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창 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음, 으음^ 저녁에 또 볼 수가 있지~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방안에 대낮처럼 밝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고개 들고서 얼른 머리맡 벽을 타고 벽면 위쪽에 걸린 벽시곌 들여다봤지요.

 

이건 다섯 시 여섯 시도 아니고 열 시 열한 시에 육박했네요.

깜짝 놀라서 잽싸게 일어나 자세히 보니까 열 시 오십 분이나 됐습니다.

 

더 잴 것도 없이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튼 누르고는 71번을 찾았지요. 거기 하이라이트TV 채널에서 육남매를 하니까요^

그것 육남매 80회분을 하고는 있는데 어째 이리도 그것이 그렇게 반갑지도 않습니다.

 

본래는 오늘 날짜면 79회분부터 봤어야 옳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다음 회분을 보노라니 그것도 거기가 어디쯤인지도 모른 채 보노라니 이거 원 눈 빠지라 기다렸던 그 드라마 육남매가 아닌 겁니다.

그렇게 정작 봤어야 할 79분도 없이 80회분의 나머지 분(?)을 보긴 다 봤습니다.

 

'어휴^ 어떻게 일요일까지 기다리지???' 드라마를 다 본 소감이 고작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일어나서 컴퓨터로 가봤지요. 그랬는데 컴퓨터는 또 모니터만 꺼졌지 컴퓨터가 여태 켜졌네요.

 

그때야 밤새 컴퓨터에서 어떤 문제 하나 풀어보려고 쩔쩔맸던 그것이 떠오릅니다.

아하^ 그랬으니 곯아떨어진 거로구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제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최신가요'를 찾았는데 너무도 반가워서 그걸 제 컴퓨터에 복사했답니다.

그러고는 그걸 기존에 있던 노래와 합쳐서 제 컴퓨터에서 '연속 듣기'를 만들려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가 않더라고요.

 

거기 있는 노래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그걸 처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고 데이터베이스 만드는 프로그램 찾아서 설치한 뒤 그렇게 데이터로 뽑았지만,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편집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예전에 했던 거처럼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쓰지도 않는 한글(한셀 2018)을 다시 깔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려 천 곡도 넘는 분량을 편집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이것도 완전히 엉망진창 그대로지 뭡니까?

그 까닭을 살폈더니 그제야 그런 이유를 알겠습니다.

 

노래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려면 노래 제목 간 쉼표로 구분해서 만드는데 세상에 대중가요 노래 제목에 쉼표가 들어간 노래가 수두룩했었습니다.

실제로 그 노래 제목에 쉼표(가령 그 노래 제목이 '가, 고,파' 등과 같은 노래)가 들었는지 아니면, 유튜브에 올리면서 그렇게 조작해서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 제목에 쉼표가 들었거나 또 다른 예로는 노래 확장자 앞으로 빈칸(가령 '가고파 .mp3' 등등의 노래 제목)이 들어가 만들어진 데이터베이스가 무용지물 되게 했답니다.

 

이럴 때 '파일 제목 바꾸는 프로그램'인 'DarkNamer'를 잘 굴리기만 하면 가능했는데 그 사용법을 제대로 못 익혀서 밤새도록 애먼 데서 그런 노래들 제목 바꿔보려고 별짓을 다 했어요.

밤새도록 그러다가 새벽녘에 겨우 그 답을 찾았답니다. 'DarkNamer'에서 '문자열 바꾸기'를 했다면, 그 복잡한 이름 간단하게 해결했을 걸 왜 그렇게 헤맸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제가 돌대가린 돌대가린가 봅니다. 대가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데 이건 손발을 넘어 대가리 그 자체가 빠개질 만큼 아팠으니 원!!!

 

어쨌든지, 그런 까닭으로 고생깨나 하다가 새벽녘에 겨우 천여 곡(정확히 1760곡) 그걸 무작위로 계속 들을 수 있게끔 웹 문서를 잡았네요.

그런 이유로 그토록 목매달고 기다렸던 '제 목숨 같은 드라마(?) - 육남매' 79회, 80회분을 제대로 못 보고 놓쳤던 거예요.

 

아 그랬는데 컴퓨터에서 육남매 보고 나면 늘 새로 고쳤던 육남매의 편성표를 살피면서 눈이 번쩍 띕니다.

'음, 으음^ 저녁에 또 볼 수가 있지~이!'

 

인제 저녁에 또 할 테니까 돌아올 일요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제가 살판이 났습니다.

'앗싸~ 좋다! 얼씨구 좋다 아~^^^'

 

~ 육남매 그날 저녁에도 한다니까 ~

 

 

 

Posted by 류중근
,

와~ 케이웨더의 실시간 날씨 위젯(윈도우 바탕화면 용) 정말 좋네요.

 

 

비는 내린다는데 시골 갈 일이 있어 그곳 날씨는 어떨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서 날씨를 검색했는데 거기 네이버 날씨를 비롯하여 몇 개의 링크가 잡히더군요.

