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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세월 앞에는 제아무리 굳센 항우장사라도 촉 못쓴다더니…

 

어젯밤엔 여동생 내외가 조카들 앞세워서 집에 들렀습니다.

친정에 한가위 인사차 들린 거겠지요.

 

벌써 며칠 전부터 어머니께선 몸이 불편해서 온갖 고초를 겪고 계신 중이셨는데 입이 쓰다며 그 어떤 것도 마다하던 판국이 요즘인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런 어머니 위로한답시고 궁리하더니 돌아가기 직전에는 조카들 시켜서 포도 한 상자 들여보내 줬답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식구들만 남은 우리 집도 잠자리 환경에 처했었는데 저는 자꾸만 입이 궁금해졌었거든요.

그래서 거실로 나가서 여기저기를 뒤적인 끝에 과자부스러기 한 줌에 아까 조카들이 사 들고 왔던 포도 상자에서 종이에 싸진 포도도 한 덩이 꺼냈답니다.

 

다소 연한 과자부터 먼저 와삭와삭 부숴 먹고는 인제는 포도 쪽으로 손길을 돌렸거든요.

그런데 요것들이 어찌나 딱딱하던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연거푸 들이댄 것도 아니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먹었기에 아주 천천히 깨물었는데도 더는 못 먹겠더라고요.

어찌 보면 미처 포도 알맹이 열 개도 못 깨물었을 겁니다.

 

'~ 와 너무 딱딱해 ~ 아파서도 못 먹겠어!!!'

예전 같으면 자갈밭 산등성이에서 시커멓게 익은 머루 훑어 먹듯이 그것 포도송이도 쭉 훑어서 볼기짝에 가득 채우고는 와드득 씹었을 텐데 그렇게 여러 개도 아니고 달랑 한 알 씹히는 대도 볼기짝이 아파서 못 먹겠더라고요.

하기야 십여 년 전에도 밤새 그렇게 포도알 씹고 나서는 뒷날 내내 볼기짝이 아파서 나자빠지곤 했었는데 어젯밤엔 솔직히 그게 너무도 빨리 다가오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포기했답니다.

그러고는 아침을 맞이했지요.

 

둘러보니까 어젯밤 먹으려다가 실패했던 포도송이가 가져온 그대로 뒹구는 겁니다.

보자마자 이번엔 그놈 건강(Wellving)하게 먹고 싶었습니다.

 

아침 식사 챙기는 어머니한테 다가가서 포도 이야기 꺼내면서 믹서기 좀 쓰자고 했더니 그까짓 것 돌리려고 그럴 순 없다고 그러셨지요.

그래서 그 대안으로 찾았던 게 절구통입니다.

겉절이 김치 담글 때나 쓰는 절구통 말이에요.

 

그놈 안으로 먹다 남은 포도 한 송이를 알알이 떼어 넣고는 5분을 갈고 10분도 더 갈았답니다.

제 본래의 목적이 그놈 딱딱한 씨앗 부수는 거였었는데 물컹한 요놈이 절구 끝 둥글고 뭉툭한 이마에 좀처럼 걸려들지 않는 겁니다.

정말이지 미치겠더라고요.

 

쿵쿵 내려칠 수도 없는 거고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잡힐 놈들도 아니었기에 소 뒷걸음질에 쥐잡듯이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와드득 와드득 겨우 절반쯤이나 갈렸을 겁니다.

Wellving-01

 

그것 못 갈아도 30분은 걸렸을 걸요.

포도 씨앗 으스러지는 소리 듣기는 좋았지만, 더 갈아봐야 고생한 흔적이 건강식의 기쁨을 추월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느낌이 일자 즉시 중단하고서 멈추었지요.

Wellving-02

 

인제 이 글이 오르고 나면 제 생애 먹었던 머루·포도를 통틀어서 가장 혁명적으로 생식하는 '참살이 건강식'을 실행할 일만 남았습니다.

 

Wellving-03

 

흐르는 세월 앞에는 제아무리 굳센 항우장사라도 촉 못쓴다더니…

제가 영락없이 지금 그 짝입니다.

그토록 굳셌든 어금니 인제 한물갔습니다.

아니 노화로 인해 다시는 인제 다시는 그 시절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이요,

아련하고 알뜰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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