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거실과 베란다를 가르는 베란다 중문이 뻑뻑하고 잘 안 열렸을 때
아침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점심으로 부르기도 뭐하고 아무튼 열한 시쯤에 저의 첫 끼니가 들어갑니다.
예전엔 지금은 일절 안 먹고 있지만, 술 먹었던 시절(9, 10년쯤 전까지는 늘 반주했었음) 작은 다용도 밥상에 밥 올리고 술 올리고 했던 버릇으로 방으로 차려 들어왔었는데….
넘어지지 않고 들고 오는 것! 상위로 국물이나 술잔 흘리거나 넘어뜨리지 않고 들고 오는 것!
술도 술이었지만, 그것이 비틀거리는 몸이 중심을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 될 성싶었습니다.
그러나 술이란 것이 들어갔을 때만 일시적으로 굳은 혀를 풀어서 말하는 것이 편해졌고(그때는 혀가 심하게 굳었기에 누군가와 소통하기는 당연히 불가능했고 심지어는 저 홀로 속말도 할 수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럴 뿐만이 아니라 알코올이 들어가니까 피 흐름이 왕성해져서 두뇌에 산소 공급도 많아졌는지 두뇌 회전도 굉장히 잘 돌아가데요.
심지어는 걸을 땐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처럼 비틀거렸는데 술이 들어가면 그 비틀거림도 훨씬 덜 했을 뿐만 아니라 갈지자로 걷지 않고 어느 정도 일직선으로 걷기까지 했던 겁니다.
그랬었지만, 술이 좀 과해지면 그 마지막은 늘 생각지도 못한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졌던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아는 형님과 '똥배' 고민을 상담하던 중 술부터 끊으라는 충고에 그것을 빌미로 해서 술을 멈추기로 했던 겁니다.
그것이 그러니까 9, 10년 전의 일이지만, 밥상을 방으로 들고 들어왔던 버릇은 여전했었지요.
그러던 차 어느 날 제 동생이 그러는 겁니다.
- 형님 방에선 썩은 내가 나서 도저히 못 들어가겠어!!! -
그날 제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지요. 물론 그 소리 막 들었을 땐 몹시 서운하고 화도 났지만, 냄새를 맡지 못하는 제 처지에 대꾸할 자신 또한 없었답니다.
대신 그날부로 제방 유리창 문은 늘 밤낮으로 한쪽이 빼꼼히 열린 상태지요.
당연히 밥상도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이나 부엌(그곳에 식탁이 있으니까)에서 처리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도 베란다에서 먹고 싶은 겁니다.
그리하여 밥상(단출하게 보통은 밥하나, 국 하나, 반찬 한둘에 수저 젓가락)을 들고 부엌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나가려면 거기 중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언제쯤부터 놈이 잘 안 열렸습니다.
밥상을 들고서 밥상 모서리를 문짝 한쪽에 대고 밀면 스르르 열려야 제격인데 이게 그렇질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밥상을 내려놓고 손으로 문을 꼭 잡고서 힘주어서 밀거나 당겨야 삑삑거리면서 겨우 열리는 거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밥상을 차려 식탁에 올려둔 채로 그것 베란다의 중문을 바라보다가 그날은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밥상을 그대로 둔 채 일단 중문을 빼내서 확인하기로 했죠.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20여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들었을 때만 해도 비록 그 시절도 아픈 몸이었지만, 그까짓 거 별것도 아녔는데 세월이 참 무섭습니다.
마치 백 킬로의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는 거처럼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그 무게 실제론 7, 80킬로밖에 안 될 거였지만, 제 느낌엔 그랬습니다.
겨우 빼내서 커튼 봉과 거실 등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진짜 어렵사리 눕히고는 창문 바닥에 달린 롤러를 굴려봅니다.
문짝 바닥에 모두 두 개가 달렸는데 개중에 한쪽은 부드럽게 잘 돌아가는데 나머지 한 놈은 총 맞은 거처럼 꼼짝도 하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그놈 탓에 그러나 싶어서 놈을 주먹으로 또는 드라이버 손잡이로 쿵쿵 두드려도 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거든요.
얼른 방으로 들어와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그것 엄청나게 비쌉니다. 거기에다 택배비까지 하면 그 대부분이 만원을 훨씬 넘어가네요.
더군다나 기왕에 바꿀 거면 세트(두 개)로 바꿔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비싼 물건을 샀다고 쳐도 우리 집까지 배달되어 들어오려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할 것도 같고….
- 에이^ 차라리 우리 동네 철물점에 한 번 물어나 보자! -
인터넷 지도에서 규모가 꽤 큰 우리 동네 철물점을 찾고 거기 전화번호로 전화를 돌렸지요.
