서도 최대한 정신 집중해서 안전운전하려고 전력을 다했어요.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시계를 보면서는 완전히 기진맥진&&&@^^^

딱 한 시간 28분이 걸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찾아가는 방향 누구한테도 물어보지 않았었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달랑 '자전거 편안한 길 약도' 말고 '일반 도로 약도'를 하나 더 뽑았으면 훨신 더 편했을 것을…

 

~ 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거늘… 02 ~

 

그날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 이건 용기가 아니고 만용이다! -

- 아니, 이건 만용을 넘어 오만이다!!! -

 

'아아~ 세살배기 애들도 다 아는 얘기(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거늘)를 왜 나는 몰랐을까…'

한마디로 그렇게도 경솔하게 처신한 제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맹아를 넘어 무뇌아처럼 경솔하게 처신한 그때를 곱씹고 또 곱씹어 후회했습니다.

- 아아~ 이 멍텅구리 바보 천치야~ -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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