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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일상이 재해를 불러올 거야!

 

어제 이야깁니다.

그저께 좀처럼 깊은 잠을 못 이뤘기에 밤이 무척 더디더라고요.

해서 아침을 맞으면서는 찌뿌듯한 몸 어떤 식으로든 풀어버리고 싶었답니다.

전에도 몇 번 그랬었지만, 요번에도 아침 산책이나 다녀올 생각이었지요.

 

마을에 집에서 대략 10분 거리쯤 산책하기 딱 좋을 만한 공원이 있거든요.

이른 새벽이면 그 자리 운동 나온 시민들로 대개 붐비기에 저로선 좀처럼 나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는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추위 탓에 한가할 걸로 짐작하고는 무작정 가보기로 했었거든요.

그 자리 인공호수가 있었기에 호수공원이라고도 부르는 쌍암 공원입니다.

 

아파트 현관을 막 나서면서 섬뜩했지요.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렸더라고요. 거기다가 지금도 내리는 중이었고요.

기왕에 나섰으니 공원 쪽으로 걸었답니다.

 

여섯 시를 지났을 텐데도 바깥은 아직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계속하여 교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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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이 운집한 네거리에 들어섰더니 대낮처럼 훤합니다.

인제 저기 신호등만 건너면 공원 입구에 들어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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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 샛길에서 안쪽으로 들어서려는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땅만 보고 걷다가 눈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가 이마 끝을 스쳤답니다.

'앗^ 어이 추워라!!!;'

목덜미 안으로 쌓였던 눈 알갱이 되어 사정없이 쏟아지고 스며들데요.

여기가 호수 공원이라서 앞이 터졌기에 솔직히 이보다는 살짝 더 훤했었는데 사진에는 무척 어둡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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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오가는 시민의 그림자 거의 못 봤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벌써 지나쳤네요.

이렇게 스쳐 간 흔적 위를 걸으면 발자국 고유의 뽀드득 소리 오간 데도 없고 오히려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만 나는 겁니다.

어쩌다가 아무도 안 밟은 자리 지나면 그럴 때여야 뽀드득 소리 경쾌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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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칠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 소리!!!

그것 분명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 소리를 찾아 인제는 노골적으로 사람 발길 없는 곳만을 찾아다녔지요.

가고 또 가고, 가고 또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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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그렇게 지났던지 인제는 그곳이 어딘지를 모르겠더라고요.

한마디로 그 눈밭에서 길을 잃은 겁니다.

그놈의 뽀드득 소리가 원순지 제 정신머리가 원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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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지나는 사람이 있어야 물어보기라도 하지. 그 순간에 지나치는 사람도 없고…

휴대폰을 꺼내서 지도라도 펼쳐놓고 보려고 했는데 '구글지도'엔 파란 빛만 있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며칠 전에 '다음지도'를 그만 지웠었거든요.

액정 위로 물기가 가득 차네요.

보여야할 지도는 나오지도 않고 그 물기 안으로 머리카락 같은 터럭만이 길게 늘어졌는데 잡으려 해도 그놈의 물기 탓에 밀리기만 하지 잡히지도 않더라고요.

'와이파이'가 아닌 데이터 쪽으로 돌렸음에도 지도가 안 나옵니다.

 

제가 그것 들고 다니면서 사진 박느라고 물기가 베었을 겁니다.

전에 그것 액정 교체하느라고 엄청나게 들었던 적이 있었기에 겁이 나서 휴대폰으로 길 찾는 걸 포기했네요.

그러고는 거기 눈길을 벗어나서 공원 바깥의 차도 옆 인도쪽으로 내려왔답니다.

시내버스도 다니고 멀리 커다란 도로표지도 있었는데 제 눈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어디가 됐든 마구 걸어갔지요.

드디어 실마가가 될만한 걸 찾아냈어요.

시내버스 정류소입니다.

거기엔 노선 안내판이 있잖아요.

한쪽에는 눈이 쌓여서 안 보이기에 발로 걷어찼지만, 꼼짝도 않았지요.

하여 뒤쪽을 봤더니 그곳은 그래도 그 대강이 보였습니다.

맨 위쪽엔 그곳이 '과기원'이라고 쓰였습니다.

드디어 한숨을 놨어요.

거기서 두 정거장만 지나면 제가 사는 아파트 나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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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한코스만 아니 한두 블록만 더 걸으면 우리 아파트가 나올 겁니다.

가로수에 쌓인 눈 환상 그 자체였지요.

한창 사춘기가 무르익을 무렵이던 그때 그시절 여자 친구의 치마 사이로 비친 가랑이 살빛이 저보다 예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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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되는 그 불빛에 취해서 우리 아파트 담장 밑까지 걸어오는데 또다시 이마 위로 눈 쌓인 나뭇가지가 걸렸습니다.

'으흑^ 제기랄^^ 아따 정말!!!'

드디어 무사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들어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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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벼슬이라도 했느냐고 어머니는 제 젖은 꼴 보시더니 대뜸 핀잔 주시네요.

전에 터졌던 '세월호' 또 이번에 터진 '오룡호' 사건…

그건 거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안전사고 그런 거 같습니다.

저도 하마터면 아침에 사고 날 뻔했으니까요.

 

누구든지 언제든지 '준비되지 않은 일상이 재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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