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창 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맹장이 터져 오늘로써 사흘째 병원에 계신 우리 어머니….

 

어제는 무심결에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부산에 사시는 사촌 누나였습니다.

누나는 돌아가신 이모님의 맏딸로 어머님 형제(삼녀일남) 중 유일하게 우리 어머니 홀로 남아계신 탓인지 최근 들어서 유독 자주 연락하십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시골 시댁(자형께서도 이승을 떠나 안 계신 이 판국에) 근처로 연락해서 온라인 결제하여 햅쌀을 사서 즉시 택배 전달 방식을 빌려 우리 집에 보내기도 했는데 그 쌀이 유독 밥맛이 좋아 그랬다네요.

그 뒤로 어제가 두 번째인데 이번엔 어머니 통장으로 자신의 용돈을 또 보냈다네요.

누님 자신도 늙어서 이제는 골방 신세 된 처지에 자꾸 이러니까 부담됩니다.

 

그 말을 전했더니 누님이 되려 펄쩍펄쩍 뛰십니다.

제가 어렸을 땐 너무나도 몸이 약해서 젖을 먹을 수 없었다네요.

산중에 살 때였습니다. 세상이 모두 빈곤하여 참으로 딱한 시절이었답니다.

 

그러던 차 젖도 못 먹고 빌빌거리고 있을 때 어느 날 이모님이 동생 사는 꼴 보려고 산중으로 찾아와서는 우리 사는 꼴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저를 데리고 가셨다네요.

마침 저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거기 사촌 형이 있었는데 제가 이모님의 외짝 젖을 그 형과 나눠서 먹었다네요.

 

그런 사정도 몰랐던 우리 어머니 며칠 뒤에 제가 보고 싶어 이모님 댁을 찾았는데 젖무덤 하나를 가지고 서로 갖겠다며 싸우고 울부짖는 소릴 이모님은 동생 딱한 사정 생각해서 감췄던 그 소릴 결국 우리 어머니 듣고 말았데요.

그 소릴 듣고 나니 어머니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아서 도저히 거기 둘 수 없으니 데리고 가겠노라 생떼를 썼답니다.

 

제아무리 말려도 안 되겠으니까 당시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다녔던 아까 말한 부산의 그 누님을 달려 보냈답니다.

그렇게 해서 산중으로 따라온 우리 누님과 한 식구로 동거를 시작했는데….

우리 누님 그 어린 우리 누님이 날이면 날마다 했던 거가 포대기로 엉덩이 위로 등에 저를 바짝 묶어 매고는 주변의 논둑으로 물고랑으로 막대기 하나 치켜들고서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셨데요.

 

그 시절의 흔했던 그 개구리 지금은 천연기념물인가 뭐로 해서 잡을 수도 아니 어쩌면 환경파괴범 '황소개구리'와 달리 구경하기도 어렵겠지만, 그 개구리를 잡았답니다.

개구리 참으로 영악합니다. 막대기로 개구리 '탁' 치면 녀석 완전히 뻗은 거처럼 뒤집혀 하얀 사지를 쫙 펴고 있죠.

마치 죽은 듯이 생쇼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널브러진 개구리를 모아 냇가로 가져와서는 뭉툭한 조약돌로 콩콩 내리쳐서 머리와 내장 그리고 껍데기는 물로 씻겨 흘려보내고 뽀얗고 통통한 속살만 발려서 집으로 가져와 쌀죽을 쑤었다네요.

그것이 제가 어렸을 적 젖 대신에 먹고 살아난 양식이었으며 그 덕에 말라비틀어져 사람인지 짐승 새낀지 분간하지 못할 만큼 홀쭉하고 볼품없었던 제가 사람 형상을 갖춰갔던 보양식이기도 했었답니다.

 

저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학업을 마쳐야 했던 우리 누님, 바로 그런 우리 누님께서 어머니 안부를 물어봅니다.

 

'응. 누나 어머니 맹장이 터졌데. 그래서 지금 병원에 입원했거든….'

'뭐라고! 중근아 뭐라고???'

