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저것은….'
1970년대 초 내 어렸을 적 초상과도 닮았다.
1971년 그해는 주변 이웃 서너 채가 전부였던 산중 오두막에서 그 산골의 가장 아래쪽 50~60호의 큰 마을로 이사 내려왔었다.
거기가 너무나도 바닷가였기에 동트는 자리를 보는 집의 왼쪽은 신작로와 닿았고 오른쪽은 바로 아래 바닷가와 닿았던 집이다.
그렇기에 여름날 더울 땐 집에서 깨 벗고 곧바로 조약돌 가득한 바다로 나가 풍덩 빠질 수 있어 좋았고, 썰물이 큰 시기는 해산물(바지락, 게, 장어, 낙지, 미역, 청각 등등) 흐드러졌기에 갯가에 나가 그것 줍는 맛도 쏠쏠했었다.
내가 살았던 고향 땅(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 풍남리 강동마을) 주변으론 전통 오일장이 두 개(고흥 장, 도화장)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거기 오일장에 나간 까닭은 주로 농·축·수산물을 팔아 돈과 각종 생활용품 샀으며, 공산품 일부나 이따금 주전부리도 사 왔을 터다.
바로 그 나들이 교통수단으로 썼던 게 그것이 가능했던 마을 뉘 집의 소달구지였음이라!
한두 시간에 한 번꼴로 신작로를 오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시골 분들에겐 그 버스비도 아까웠기에 짐만 달구지에 싣고 걸어서 오갈지언정 십 원짜리 하나도 아까워하면서 몸 공으로 걸었던 거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은 산중에서 했기에 신작로를 무찌른 산길을 통해 주로 통학했지만, 초등학교 학부 대부분을 바닷가에서 나다녔었다.
그 어린 시절엔 통학로 주변의 점방에서 '1원짜리 지폐'도 통했고, 심지어는 '50환'이라고 박힌 옛날 돈도 '5원'의 값어치가 있었다.
내 아버지는 그 바닷가에서 6년을 채 못 견디고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어린 나와 꼬막만 한 목선에 함께 올라 고기 잡는 법(통발, 삼중 그물, 덤장[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막대를 박아 그물을 울타리처럼 쳐 두고 물고기를 원통 안으로 몰아넣어 잡는 그물] 등)을 체험케 했으니 아버지 떠났어도 그 일부를 나는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부분이 도회지로 유학 나온 고등학생 이전의 이야기지만….
예전엔 한 해에 한두 번 그 시골에 다녀왔는데 최근 들어선 내 몸이 부실해지니까 그마저도 쉽지 않더라!
산중에 살았던 그 자리 논밭도 이미 묵힌 밭이 되어 잡초·잡목이 무성해서 찾아 들기도 어렵지만, 내 어릴 적 추억이 허다한 그 땅이 그립다!
운동신경이 빵점이라서 야구공에 머리통이 울리지만, 그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야구하고 동네 너른 논에서 쌍욕 먹어가면서 공 찼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 친구 대부분도 한 살 어린 패가 더 많은 한해 선배지만, 어리거나 동갑이거나 그 친구들도 그립도다!
'친구들아! 제발 덕분에 너희들 아프지도 말고 너희들이 됐든, 너희 마누라가 됐든지 저세상 갔다는 소리 좀 삭제해다오!!!'
그림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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