 

그래서 기왕이면 그 모두를 제 오프라인의 웹 문서에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건 뒤엔 거기 링크들 하나하나 들어가 봤지요.

 

가장 먼저 네이버에서부터 말입니다. 그렇게 그 정보를 확인하는 마지막이 케이웨더였는데 의외로 그곳 정보가 제 느낌으론 개중에 젤 낫데요.

그래서 애초의 맨 처음 링크였던 네이버 날씨 자리를 그놈으로 갈아치우고는 그 세세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 그야말로 행운의 날씨 위젯을 찾았던 겁니다.

 

지금은 아마도 없어졌을지도 모르는데 윈도우7 자체에도 바탕화면 위젯이 전엔 있었는데 그것들 모두 하나같이 별 볼 일이 없었기에 여기 위젯에도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맘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놈 내려받아서 설치한 뒤 열어보니까 이건 완전히 제가 땡 잡은 거지 뭡니까?

 

이것 케이웨더 홈페이지 그 겉모양에선 얼른 안 보일 겁니다. 아래 경로를 찾아 들어가면 있는데 여러분도 한번 찾아가서 살펴보세요.

 

- 케이웨더 홈페이지 / 사이트맵 / 고객서비스 / 윈도우 위젯 / 케이웨더 윈도우 위젯 다운받기 -

- 케이웨더 홈페이지: http://www.kweather.co.kr/main/main.html -

- 위젯 내려받는 링크 주소: http://www.kweather.co.kr/service/widget_down.php -

- 현재 위젯의 이름과 크기: Kweather_Widget_1.1_Setup.exe(4.21MB) -

 

 

~ 케이웨더 날씨 위젯 ~

 

 

 

Posted by 류중근
,

아~ 육남매 내 예상대로 그 일정 막판까지 변함없이 내보냈으면 좋겠다.

 

 

날이 제법 밝았다고 느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여태 켜둔 전등을 끄고 커튼 젖혀서 창문을 열었더니 열자마자 재채기가 확 스며듭니다.

시골 다녀온 일로 지쳤던지 어젯밤은 웬일로 잠든 시각이 빨랐습니다.

 

그런 까닭에 노인네로 진화했는지 이 몸도 서너 시쯤에 벌써 잠이 깨지 뭡니까?

세면대에서 그냥 맨숭맨숭 얼굴 문지르는데 오늘이 노동절 쉬는 날이란 게 느껴집니다.

 

컴퓨터에 앉아 별다른 것 떠오른 것도 없었지만, 이때쯤이면 상투적으로 들어서는 그 신호 하나가 자연스럽게 밀려듭니다.

'5, 6공의 전두환·노태우 시절'이 그림자처럼 달라붙고 그 그림자 뒤로 또 '공안정국'이 망령처럼 달라붙었는데…

그 모든 게 어느덧 추억이 되고 가물가물해서 망상이 됐네요.

 

지금은 50대의 초중반이 됐거나 그 시절의 원조였던 50대 말년이나 혹은 60대 초반에 그 시절은 회한이 참 많은 날이었을 겁니다.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마저도 서울 잡히지 않고 서울 하늘 아래서 외쳐보자고 했던 4.30 집회가 그 시절의 아이콘이 됐는데 그 모든 과정을 깊숙이 개입하고 계획했던 당사자들은 오죽할까요?

몰래몰래 올라가다가 고속버스에서 불심 검문에 잡히기도 했고 서울 안에서도 산 넘고 물 건너 참으로 고생도 많았던 시절입니다.

 

너무 가물거려서 다음 검색에서 4.30을 치고 들어갔더니 '전노협 백서(http://wbook.liso.net/)'에서 언급한 어떤 글 하나가 걸려듭니다.

그것 자세히 읽어보려고 했으나 그 내용 워낙 제 수준을 넘어선 분야라서 이내 그 재미가 사그라지데요.

 

그러면서 그 관심이 엉뚱하게도 '육남매'로 옮겨졌어요.

'오늘도 육남매 하려나?'

얼른 하이라이트TV(http://www.highlighttv.co.kr/)에 들어가서 그 편성표부터 들여다봤죠.

오^ 합니다. 변함없이 오늘도 육남매 합니다.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대번에 그간에 만들어둔 예상 일정표를 다시 만들어요.

이 일정표가 제 예상대로 꾸준히 방영된다면 6월 첫 주 월요일에 육남매 100째 마지막 분이 방영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다시 또 잡아야지요.

 

그것 63회분이 나오기 전부터 몇 번이나 바꿔왔는데 또 바뀌면 바꾸는 거지요.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다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 본 뒤라야 그 시절의 어여쁜 육남매 출연진들이 지금 뭘 하고 계실지 알아볼 작정입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런 궁금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 미리 알고 나면 아직 보지 못한 '육남매'에 대한 저의 환상이 깨질 것도 같기에 갈 때까지 최대한 참으려는 거고요.

