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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에 마음 플러스했던 여인으로부터 들어온 전화벨 소리


시골에 살면서 1970년대 후반이 중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그 어느 날 동급생인 그녀가 내게 '마음 담은 쪽지'를 보내왔다.

그로부터 우린 '소꿉장난'보다는 한 단계쯤 더 높은 연인이 되었다.

사춘기가 실린 격정의 시기였을 테니 그 젊음에 타는 속이 오죽했을까?

그 중학교 시절을 지나 나는 도회지로 유학 나온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녀는 내가 머문 도회지보다 훨씬 더 큰 이 나라의 총합 중심인 '서울' 부근으로 올라가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견우·직녀' 재회하듯이 우린 해마다 명절 때나 시골에서 얼굴 마주했었고 그 나머지 대부분은 '꽃 편지'로 연을 이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모르는 소녀(여학생 차림)가 갑자기 내가 자취하는 방에 들이닥치면서 내 삶에는 엄청난 사달이 생겨났다.

그 모르는 소녀의 강력한 돌진에 '초인적 힘'을 다 바쳐서 견뎌보고자 했지만, 끝내 나의 '육체적 순결'은 허물어지고 말았지.

그날 나의 죄책감-중학교 때부터 일편단심 수년을 사귀었던 연인-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그랬기에 당장에 편지를 띄워 나의 진상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지.


그리하여 그 주 주말(일요일)에 그녀가 내가 사는 자취방으로 찾아왔었다.

그와 동시에 또 내 육신을 점거했던 그 여인-학생 차림의 소녀마저 함께 들어오지 않았던가!

'어! 왔어? / 어! 어! 얘가 걔야!'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그 둘은 내 자취방 문 앞에서 그냥 떠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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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 이야기를 묶어서 나는 수필형 식으로 학교에서 치르는 '교내 백일장'에 제출했었다.

그러고는 '최우수'라는 이름이 붙은 '으뜸상'을 받게 되었다.

그런 사연을 안고서 이 소녀와 나는 '연인'이라는 '별칭'이 소멸하였다.

세월이 흘러서 훗날 그녀의 어머니께서 고인이 되셨고 또 세월이 흘러 나는 내 어머니를 그녀의 '새어머니' 자리에 두고자 추진했었다.

그러나 그 소식이 우리 문중에 알려지자 곧바로 초대형 풍파(우리 집안 모두를 문중에서 파 버리겠다!)가 내려쳤단다.

어머니는 기겁하시고 벌벌 떨었었지.

나는 그길로 타고내려 갔던 자전거 돌려서 그 밤에 되돌아와야 했었지(광주광역시↔전남 고흥군 풍양면 풍남리 고향 땅).

그렇게 저렇게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렀어.

그러다가 그녀는 그녀대로 또 나는 나대로 각자의 인연을 만나 후사(자녀)를 보기도 했거든.

아쉬움은 컸지만, 후회하진 않았어!

왜냐하면, 그 모든 잘못의 출발점은 나로부터 출발했었으니까-

어찌 보면 진짜 천벌을 받을 놈은 나였으니까-


저렇게 저렇게 살다가 나는 몇 년 전(십 년 전인지 십오 년 전인지 그건 모르겠고) 이혼했기에 지금, 난 홀아비 신세다.

내가 심각한 장애를 입고 생계 일선에 나갈 수 없게 되자 마음 약속했던 아내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새 연인을 맞았다.

1996년에 내가 장애를 입었는데 대략 십 년쯤을 같이 살다가 그녀가 우리 아이들 데리고 그놈과 함께 내 곁을 떠났었다.

그러고 7, 8년쯤 지났으려나 그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아내'였던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혼'하고 싶다고 전한다.

'이혼 절차'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가정 법원'에서 이혼 판결 받고서 연고지가 아니더라도 아무 '구청'이나 들러서 '이혼 신고'하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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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는 글쎄 내가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연인'이었던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녀의 남편도 알고 있다.

나보다 셋이나 위니까 '형님'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그 첫 전화 왔을 땐 잘 달래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이어서 또다시 전화했다.

이번엔 그녀가 훌쩍거린다.

달래보다가 안 되겠으니까 '형님' 바꿔 달라고 했다.

'아니 그냥 형님 목소리나 들어보자고 했어요!'

내가 전화했던 것도 아니지만, 내 입에선 혀가 꼬였던지 그렇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가볍게 안부 전하고 끊으려는데 곁에서 그녀가 전화를 가로채더니 이제는 펑펑 운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수십 년 전(1982년)에 내가 추진하려다가 실패한 '어머니·아버지 짝짓기 사업'을 들먹인다.

당시는 어쩌고저쩌고한 이유로 나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건 오해였다며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전화기를 돌렸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나중에 연락하며 꼭 나오라고도 했었다.

- 초등학교 동창회 남부 지역 총회 -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내 가슴엔 지금 저기압이 까만 구름으로 짙게 깔렸다.

그렇지만, 이렇게 짙은데도 비가 퍼붓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건 또 웬 '꼼지락'이려나!???!

 

Posted by 류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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