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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생이 저세상으로 떠났답니다.

 

오늘 아침 일입니다.

핸드폰에선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는 동생 이름이 찍혀서 벨이 울립니다.

 

'응! 나야. 나 아직 안 죽었는데 웬일이야? 나 죽을 때 되면 사나흘 전에 미리 연락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이고 형님 / 아이고 형님! HG2 형이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아니 왜? HG2 그놈이 왜? 혹시 자살해버렸냐???'

'아이고 참! 그런 게 아니고요! 수술 / 암 수술했는데 그만….'

'어 뭐라고! 그게 뭐냐^ 아따 안됐구먼…. 어쩌다가 그런 일이….'

 

지금은 쪼그라들어서 그 규모가 너무나도 볼품없이 작아졌지만, 80년대 중후반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지역에선 꽤 알아주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오늘 떠났다는 그 친구와 저는 그해 그 회사에서 세 번째쯤으로 공모했던 시기에 함께 들어간 입사 동기(88년 8월 9일)였었죠.

 

회사에서 입사 동기다 보니 노동조합에서도 동기로서 우린 열성을 다했답니다.

우린 회사 안에서보다 바깥쪽(전국 노동조합협의회 산하 지역조직)에서 더 열성적이었죠.

 

지금은 그런 말도 사라졌지만, 그 시절엔 '공안정국'이란 말이 시도 때도 없이 언론이나 신문 등 모든 매체를 통해 확산하면서 우리 삶을 옥좼던 시절이었습니다.

걸핏하면 경찰에 불려가고 수배되고…. 때로는 구속수사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그런 바로 그런 검찰 무소불위의 시절….

 

녀석은 우리 조직 전투 조의 조장으로서 어디서 익혔는지 수련회 등을 마련했을 땐 '꽃병(화염병)' 만드는 기술을 모두에게 전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학생들이 주로 어울리는 민족투쟁진영(전대협 / 남총련)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서 가능하면 만나지도 않았었는데 녀석은 개들이 부르는 노래도 금세 익숙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저보다도 열배 백배는 더 품이 넓고 컸던 녀석입니다.

 

그런 녀석이 회사에서 쫓겨났을 때도 비슷한 시기에 쫓겨났고 어떻게 살다 보니까 죽을 고비도 비슷했던 거 같습니다.

몇 년 전엔 내내 병상에서 꼼짝도 못 했던 녀석이 어떻게 힘을 냈던지 우리 집을 방문했어요.

녀석이 저와의 옛정을 생각해서 아픈 몸을 죽을힘 다해 일으켜 세웠겠지요.

 

그날 우리 집에 와서는 어머니더러 그러데요.

'어머니 / 어머니! 어머니가 해주신 그 김치 정말/정말 맛나더라고요!'

'아니! 내가 언제 댁한테 김치를 줬다고 그래요???'

어머니도 저도 그날이 언제였는지 잊었습니다.

 

아마도 그보다 훨씬 전에 셋방 살면서 해마다 이곳저곳을 떠돌았을 무렵에 생긴 일이었나 봅니다.

 

그 옛날을 생각해서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제게 전화한 동생한테는 처지를 봐서 가겠노라고 전했지만, 제 몸은 이미 옷장을 열고서 이곳저곳을 마구 파헤치는 겁니다.

 

아무리 파헤쳐도 위쪽으로 반소매 티는 있는데 아래쪽으로는 입을 만한 바지가 안 보입니다.

있는 거라곤 모두가 두툼한 겨울옷(그것도 주로 작업복)투성이라서 이거 맘은 바쁘고 죽겠습니다.

 

- 아니지 이렇게 접어서 갠 옷들보다는 옷걸이에 걸린 옷 속에 어쩌면 바지가 있을 수도 있어!!! -

바지라고 생긴 바지는 모두가 언제 적에 입었던 옷이었던지 너무나도 좁아서 양발 모두는 절대로 안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여름옷으로 보이는 바지를 찾았기에 시험 삼아서 걸쳐보는데 무릎|까지는 괜찮은데 허벅지를 타고 엉덩이까지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통째로 터질 듯이 꽉 끼었어요.

 

그런 놈은 벗어 던지고 찾고 또 찾으니까 드디어 품 넓은 바지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건 마침 겨울옷도 여름옷도 아닌 사계절 옷이라고 우겨도 무방할 등산복을 닮은 바지입니다.

우람하게 볼록 나온 저의 또 또 배를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여유롭네요.

그도 물론 배 속을 비웠을 때 얘기겠지만,

 

그 바지를 임시로 걸쳐 입고서 거실로 나가 봅니다.

거기 장례식장이 우리 집과는 너무나도 먼 거립니다.

그랬기에 그곳에 실어다 줄 동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랬는데 그 동생이 안 보입니다.

틈만 나면 이 녀석도 산재 후유증 치료차 병원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어쩌면 오늘도 거기 갔을지도 모릅니다.

거기 너무나도 멀기에 택시비도 어쩌면 십만 원 내외가 나올 거립니다.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다시 들어와서 바지를 벗어 한쪽에 두고는 아까 전화했던 동생한테 전화했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안될 것 같다! 내일이나 갈게~'

'그럼 그렇게 하세요!'

 

벌써 열흘도 넘었겠는데요.

그날 저는 백신 접종 예약을 하면서요, 가장 적절한 날로 그전에도 빈 날이 있었음에도 삼십여 년 전의 그날을 생각해서 8월 9일로 접종 일을 예약했었답니다.

내일이 바로 그날인데 하필이면 그 뜻깊은 날에 백신도 맞아야 하고, 그 옛날 목숨줄 하나 길거리에 헌신짝보다 가볍게 여기면서 싸웠던 동지! 그 동지의 영혼과도 만나야 하니^

 

그 친구 / 그 벗 / '그 동지가 쇠파이프 찍으며 우뚝 서서 부르던 그 노래 / 적기가'기 새삼 그리운 오늘입니다.

Posted by 류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