 

~ 그리움에 대하여 ~

 

 

 

Posted by 류중근
,

우리 아버지 하늘로 가셨을까? 더 멀리 가셨을까?

 

 

인부들이 아침 일찍 와서 기다릴 거라면서 여덟 시까지는 내려오라고 시골에서 이번 일(가족 묘원 설치에 관해 그 전반을 다루는 일)을 도맡아서 꾸려가시는 시골 사촌 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사는 광주 집에서 시골 형님이 사는 고흥의 형님댁까지 가려면 아무리 빠듯하게 잡아도 두 시간 반 남짓은 걸릴 거 같았습니다.

 

그랬기에 그제 저녁엔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버티다가 어제 새벽 두 시 반에서 세 시쯤에 먹은 라면 한 그릇이 그 새벽부터 일 마치고 올라오는 내내 얼마나 사람 불안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다섯 시쯤엔 출발해야겠기에 그 시각에 건넌 방의 동생을 마구 깨웠지요.

 

우리 막냇동생 공장에서 크게 산재를 당한 거가 벌써 10년 세월도 더 지났건만, 지금도 퇴근길엔 꼭 병원에 들러서 물리치료(재활치료)를 받는 중이라 깊은 신음을 토하면서 겨우 추스르며 일어나데요.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엄청나게 졸려오는데 제가 깜빡깜빡 조는 동안 운전하는 동생마저 졸아버리면 세상만사 끝날 것이기에 그 불안도 대개 컸던 순간에 계속됐었고…

동생 놈의 산재 후유증으로 유독 눈에 보이는 것이 오른 다리입니다. 해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조수석에서 동생의 그런 다리에 자꾸만 신경이 가는 거예요.

 

어찌 된 까닭인지 평상시 유독 그 오른쪽 다리에 쥐가 자주 내렸으니까…

운전 중에 쥐가 내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하기도 싫고 정말이지 그것 끔찍하잖아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않았기에 그 자격마저도 잃었겠지만, 한때 저는 1종 보통 면허증을 갖고 있었거든요.

 

친구 놈이 저 차를 내줘서 두세 번 몰아본 거며 면허 시험장 실기 시험에서 두세 번 떨어진 까닭에 단번에 붙은 놈보다 더 몰았다면 더 몬 경험이 전부인 제가 자동 변속장치가 달린 승용차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기껏해야 트럭 몇 차례 몰았던 게 유일한 실무 경험일 뿐인 제가 말입니다.

 

- 야! 오른발 맨 오른쪽이 액셀, 그 옆으로 가운데가 브레이크, 그러고 왼발이 클러치냐? -

어머 세상에 자동엔 클러치도 없답니다. 그러면 클러치도 없이 어떻게 변속하지? 궁금해서 그것마저 물었는데 잘 안 들렸는지 대답했는데도 제가 못 들었는지 그 또한,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제 몸에서 조금이라도 말귀를 알아먹을 수 있는 놈이 오른쪽 귀뿐인데 하필이면 조수석이 오른쪽에 있으니 그쪽 창문이 열렸거나 하면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온 누리가 어수선하거든요.

 

그러면 우리 막냇동생 하필이면 오른 다리 고장이 큰 놈인데 모는 승용차 오른 다리에 조작 틀이 다 달렸다니^ 허허~ 그것 처음 알았고 또 놀랐습니다.

그래서 유독 오른쪽에만 쥐가 자주 내린다고 동생이 그럽니다.

 

그 졸음을 다 쫓으면서 중간에 딱 한 번 들른 휴게실에서도 소변만 보고 바로 출발했었습니다.

그렇게 죽자사자 달렸더니 얼마나 내 달렸는지 광주 우리 집에서 6시에 출발했는데 막상 고흥의 목적지까지 두 시간도 채 안 걸려 들어갔답니다.

 

일 보시는 형님댁(큰댁)에 먼저 들러 인사 여쭙고는 얼른 나와서 거기서 100m 거리쯤의 작은댁에 들러서 온갖 과로로 앓고 계시는 작은 어머니를 비롯하여 작은아버지께도 인사 여쭙고 돌아왔지요.

그러고는 우리 둘 다 밥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도 오래간만에 시골에 들렀기에 우리 사정만 생각하여 차려주시는 형수님 성의를 봐서라도 마냥 싫은 태도 못 내겠고, 아주 적은 양이나마 한술씩 떴던 게 그러잖아도 쏟아지는 잠을 더욱 부추겼답니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기에 얼마간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일해주실 아저씨 두 분(인부들)이 오셨습니다.

우리 차가 먼저 가고 그분들이 뒤따르게 해서 마침내 아버지 누워계시는 옛 고향 집 곁의 공동묘지를 찾아갔지요.

 

공동묘지 밑으로 난 큰 신작로에서 묘지가 시작하는데 아버지 산소는 거기서도 거의 가장 적막하고 높은 부위로 봐도 무방할 신작로에서 산 능선 쪽으로 100m 지점(공동묘지 맨 위쪽 지점)에 있습니다.

