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유튜브에서 시계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바닷가에 아스라이 걸친 초가 오두막의 우리 집은 어느 순간에 느닷없이 주저앉아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던 그런 집이었다.

태풍으로 마당에까지 파도가 들이칠 때면 장독대 한쪽을 지탱했던 담장이 조금씩 무너졌고 흙벽으로 둘러쳐진 마루 쪽 터진 구멍도 그간에 때웠던 게 헛것이 되곤 했었다.

그렇게 다 허물어진 큰방의 문짝 바로 위와 양옆으로는 어쩌다가 초등학교서 건져 올린 상장이나 임명장 등으로 도배가 됐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붙인 지 얼마 못 가서 바래고 그을려서 그 옛날 골동품처럼 누렇게 되어 그 본래의 품성이 날아갔었지.

76년도에 우리 아버지 이 세상과 담쌓고 떠나시자, 그로부터 다시는 방문 위로 그런 따위 불장난은 하지 않았어.

좁아터진 안방엔 우리 집 겨울 식량이었던 '고구마' 대발(지난해 김 양식에 써먹었던 도구)로 그 처음과 끝을 잇대어 둥그렇게 틀을 짜고 방안 한쪽에 세워서 그 안에 가득 고구마 채워 넣었던 '고구마 둥지'가 있었어.

겨울이면 그 고구마 삶느라고 가마솥의 장작불에 방 안 가득 집안 전체가 후끈후끈 뜨근뜨근했었는데 얼지 말라고 방안에 설치했던 그 둥지에서 뜨거운 열기 탓에 끊임없이 고구마로부터 떨어져나온 흙먼지가 가득했었지.

그 좁은 방에서 두 어르신과 그분들이 생산해 낸 우리 네 아이들….

그래도 아버지 계셨을 땐 그 방의 벽체 한곳엔 괘종시계와 새벽이면 잡음 하나 없이 북한 방송만 깔끔하게 잡히는 라디오도 있었는데….

또 방 한쪽엔 내가 어느 해 방학 숙제로 달력 보고 베낀 크레용 그림이 붙곤 했었는데….

그해 76년도 어느 시점에 우리 마을에 전기(110볼트)가 들어왔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엔 그 몇 해 전부터 잘사는 집 중 두 집에 텔레비전을 들였는데 낮이면 축전지 부착한 발동기 돌렸다가 충전해서 그 전기로 온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 두 집에 분산되어 텔레비전을 시청했었다.

'복녀'를 보고 '전우'도 보고….

그것 텔레비전의 채널 돌리는 방식이 영락없이 우리 집 괘종의 시계태엽을 감는 방식과 똑같았었다.

'또르르 또르르'가 아니고 '드드득 드드득'….

오늘 유튜브에서 시계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그 옛날 그 시절의 시계들이 생각난다.

아! 손목시계^

그 짱짱했던 시계를 차고 무등산에 오를 때마다 어디서 빠졌는지 나는 그걸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시계 말고 손가락에 걸었던 반지도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에 날아가곤 했었지….

주월동이나 월산동에 살 때는 술이 떡이 돼서 늦잠 잘 때가 많았는데 그런 날은 틀림없이 공장 통근버스를 놓쳐야 했었다.

그럴 땐 도리가 있나! 어떡해서든 공장은 가야겠고?

그래서 염치·체면 던져버리고 바로 옆 공장인 '대우전자 통근버스'에 눈 딱 감고서 올라타곤 했었다.

그런 순간이면 몸에서 술기운이 확 터졌기에 대우전자 아가씨들 아주 기겁하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더구먼!

그 당시엔 '대우캐리어 / 대우전자' 어차피 같은 계열사였으니까 기사님도 나의 승차 여부를 결정할 계제가 아녔을 때였지….

----------------------

친구 2 / 민중가요


어두운 죽음의 시대 내 친구는

굵은 눈물 붉은 피 흘리며

역사가 부른다 멀고 험한 길을

북소리 울리며 사라져간다

친구는 멀리 갔어도 없다 해도

그 눈동자 별빛속에 빛나네

내 마음속에 영혼으로 살아 살아  

이 어둠을 사르리 사르리

이 장벽을 부수리 부수리

https://www.youtube.com/watch?v=SGjeyp_WHMs

----------------------

Posted by 류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