 

- 맹장 그것이 얼마나 아픈 건데, 나도 전에 그것 터져서 죽는 줄 알았어! -

- 그냥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니야. 평소에 우리가 아팠던 그 배하고는 달라! -

- 그 아픈 걸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어. 그냥 죽을 것만 같이 엄청나게 아파! -

- 그런데 그럼 어머니를 사흘 동안이나 내버려 뒀다가 이제야 병원에 갔던 거야! -

 

사실 그랬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 양 이틀을 우리 어머니 그 아픈 걸 꾹꾹 참으면서도 같이 사는 제게 일절 언급도 없었는데 동생이 퇴근해서 들어오면 겨우 한두 마디씩 전해서 약국에 가서 약도 사 오고 그랬나 봐요.

그랬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자 우리 동생 일요일 쉬는 날을 맞아 병원에 가기로 했던 겁니다.

 

그 이야기 토요일 저녁 문밖(거실)에서 동생과 어머니 나누는 이야기 저도 제방에서 얼핏 듣고는 잠들었는데 다음날 잠 깨보니 집안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아마도 병원에 갔을 거로 짐작했지요.

별다른 생각도 없이 더 자는데 어느 순간에 전화벨이 요란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잠이 깨어 전화기 들어보니 이미 끊겼습니다.

 

휴대전화기를 들었지요. 바로 밑 동생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나 직전에 있었네요.

카톡에도 상당한 숫자가 들었습니다. 눌러보니 거기엔 제 동생들이 개설한 방에서 서로서로 주고받네요.

 

- 어머니 맹장이 터졌답니다. -

- CT 촬영으로 정밀 검사도 하고….-

- 수술 일정도 잡고….-

- 수술실에 들어갔고….-

-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서 수술 마쳤고….-

 

너무도 무심했던 저였기에 창피했지만, 그 상황에서 그런 것 따질 계제도 아니기에 저도 꼽사리 끼어 동참하고는 마침 그 소식 접한 손아래 동생이 제게로 와서 저도 병원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 얼굴 뵈기가 너무나도 까다롭습니다.

환자 한 명을 두고 동시에 보호자 두 명이 들어갈 수도 없게끔 병원 시스템이 갖춰졌데요.

병원 입구에서 이전의 보호자가 병실에서 나와 보호자 증을 들고서 그 자리에 찾아와 교체하기까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구조였어요.

 

같이 갔던 동생이 저한테 먼저 다녀오라고 양보하네요.

얼른 가서 뵀는데 당시엔 별다른 차도가 안 보였거든요.

그래서 대충 몇 마디하고는 내려와서 동생과 교대했지요.

 

그런데 그 뒤로 다시는 어머니 뵈지를 못했네요. 동생들이 저를 따돌려서요.

저는 너무나도 시끄러우므로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환자들한테도 도움은커녕 해만 끼친다나 뭐라나….

 

처음엔 금방 퇴원할 것 같았는데 문제는 그 뒤로 생겼습니다.

당뇨가 높으므로 짠 음식 매운 음식 피하라고 그렇게 제가 강조했음에도 제 말은 귓가로도 안 듣더니….

드디어 그랬던 우리 어머니 병원에서 맹장이 아닌 당뇨 탓에 일이 터졌습니다.

 

어제는 여태 들었던 음식 일체가 마이너스 됐다네요.

그걸로 우리 카톡이 종일 시끄러웠지요.

쩔쩔매고…. 놀라고 무섭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저보다 모두 어리지만, 저보다도 훨씬 듬직한 동생들이 나중에 의사를 만나 그 까닭을 알아냈어요.

문제는 당뇨였답니다. 당뇨보다는 당뇨가 높았음에도 그에 대처하지 않은 식습관 탓이라고 했답니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짜거나 맵지 않은 건강식을 줬을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이틀째가 되니까 들어온 첫날 135를 넘겼던 고혈압의 당뇨가 35의 정상수치(?)로 내려왔는데 어제의 음식물 마이너스 사태는 그 상황을 몸이 이겨내지 못해 생긴 부작용이었다고 의사가 말해줬답니다.

- 내 참 비틀린 몸이 바로 잡히는데도 엄청난 고통과 함께하네요! -

 

사흘째인 오늘은 부산 우리 누님이 말하고 바랬듯이 꼭 쾌차하여 웃는 얼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어머니 우리 어머니~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

 

----------------------------------------------------------------------------------------

 

오늘부터는 게시판이나 블로그의 모든 글 태그 없이 쓰기로 했습니다.

설혹 태그가 없어 방문자가 줄지라도 바른 태그를 달지 못해 선량한 누리꾼에 피해 가는 일 없게끔 일절 태그를 달지 않기로 다짐해봅니다.

 

 

Posted by 류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