거긴 수풀 우거지고 수목마저 빽빽하기에 거기로만 봐선 누구도 거기가 공동묘지 안이라고 못 느낄 만큼 험준(?)한 곳이기도 해요.

 

그런 곳에 있던 아버지의 산소 - 얼마나 벌거숭이였던지 40여 년 거의 해마다 그 벌거숭이 바꿔보려고 애썼는지 모릅니다.

잔디 닮은꼴의 풀(잡초) 아무리 떼어다 심어봐도 다음 해에 가보면 말짱 도루묵이라서 그 허탈함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오죽했으면 작년 가을에 동생 놈이 인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자며 잔디 씨를 사 왔습니다.

우린(어머니 나 그리고 막냇동생) 그걸 마치 논밭에 씨앗 파종하듯이 산소 곳곳을 파 헤집으면서 뿌리고 심었답니다.

 

그러고서 이번에 올라가는 길이었지요. 마침내 산소에 도착해서는 동생과 나 얼마나 놀랐던지 서로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묘지 곳곳에 풀이 무성하지 뭡니까? - 이건 우리를 위해 준비한 하늘의 기적입니다. -

 

~ 그리움에 대하여 - 01 ~

 

우리 놀라는 것 아랑곳하지도 않고 일꾼들은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 아버지 형상 인제 다시는 볼 수도 없을 거기에 거기 따라 왔다는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저씨들께 헤아려줄 걸 권했더니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알아서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

 

우리 동생도 마찬가지지만, 저로선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깊이 팠습니다. 얼마쯤 들어가면 아버지 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우리들(동생과 나)의 그 꿈은 너무나도 철없는 망상이 되더라고요.

- 42년 세월 동안 관이 그대로 남았을 리가 절대로 없을 터인데 우린 그걸 몰랐으니까 -

 

평지에 이를 때까지 파내는 건 당연하겠고요, 그러고도 거의 어른들 허벅지가 다 들어갈 만큼 파 들어가니까 드디어 흙의 색깔이 변해서 굴착되는 겁니다.

아저씨들 담배 두 세대 무는 시간 빼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내 팠으니까 아마 두 시간은 너끈히 팠을 겁니다.

 

드디어 아버지의 그것이 조금씩 드러나는 겁니다.

그것도 온갖 옷가지에 실타래처럼 엉켜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상상하길 십자가만 없지 십자가에 묶인 열십자 대문자로 유골이 놓였을 거로 상상했었지 이렇게 실타래처럼 엉켜서 거기서 일일이 떼는 거가 그 일의 주업이 될 줄은 상상을 넘어 아버지를 맞이하는 죄스러움이요, 몰랐던 거에 대한 치욕이었답니다.

 

아버지를 만지고픈 아련한 기대 아버지를 느끼고픈 달콤한 로맨스~

그건 순식간에 '우리 아버지 손톱 하나라도 허투루 해선 안 되겠다. 우리 아버지 머리털 하나라도 여기 두고 갈 순 없다!' 그런 각오로 그런 다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실재론 손톱자국도 머리털 한 올도 안 보였지만, 엉겨 붙은 그 옷가지와 흙더미에서 뼛조각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이 잡듯이 세심하게 뒤지고 발라냈습니다.

 

살아서는 아버지 등골 휘게 하여 결국은 저세상으로 보냈었던 제가 인제 와서는 저세상의 아버지를 끄집어내 그 뼛속까지 발려야 하는 사정이라니… 아~

 

한참을 그리 하고는 인제는 됐다 싶기에 파냈던 자리 멀끔하게 되묻었습니다.

 

아~ 40여 년 전 꽝꽝 묻어야 아버지 저세상 편히 간다기에 초등학교 육학년의 발로 꽉꽉 밟으며 묻었던 그 자리 주변 휑했었는데 어느덧 수풀 수목으로 밀림 돼버렸네요.

그리고 벌초 올 때마다 주변 잡목 다 베어버리고 동백나무를 닮은 동백 살 나무(우린 그렇게 불렀는데 이것 실제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개 동백나문지 산 동백나문지 그럴지도 모르지만,)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산소가 워낙 높은 곳, 험한 곳에 있기에 사지 올곧지 못한 제가 올라올 때면 금방이라도 온몸이 후줄근 해지기에 얼른 웃통을 벗어 저기 동백 살에 걸어두곤 했었는데요.

인제 아버지도 떠난 자리 홀로 그 자리 정승처럼 지키고 섰겠네요.

 

~ 그리움에 대하여 - 02 ~

살아생전 하늘만큼 땅만큼 컸던 우리 아버지의 얼굴 그 자리가 너무나도 작았습니다.

요술 부린 듯 작았습니다. 제 주먹보다도 작아진 아버지의 머리를 보는 순간!

처음엔 놀라서 숨이 막혔고 그걸 가다듬자 이내 눈물 왈칵 쏟아지려는 것!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 자리에 경사가 있었기에 그러잖아도 자꾸만 넘어질 뻔했기에

이번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 버둥대는 양 엉거주춤 자리 피해서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삼켰답니다.