- 뭐 좀 물어보려는데요. 혹시 거기 아파트 중문에 들어갈 롤러 있어요? -
- 네. 있습니다 -
- 얼마나 해요? -
- 사천 원대서부터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 네. 알았습니다. 삼십 분쯤 걸리겠네요. 곧 갈게요 -
거기 점원으로 보이는 아가씨로부터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그 가격대도 저렴하다 싶어서 기분이 우쭐해졌지요.
찾아가려고 옷을 챙겨 입는 사이에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철물점에서 보낸 롤러 사진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엔 롤러에 홈이 파여야 했는데 거기 사진에는 안 보입니다.
얼른 다시 전화 넣어서 물어봤더니 홈이 파인 것도 있다네요. 금방 찾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하고는 정말이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부랴부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답니다.
그랬는데 막상 가서 남자 점원을 만나 아파트 베란다로 가는 중문에 들어갈 롤러를 사러 왔다고 전하니까 그 가게엔 그건 없고 아파트 창문용 롤러만 있다네요.
그걸 중문에 끼우면 하중을 이기지 못해 부서질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럴 거라며 대꾸까지 해줍니다.
또 이 근방에서 그런 물건 파는 곳을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저를 위로하는 말도 전합니다.
- 에라 모르겠다! 내가 알아서 손대 봐야지^^^ -
그길로 집에 와서는 문틀에 끼웠던 중문을 다시 빼냈습니다. 이번엔 그것 롤라를 모두 빼내기로 했던 거지요.
그렇게 빼낸 롤러를 깨끗이 닦고는 잘 돌아가지 않았던 롤러 이곳저곳에 일자 드라이버를 쑤셔 박으면서 이리저리 치댄 결과 드디어 놈이 여전히 뻑뻑했지만, 다시 도는 겁니다.
얼른 다시 끼우고는 'WD40'이라는 녹막이도 뿌려 줍니다.
문의 뻑뻑한 기운은 좀 사그라진 듯했지만, 문이 열릴 땐 그런대로 괜찮은데 문을 닫을 때 덜컹거립니다.
아파트에서 삑삑거리는 소리도 아래층엔 소음이겠지만, 덜컹거리기까지 한다면 이건 정말 흑흑흑….
중문을 다시 빼냈어요. 맨 처음 롤러 빼낼 때도 그랬지만, 문짝으로 롤러 쪽이 바닥에 닿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이번에도 골판지 상자 두 개를 문틀 각각에 고여 그 높이를 올린 뒤 롤러를 모두 빼냈답니다.
그런 다음 아까 녹막이를 뿌렸기에 그 기름(오염물)이 거실이나 옷가지에 묻지 않게끔 화장지(프라이팬 기름 휴지)로 말끔히 닦아 냈답니다.
그런 뒤 뭐가 잘못됐을지 두 롤러를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둘엔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특별히 뭔가를 올리거나 내릴 장치도 없습니다.
베어링이 촘촘히 들어갔을 롤러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을 것 같았었는데….
곰곰이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문득^^^!!!
- 이 둘의 위치를 바꿔서 달아 보면 어떨까? -
자세히 보니까 그것 롤러의 생김새 옆면도 달라 보였습니다.
- 그래 그것 위치도 바꾸고 옆면도 돌려서 꽂아 보자!!! -
이번엔 맘먹은 거처럼 롤러 각각을 서로 바꾸고 그 옆면까지 뒤집어서 꽂은 뒤 문틀에 문을 넣기 전에 녹막이도 살짝 뿌리고는 문틀에 문을 꽂은 뒤에도 몇 번이고 문을 들고 내려서 제자리에 옳게 자리 잡게끔 한 뒤 마지막으로 녹막이도 롤러에 더 뿌려줬답니다.
앗싸! 삑삑거리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고 쓱쓱 거리는 소리가 조금 납니다. 문을 닫을 때도 덜컹거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니까 쓱쓱 거리는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여닫힙니다.
살짝 밀면 인제는 그 관성으로 30~50센티미터쯤은 밀려납니다.
문을 닫을 때 자칫 힘줬다간 그 무거운 문짝에 손이 끼어 큰일 나거나 그렇지 않은데도 문 부딪히는 소리 엄청나게 클 거 같아 여닫는데 이젠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문이 칙칙해서 잘 안 열려도 문제지만, 너무 부드러워 저항이 없어도 문제가 되네요.
이상으로 뻑뻑했던 우리 집 거실의 베란다 중문 얘기를 마칩니다.
~ 베란다 중문 롤러가 말이지 - 01 ~
~ 베란다 중문 롤러가 말이지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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