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부르텄다면 고무장갑이라도 낀 채로 덤비자!
며칠 전에 뭘 좀 정리하다가 왼손의 집게손가락이 그만 확 터졌습니다.
급하게 그 자리를 피해서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지요.
마침 화장실에 좀 됐지만 2천년대 초기에 썼던 다 닳은 상비약(마데카솔, 후시딘)이 있었거든요.
약이 들었을 작은 종이 곽을 털어보니 그 두 놈이 톡톡 소리 내면서 튀어나왔는데 둘 모두가 쪼그랑입니다.
어쨌든 어느 거라도 써야겠기에 들었는데 후시딘입니다.
그 뚜껑을 열고 뱃속에 남은 모든 힘까지 쥐어짰더니 새끼손톱의 반의반쯤이나 될 양으로 삐어지네요.
그걸 손가락 벌어진 틈 가운데쯤에 올리고는 얼른 화장실 밖으로 나와 이번엔 진짜 상비약이 든 상비약 상자를 열어 봅니다.
거기 상비약이라고 해봐야 알코올 약병 하나에 몇 바퀴도 안 남았을 반창고 하나 그리고 대일밴드가 든 종이 곽이 전부였지만 얼른 대일밴드를 꺼내서 이리저리 댕겨 손가락을 감쌌거든요.
거기까지는 백 점 만점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 보니 방바닥 여기저기에 붉은 피가 응어리져서 낭자하네요.
이미 굳어버렸기에 화장지로는 잘 닦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걸레짝 갖다 대고는 뿌득뿌득 비벼서 닦아 봅니다.
그나마 거기까지 일단락^!^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세수하려고 했을 때도 밥 먹으려고 밥통에서 밥공기에 밥 덜어내려 했을 때도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세수할 때는 한 손으로 제아무리 씻으려 해도 시늉도 제대로 안 되는 겁니다.
조심조심 또 조심해서 오른손 최소한으로 보조하려는 그 방식으로도 결국은 약 발라둔 왼손이 흐지부지 무용지물이 되어 대일밴드 감았던 것도, 그 위로 반창고까지 둘렀음에도 그 자리를 벗어나 흐물흐물 벗겨집니다.
설거지할 때는 특히 한 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에 애써서 다시 감은 그 자리가 물러터질 걸 각오하고서 도우미 했었답니다.
아^ 그랬었는데 좀 전에 설거지하려고 싱크대 앞에 섰을 때는 그 위쪽 선반으로 고무장갑 한 켤레가 보입니다.
어디로 갔는지 짝 잃은 고무장갑이었음에도 마침 그놈이 왼손에 끼는 장갑이네요.
이번에는 어쩌려고 놈이 보였을까요?
그도 내 사정을 어떻게 알았던지 놈이 딱 부러지게 다친 손에 걸맞은 놈으로 보였을까요?
수십 년 전부터 설거지가 제 삶의 한구석이었지만, 그냥 맨손으로만 했지, 고무장갑을 끼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설거지는 그냥 맨손으로 해야 제격이라고 그 처음서부터 믿어왔기에 그랬답니다.
맨손으로 닦을 때 깨끗이 닦인 식기(밥 국 공기, 수저 등등)만이 낼 수 있는 경음악^ - 뽀드득-^ 뽀드득-^
그 소릴 고무장갑에서는 들을 수 없을 거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맨손으로 닦으려면 미끄러운 세제 탓에 식기 잡은 손에 무리한 힘이 가해지지요.
그랬기에 어떨 때는 튕겨 나간 그릇에 바닥과 강렬하게 부딪혀서 그 형체도 몰라볼 정도로 깨지기도 하더이다.
당연히 너무나도 그 힘이 컸을 테니까-
그런데 아까 그토록 염려했던 고무장갑 끼고서 설거지하는데 여태까지의 제 염려는 그냥 공염불에 불가하더라고요.
그 우려와 달리 도리어 맨손으로 하는 것보다 힘이 덜 들어가니까 훨씬 빠르고 심지어 더 잘 닦이는 것 같습니다.
'뽀드득'의 그 소리는 또 얼마나 경쾌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설거지를 마치고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는 즉시 쇼핑몰에서 '고무장갑'을 찾아봅니다.
그러고는 가장 적당한 놈을 골라서 이번엔 대량으로 주문합니다.
제 손은 좀 크고 하지 말래도 자꾸만 달려드는 우리 어머니 손은 나보다는 더 작으니까 크고 작은놈으로 다섯 개를 한방에 주문합니다.
우리 집 식기들이여 미안하다-^
인제부터 내가 너희 모두를 뽀얀 고무장갑에 번쩍이는 세제에 감싸 씻은 뒤 맑은 자리에 앉혀주련다.
머지않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려무나!
~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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