아~ 불쌍한 울 아버지 왜 그렇게 작아지셨나요?

무엇이 그렇게 아버지를 쪼그려뜨리셨나요?

 

드디어 아버지 모실 곳(문중의 가족 묘원)에 아버지 모셔왔습니다. 거기 모실 다른 분들은 이미 다 유골함에 안착했지만, 아버진 방금 벌거숭이 골육(?)으로 들어오셨기에 그 마지막 관문(간이 화장 설비에서 사르는 일)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사진을 그대로 올려선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거기 매우 소중한 자리 가리겠습니다.

전에 어디선가 봤는데 모자이크 지우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걸로도 소용없게끔 아예 그 자릴 다른 칠로 메울게요.

 

~ 그리움에 대하여 - 03 ~

 

아무래도 이건 괜찮겠지요? 뭇 서민들에겐 돌아가신 분 평장 형식으로 '봉안'함이 대략 어떤 형탠지 궁금하기도 할 터겠고요.

저기 작은 평장 형식의 독립 한 객실 왼쪽이 아버지 유골함이고요, 오른쪽 빈자리가 함께 사는 우리 어머님 자리라네요.

 

~ 그리움에 대하여 - 04 ~

 

곧 저기 뚜껑을 덮고요, 그 위로는 흙을 깔지 않고 우리 가족 묘원에선 자갈을 깔았답니다.

그 모두를 마치고 주위로 잔디 무더기를 옮겨주는 등 대략 한 시간가량 거기 머물다가 우린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또 많이 깨우치면서 감동도 컸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40년을 없었던 잔디 - 물론 일꾼들 말씀으론 그게 잔디가 아니고 짐승들 사료로 쓰는 풀씨였기에 싹이 텄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 그것이라도 인제 와서 났다는 거가 어쩌면 우리 아버지(영혼)가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모두에 남기려 했던 증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까 그 자동 변속기 승용차 작동 원리도 둘이 올라오면서 나눴던 얘기 중 하나였음을 밝히면서 이제는 이 글도 마치렵니다.

 

- 아버지~ 인제 거기 새 둥지에서 아버지 고향 어르신 모두와 함께 영생을 훨훨 나시옵소서!!! -

- 아버지~ 날마다 좋은 날~ -

 

 

Posted by 류중근
,

우와~ 오늘도 누군가가 내 홈피를 찾아줬어!

 

 

자정을 넘었기에 이 그림 떴을 때가 인제 어제가 되었지만, 정말이지 홈피의 게시판마다 로그인하려고 열면서 이 자리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잖아도 평소에도 이 사이트는 다른 사이트 거의 없는 거에 비교하면 방문자가 종종 있었던 터라 전혀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녔지만, 그 전날도 방문자가 있었기에 그 기대가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비'라고 이름 매겨준 홈피에서 말입니다.

 

~ 그리움에 대하여 ~

 

여기를 비롯해 방문자가 거의 없는 제 홈피들입니다.

- http://hsmj.woobi.co.kr/ -

- http://hs7love.cafe24.com/ -

- http://l36310.dothome.co.kr/ -

 

그런 상황인데 누군가 찾아와서 글을 읽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에요.

 

그나저나 오늘은 여러 감정이 교차할 거 같습니다.

 

고향 마을 시골의 공동묘지에 계시는 저의 선친을 오늘은 이장하기로 했거든요.

1976년 그해 가을 저는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가을 운동회 막판 연습을 하던 중이었는데 고향 마을 아는 형님께서 급하게 자전거를 몰고서 학교를 찾았답니다.

과로로 쓰러진 아버지 마땅히 치료할 만한 여력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에서 이불 덥고 누워계셨는데 그날따라 호흡이 부쩍 가빠졌다네요.

요즘 말로 치면 매우 위급해졌다는 이야길 거예요.

 

그날 난생처음 남의 자전거 짐칸에 앉아 부랴부랴 집으로 갔는데 마침 아직 돌아가시진 않았데요.

그 시절 평상시 호흡 그대로 이삼십 초 만에 한 번씩 엄청나게 크게 호흡하는 걸 빼곤 별로 모르겠기에 제가 방으로 들어가서 그것 확인하자마자 모두 마음이 놓이는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되자 저만 홀로 남은 꼴…

무릎 꿇고 앉아서 그저 바라보는 중…

그러다가 평상시 그 호흡보다 훨씬 길어졌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딱 한 번 달랑 한 음절의 호흡인지 신음인지도 모를 그 끊어지는 음향! '읔^'

그 시절 우리 동네 텔레비전 달랑 두 대밖에 없었던 그 시절 텔레비전 반공 드라마 '전우'에서 누군가 죽임당했을 때나 냈던 바로 그 음향과도 전혀 다를 것도 없었던 그 외마디 읔^

그 신음과 동시에 아버지 가슴에서 손을 얹혔지만, 일체의 반응도 없었습니다. 해서 이미 가셨음을 직감했지요.

