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 넘어가는데 뜬금없이 옛사랑이 켕기네!
틈틈이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그 시청 방식을 '자동'이 아닌 '수동'에 뒀었다.
그랬기에 각 편을 보고 나면 당연히 새롭게 볼 놈을 다시 찾아야 했다.
이번에도 이전 것을 다 본 뒤에 새 놈을 찾는 중에 아주 낯익은 이름(남양주) 하나가 들어온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학창 시절(1980년대 초반) 죽자 살자 꽃 편지 주고받았던 옛 여인이 살았던 지역 편지 주소가 떠올랐다.
물론 나는 그 지역을 편지 주소로만 알지 실지론 한 번도 못 가봤다.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 지금 3리… 최 모 씨댁]
중학을 마치고 딸내미 많은 집에 넷째인가 다섯째였던 옛 여인은 고등학교에 갈 수 없어(집에서 보내주지 않았었기에) 도회지로 나가서 돈이나 벌어야 했었다.
그 시절에 도회지를 우리 촌에서는 대부분이 '서울'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위쪽으로 '인천'도 있고 '수원'도 있으며 저기 오른쪽에는 '부산'도 있잖은가?
그런데도 우린 서울을 최고로 쳤었다. 더 정확히는 객지로 나가 돈을 벌 데는 서울밖에 없는 줄로 알았다.
그렇게 촌에서 서울로 돈벌려고 나간 치들은 일 년에 딱 두 번씩 고향을 찾았었는데 어떤 치들은 자가용을 타고 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여럿이서 전세한 관광버스를 타고 모조리 내려올 때가 많았다.
그 시절 관광버스에서 내렸던 여태 우리가 알았던 면상은 이미 다른 면상이 돼버렸다.
그 말투에서부터 그 끝에 꼭 '그랬니? 저랬니? 식으로 '니'를 붙였었고' 일상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호칭 '너!'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써댔었다.
어색하고 또 어색했어도 나는 그 소녀가 예쁘기만 하더라.
그렇게도 사랑했는데 그렇게도 사랑했었는데-
82년도 고3이었던 어느 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 어느 낯선 여고생이 내 자취방에 난데없이 쳐들어와서 숨겨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그녀를 벽장에 밀어 넣고서(그녀의 신발·가방까지 합쳐서)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지.
잠시 후 웬 낯선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내방을 두드리니까 문 열고서 나가 도대체 누구기에 이 난리냐고 덤볐지.
했더니 대뜸 그러는 거야.
어떤 여학생이 택시비도 내지 않고 이 집으로 숨어들어 가는 걸 봤는데, 숨기지 말고 얼른 내놓으라고 큰소리치더군!
[뭐 이런 개떡 같은 소리가 다 있소? 어디 한 번 들여다보시오!]
당연히 벽장에 숨겼으니 빈방을 들여다본들 무슨 수가 났겠나?
문제는 그 택시 기사가 가버리고 없는데 그때서부터 문제가 생겨버렸어!
벽장에서 내려줬는데 이 가시나가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거 있지?
밤은 깊어가는데 미치겠더구먼!
나는 책상에 앉았고 녀석은 훌러덩 벗은 체 이부자리에 들어가서 자꾸만 내려오라는 거야!
스무 살의 남자! 정말이지 돌아버리겠더라!
나한테는 사랑하는 소녀가 있으니까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가래도 - 염병합시다!
헤르만 헤세, 칸트, 하다못해 쇼펜하우어까지 들먹이면서 지성인의 품격을 갖추자고 아무리 달래봐도 - 염병합시다!
부모·형제 친구 선생님 그 모든 성인군자 끌어다가 이 녀석을 체념시키려 했는데도 - 염병합니다!
그렇게 버틴 두세 시간이 나는 천만년보다 힘들고 괴로웠었다.
내게는 분명 사랑하는 꽃순이가 있는데 그녀는 오늘도 나 생각하다가 그만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렸을 텐데-
결국은 훌러덩 벗은 여고생의 새까만 자리 말초신경에 내 몸이 무너져버렸지.
무너졌던 그 시간 3분이나 됐을까 5분이나 됐을까?
헐떡거렸던 우리의 찰나(신음)가 왜 그리도 컸던지 나는 불안해서 죽겠더라!
더욱 서글프고 컸던 건 내가 진짜 사랑했던 소녀를 배반했다는 거였어.
다음 날 아침에 등교하면서 [다시는 나를 찾지 마라!]고 말하자 분명히 알았다고 했는데-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밤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진상을 남김없이 솔직히 써서 서울(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 지금 3리-)에 있는 옛 여인한테 편지로 고백했어!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내 죄에 대해 속죄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편지 보내고 그 주의 쉬는 날이 왔는데 누군가가 또 내 방을 두드렸지!
누군가 싶어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문을 열었는데 내가 다시는 보지 말자고 했던 내 알몸 훑었던 그녀가 찾아온 거야.
'뭐야! 오지 말라니까 왜 또 왔어!'
'그러지 말고 나 잠깐 들어가자!'
'안돼! 절대 안 돼 들어 오지 마!!!'
그러는 사이에 또 누군가 찾아왔는데 문틈으로 보니까 그녀는 다른 애도 아니고 서울(경기도 양주군-)의 그녀더구먼!
내가 깜짝 놀라서 문을 열면서 그랬지!
'어 왔어? 애가 바로 내가 편지에서 말했던 걔야!' 그러고는 또 다른 놈한테는 '이 사람이 바로 내 애인이야!!!'
'알았어^ 내 갈게!!!'
'...'
그날 그렇게 서울의 내 옛 여인과 '염병합시다!'가 동시에 내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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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학교에서 [백일장]이 있었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소재가 없어 내내 죽치고 있다가 남은 시간 없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내 가슴에 보릿자루보다도 무겁게 짓누르는 그 얘기가 덮쳐오더라!
쉽게 말해서 나는 숨도 안 쉬고(일필휘지) 그때의 그 일을 우리 집 가정사와 엮어서 '수필' 장르에 써냈었어.
'최우수상!'
훗날 어느 대학교에서 '국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다는 나의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내 글에 '실화'가 너무 과하다고 평가절하하셨지.
내가 생각해도 우리 가정사 너무나도 소설 같거든.
내가 우리 어머니 팔자 고쳐도 무방하게끔 동생 셋을 모조리 아주 작은 목선에 싣고서 바다로 나가서 꼬시고 달래기도 했었거든.
그날 내 동생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펑펑 울었던 날이야!
그때 우리 집에 새 아버지가 되실 분이 하필이면 나의 여인이자 반려자로 여겼던 서울에 사는 옛 여인의 아버님이었지.
그 결정을 했을 때 내 마음은 어땠을지 남들은 알기나 할까?
그러나 내가 그 이야기를 돌린 지 하루도 안 지나서 우리 어머님 노발대발하시고 큰댁의 문중에서는 우리 모두를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더군!
'류중근의 계획 - 실패!!!'
그 길로 나는 그 시골(전남 고흥)에서 고물 자전거를 돌려 광주 쪽으로 비벼야 했어!
나의 그런 사연이 수필에 모조리 담겼는데-
그 어떤 허구도 없이 오로지 피눈물 나는 우리 집 사정의 실상이었는데-
그것을 조작한 우리 집 가정사로 보였을까???
아무튼, 지금 나는 유튜브에서 얼른 본 '남양주'라는 글귀 탓에 추억팔이에 들어간 기분이다.
그 이름도 잊어버린 82년도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서의 '염병합시다' 소녀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그 시절의 서울 여인도 아프지 마시고 늘 용감하게 잘 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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