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야 잘 가거라!
그저께는 친구놈이 고맙게도 어머니한테 설 인사차 찾았습니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곶감을 한 보따리나 사 왔데요.
녀석 인제 제법 어른티도 나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녀석 밥 먹으면서 술도 먹고 인사도 끝냈으니까 조용히 그냥 갈 일(?)이지 호기심이 당겼던지 제 방에 들어오더니 대뜸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데요.
제 잠자리가 꼭 공동묘지의 입관 틀(침대 네 꼭지)에 관(하얀 침대보 씌워진 딱딱한 나무 탁자)처럼 보인다네요.
저도 그 부분 어느 정도는 인정합니다.
녀석이 오기 하루 전날인데 침대를 가로질러서 잘 게 아니라 침대 방향으로 돌려서 아니 차라리 침대 자체를 돌려버리면 굳이 가로지르지 않고도 잘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던 겁니다.
잘 자는 것도 복 받은 인생이다. - 01
그래서 그 밤 침대 안쪽을 깨끗이 비우고는 그리하기로 작정했지요.
잘 자는 것도 복 받은 인생이다. - 02
침대 안쪽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주 가볍습니다.
그렇게 돌려놓고서 텔레비전 보다가 잠들었는데 새벽녘(서너 시쯤 됐을 때쯤)에 너무도 춥더라고요.
잠이 깼습니다. 몸도 몹시 찌뿌둥했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가 장롱에서 침대보를 꺼냈거든요.
그리고는 잠자리기도 한 딱딱한 탁자 그걸로 감싸버렸죠.
그렇게 한 뒤 다시 잠들었는데 아침이 너무나도 개운하더라고요.
잘 자는 것도 복 받은 인생이다. - 03
며칠간이나 계속해서 옆구리가 아픈 통에 허리를 구부릴 수가 없어서 양말도 못 신지 바지를 입거나 벗을 때도 무척 불편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아침 그 모든 것 말끔하게 사라지기까지 했었답니다.
저로선 너무나도 좋았어요.
했었는데 고얀 요 친구놈이 그것이 관하고 똑같다잖아요.
큰 소릴 낸 바람에 어머니까지 와서 보고는 어머니 역시 그것 기분이 나쁘다며 어서 치우라데요.
그날 밤 녀석을 배웅하면서 저 한참이나 바깥에서(아파트 경로당 입구에 놓인 평상에 앉아서) 고심했었답니다.
제 침상이 공동묘지 입관 자리하고 똑같다고 해서 그렇게 머물렀던 게 아니랍니다.
녀석이 그전에 했던 말에는 제 정신머리 이상하다며 교회라도 다녀보라는 것도 들었거든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바로 그 교회 다니라는 소리입니다.
절이라면 구경이라도 해볼 테지만, 교회는 특별히 뭐가 걸릴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터부시 됩니다.
중풍으로 돌아가신 저의 가까운 어느 분께서도 다 좋은데 저만 보면 주야장천 교회 다니라고 그렇게도 권유 차라리 협박이라고 말함이 더 옳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교회 다니시니까 천하에 다 좋은 데 시도 때도 없이 비과학적인 이야긴데 교회 쪽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런 이야기들 가지고 저하고 수도 없이 부딪치셨을 겁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묏자리가 안 좋다느니…
그런저런 탓에 집안에 우환이 많다느니…
그런 것 좋은 쪽으로 되돌리려면 어디 절에다가 불공도 드리고, 아울러 목사께서 특별기도를 수도 없이 해줄 것이고 또 커다란 제사를 연중 몇 번씩이나 치러주는 곳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좋게 풀린다는 것!!!
그런 일로 어떤 분들은 수백에서 수천만 원씩도 거기 기증한다네요.
그런 마당에 어머니는 한 푼도 못 내서 안절부절 몸 둘 바를 모른다는 둥…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사기 집단의 신종 사기(예수교, 불교, 유교를 짬뽕해서 벌이는 교활한 수작) 같지만, 어머니 매번 거기(노인들 상대로 비싼 물건(달걀, 라면, 쌀, 떡 등등)을 아주 싸게 파는 거로 유혹하기에) 나다니시지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 절대로 알려줘선 안 된다고 저는 저 나름대로 거기 나다니실 때마다 이르니까 그것도 또 핀잔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는데 유독 어머니 아들만 그걸 트집 잡는다는 거예요.
유명한 물리학자인 '호킹' 박사도 'UFO' 존재를 인정한 마당이고 저 역시도 가방끈이 짧기에 순 한글로 써진 네이쳐지도 제대로 못 읽는 처지지만, 그래도 과학은 과학이고 비과학은 비과학입니다.
지금의 과학으로는 두뇌가 가진 정신세계를 '게놈'인가 '상놈'으로도 그 실마리 천조분의 일도 다 못 풀어헤친다 해도 물리는 물리이고 그 존재시간 제아무리 짧더라도 있는 건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잠시라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비켜서 보려고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즐겨 쓰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제 방에서 침대 걷기로 그날 밤 녀석 배웅하고서 나중에 들어오면서 결심했지요.
스무 해도 더 함께했을 이 무던한 침대…
드디어 걷어냈네요. 훗날 언젠가는 보고 싶겠지요?
그러든 저러든 지금은 그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닐 위해서도 친구놈을 위해서도…
'그동안 고생했다. 침대야 잘 가거라!'
잘 자는 것도 복 받은 인생이다.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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