'아버지~ 아버지~' 요즘에 와서야 아버지만, 그 당시엔 고흥 사투리 그 원초적 발음으로 그 이름 '아버지'를 두어 번 불러보긴 했어도…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전 눈물도 나지 않았고 소리 지를 엄두도 나지 않더라고요. 그럴 뿐만 아니라 무섭거나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그랬긴 했어도 문밖 어딘가에 있을 다른 가족에 알려주는 게 돌리라는 판단만은 들었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시고도 조금 지나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당시엔 마땅히 묻을 만한 자리도 없고 했으니 공동묘지에 묻혔던 겁니다.

해마다 아니면 2년에 걸쳐 두세 번 찾아서는 벌초도 하고 산소에 잔풀도 떠서 묻고 그런 노고고 아무런 소용도 없자 작년엔 산소 곳곳에 잔디 씨도 뿌리고 심고 그랬는데 아아~ 오늘은 거길 파내려는 상황입니다.

 

우리 선조 중 증조할아버지에서부터 그 밑으로의 선영을 모두 한군데로 옮겨 거기에 가족묘지를 꾸미기로 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며칠 전부터 그 작업에 들어갔는데 오늘 드디어 우리 선친의 차례가 왔다네요.

 

그 공동묘지가 수풀이 워낙 무성하니까 그 상황 자세히 모른 사람은 누구도 좀처럼 들어가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거기다가 남의 묘지가 어딨는 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늘은 작업하는 인부들에게 파내려는 선친의 산소를 일러주려고 내려가려고 하는 거예요.

 

가능하다면 아버지 유골도 만지거나 봤으면 하는데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틀림없이 파낸 뒤엔 화장해서 처리할 테니 인제 다시는 아버지 그 형상 찾을 길도 없잖겠습니까?

 

가신지 40년도 더 지난 우리 아버지…

어쩌면 무심한 고목처럼 퇴화한 퇴적층 바위처럼 그냥 스스럼없이 부서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이슬처럼 꺼지기 전에 꼭 한번은 어루만져서 보내드리고도 싶네요.

아~ 아버지. 나 때문에 그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Posted by 류중근
,

삭막한 내 가슴에 감수성을 입히려고

 

 

어쩌다가 이리도 말라 비틀어졌을까?

그 옛날 그래도 한때는 좋은 말글(시·수필·소설 등등) 만나면 그 가슴 나도 모르게 콩닥콩닥 뛰었었는데…

 

이리 좋은 글 만나도 때때로 자주 그냥 맹맹해지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런 순간이 많았음에도 저 자신의 삭막함을 반성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그도 어쩌다가 한두 번씩 '내가 어쩌다가 이리도 삭아버렸을까?' 탄식할 뿐…

 

지금의 집으로 이사 들기 전엔 우리 가족 매해 이삿짐을 쌌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유치원 옮겨야지 초등학교 옮겨야지 그랬기에 그 어린 것들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거예요.

 

그 시절이 대략 스무 해쯤 전의 이야깁니다.

그런 상황을 나열하고자 이런 글 쓰는 건 아니고요, 그 시절 제 얘길 하려는 건데…

 

병원에서 치료를 접고 나왔다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쓰러진 뒤 한참 뒤엔 도무지 나 자신 왜 그 자리에 누워있는지 그 까닭도 종잡을 수 없었기에 부끄러웠던 시절이 그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책이 정부에서 중증장애인을 상대로 하는 정책인데 '직업 재활훈련'이 아녔을까 여겨지네요.

 

학원을 오가는 교통비도 나오고 수강료도 무료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 죽자사자 걸음 연습을 해서 인제는 가까운 거리는 보조 용구(휠체어나 지팡이 대용의 작대기 등등) 없이도 움직거릴 만큼 성장(?)했지만, 약간은 두렵기도 했던 제안이었어요.

왜냐면 당시엔 죽었다가 깨도 홀로 시내버스에 오를 만큼 건실하질 못했으니까.

 

그랬지만, 다녔습니다. 6개월을 꼬박 택시 타고 다녔습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학원 다녔던 그 사태를 말하고자 함이에요.

컴퓨터 학원 어디를 가나 맨 처음은 키보드 타자 연습부터 하겠지요?

 

80년도 초반에 제가 '폐지 재생 공장'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거기 학원에서 내준 타자 연습용 교구(책자)가 꼭 그 옛날 재생 공장에서 만들었던 재생 종이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부담 없는 느낌의 재질이었는데 그런데도그 안의 어떤 내용은 제게 마치 황금 싸라기 같았답니다.

 

맨 처음 받자마자 그 책장을 펼쳤는데 그 안에 그것이 들었습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사실은 완전히 틀렸는데 검색을 통해 안 뒤 매우 흡사하게 바꿨습니다.), 그런 식의 문장이 쭉 나열됐던데 그 내용이 어찌나 살가웠던지 눈물 나지 가슴 뛰지 아~ 그 감동은 세상 그 뭐로도 대신할 수 없는 거였거든요.

네. 정지용의 '향수'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인터넷 뒤져보니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렸다는데 제가 다녔던 학교는 국어책에 그런 내용이 없었기에 놀란 그 가슴이 얼마나 후들거렸을까요?

 

소리를 제대로 못 듣지 거기다가 혀가 꼬여서 하고자 하는 말이 안 만들어지지 그런 상황이긴 했어도 할 수 있는 모든 성의를 다해 배워보려고 했지만, 그 마지막까지 제 실력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쉬는 날을 빼곤 거의 날마다 나다녔기에 노인데 골방 신세 면한 거가 거기 학원에 다녔던 보람이라면 보람이겠습니다.

 

끝으로 정지용의 그 향수를 인터넷 뒤져서 베끼면서 맺을게요.

그 시어가 오늘 잠시나마 저의 감수성에 도랑을 내줬으면 합니다.

 

-----------------------------------------------------------------------------------------

 

- 향수 -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오^ 쓰다 보니까 이 글이 길어졌네요.

마침 제 홈피 게시판에 글 쓴지도 좀 돼서 뭘 쓸까를 고심했는데 기왕에 이만큼 써버렸으니 거기 게시판(s)에도 이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인용한 윗글 '향수'의 출처는 검색엔진 '다음'입니다.

 

 

Posted by 류중근
,

너에게 품위 있는 이별을 선물해줄게.

 

 

방에서 뭔가를 찾는 중인데 인터폰 소리가 났습니다.

평소처럼 그냥 무심코 가서 현관문 열어 보니 웬 중년의 건장한 남자가 제 이름 부르면서 맞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택배라면서 아담한 골판지 상자를 건네면서 떠나려고 합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미안해지는 거 있죠?

거듭거듭 떠날 때까지 연거푸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인사를 건넬 수밖에요.

 

택배로 물건을 자주 받는 편인데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주문하면서도 그랬지만, '연락이 안 닿으면 무조건 경비실에^' 이거나 혹시라도 연락이 닿으면 그럴 때도 '경비실에 맡겨두고 가라'고 당부하곤 했었는데 어찌 된 까닭인지 요번엔 그 상황을 미처 잡아내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 미안한 맘 오죽했겠습니까?

 

받자마자 그것이 고장 난 벽시계에 시계만 갈아치우려고 산 저가의 벽시계인 줄 뻔히 알았습니다.

택배 기사님 돌려보낸 뒤 방으로 들고 와서는 차분히 준비했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또 확실하게 해두려고 말입니다.

 

몸과 맘을 다 잡기 위해 특별히 몸에는 최소한만 걸치고서 필요한 연장이며 도구를 꺼내 놓고는 물도 한 모금 들이켰지요.

 

그런 제 맘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이번에 들어온 시계에 구형 바늘을 꽂으려는데 그 굵기에서부터 안 맞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늘은 새 놈을 그대로 쓰기로 했죠. 대신 시계와 시계의 커다랗고 둥근 번호판을 고정하는 시계의 바늘 맨 밑에 들어갈 암나사는 구형 시계 것을 쓰기로 했답니다.

 

새 놈은 그 가격이 만만한 비용(5,400원)이 아녔는데도 시계 판이며 그 암나사는 어쩐지 그 값어치에 못 미친 듯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구형의 거기가 너무 짱짱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대충 맞춘 뒤 건전지 끼워봤더니 요놈이 어째서 비실비실합니다.

여분으로 꺼내 둔 나머지 두 개를 연거푸 꽂았는데 개중 하나만 일사천리로 돌았을 뿐 나머지 하나도 영 맥을 못 추더라고요.

쉽게 말해서 건전지 약이 다 떨어진 까닭이지요.

 

하여, 개중 쓸만한 놈을 그대로 끼워둔 채 나머진 폐건전지 함에 넣어버렸지요.

그러고는 구형 벽시계에 유리도 덮고 뒤쪽에 나사들 모두 끼운 뒤 뒤쪽 덮개마저 밀어 넣어 일일이 약간 크고 긴 나사를 얇은 와셔 두 개씩 덧대어 채웠답니다.

 

그렇게 하여 제 방 벽시계 자리에 걸어 두고는 방안을 정리해 갔지요.

그러다가 문득 이번에 들어왔다가 인제는 나가야 할 놈(신형 벽시계) 껍데기가 너무나도 처량해 보였습니다.

하여 '아아~ 인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기다려라! 너에게 품위 있는 이별을 선물해줄게. 기다리세요~'

 

그렇게 하여 거기 껍데기에 고장 난 구형 벽시계를 박은 뒤 그 바늘마저도 최고의 벽시계 얼짱 각을 심었답니다.

 

~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01 ~

 

 

~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 02 ~

 

 

 

Posted by 류중근
,

앞으론 엔터키 일자형 키보드가 대세일 것만 같으니까 인제 내 몸을 그놈에 길들어야겠다.

 

 

정확히 언제였을진 모르겠는데 아마도 얼추 한 달은 됐을 성싶습니다.

당시에 쓰던 컴퓨터의 키보드에 특정 키가 자꾸만 거치적거렸습니다.

 

그래서 쇼핑몰에서 채 5천 원을 다 안 주고도 살만한 자판으로 두 개나 샀던 겁니다.

그랬는데 그것들 제가 운이 없었던지 싼 게 비지떡이라서 그랬던지 키감이 너무나도 안 좋았고 그 외에도 여러 면에서 편하게 쓸만한 물건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또 이번엔 맘먹고서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로 다소 비싼(한 개에 7, 8천 원 이상 가는 키보드) 물건을 사들였답니다.

그랬는데 이놈의 엔터키가 일자형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단 한 번도 엔터키가 역 니은형이 아닌 걸 써본 적이 없는 탓이기에 어떤 그림 들 편집하면서 마지막으로 엔터키를 눌렀을 때 비로소 알았거든요.

엔터키를 누르니까 난데없이 편집 창의 어느 입력란에 '\' 기호가 들어갔지 뭐예요. 그래서 그놈이 일자형이란 걸 알았어요.

 

처음엔 재수 없게도 유독 제게 보낸 물건만 불량품을 보낸 줄 알았습니다.

무척 불편했는데 그래도 기왕에 산 것이니까 참고 또 참으면서 써보려고 했었거든요.

 

그랬었는데 어제는 도저히 안 되겠는 거 있죠?

그래서 버려야 할 건 버리기로 하고 집에서 쓰지 않는 키보드 대부분을 들춰 메고 아파트 아래 전산용품 수거함에 넣고 들어왔답니다.

 

그러고는 아직은 괜찮다 싶기에 버리지 않았던 놈을 꺼내서는 컴퓨터에 꽂으려 했습니다.

막상 그렇게 꽂으려는 찰나에 문득 자판이 지저분해 보여서 좀 전에 여러 키보드와 함께 버렸던 키보드 덮개가 생각나는 겁니다.

 

그래서 얼른 아파트를 내려가 전산용품 수거함을 열었어요.

거기에 쓰지 않는 모니터나 그런 따위 넣어두면 보통은 일주일도 가더라고요.

그랬기에 넉넉한 맘으로 열었는데 그 자리가 글쎄 깨끗한 거 있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짧은 순간에 그걸 벌써 털어간 모양입니다.

우리 아파트로 올라와서는 집안 여기저기를 뒤졌더니 마침 점퍼가 달린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진공 포장용 비닐봉지'가 보이는 겁니다.

처음엔 그것 두 장을 뽑아 와서는 키보드 양쪽에서 끼운 뒤 고정해보려고 그랬습니다.

 

그랬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굳이 두 장 모두를 쓸 것도 없이 한 장으로도 쫙 쪼개어 덮으면 충분할 거로 여겨지데요.

그 판단에 실제로 그렇게 쪼갠 뒤에 키보드를 덮고는 덮개의 양 끝을 비닐 테이프로 당겨서 붙였더니 정말이지 깔끔한 키보드 덮개가 됐습니다.

 

거기까지 하고서 키보드 뒤쪽의 받침대를 빼려니 한쪽은 두꺼운 점퍼 선과 겹쳐서 그 모양새가 안 나옵니다.

하여 가위를 들고 와서 그 부분만 살짝 오려낸 뒤 폈더니 안성맞춤이 따로 없데요.

 

이렇게 하고서 막상 컴퓨터 본체에 꽂으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 진짜 나한테 보낸 키보드만 이랬던 거야? -

- 아니면 이런 식의 키보드도 있는 거야? -

 

그 궁금증부터 해결한 뒤 꽂아도 늦지 않을 거란 생각이 스치는 겁니다.

즉시 구글이나 다음을 열고서 검색해 봤어요.

 

처음엔 '키보드의 종류' 혹은 '키보드의 형태' 이런 따위의 말로 검색해 보는데 거기 검색된 내용에 이런 말이 마구 섞였습니다.

가령 '일자형 키보드', '역 니은형 키보드', 'ㄱ자형 키보드'… 그런 따위의 말들이 말이에요.

 

난생처음으로 그런 단어를 접하면서 드디어 저도 키보드 형태에 또 다른 거가 있음을 깨우쳤지요.

그러면서 개중에 정말 도움 될 만한 어떤 글을 골라서 읽었더니 제가 여태 써왔던 방식의 키보드(엔터키가 역 니은형 키보드)는 주로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많이 써왔는데 점차 일자형 키보드로 그 추세가 바뀔 거란 이야기였습니다.

서구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는 이야기도 들었었고요.

 

어쩐지 그 내용이 믿음이 갔습니다.

'아아~ 그렇다면 바꿀 게 아니로군. 이를 어쩐다???'

 

더 고민한 것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닥쳐올 운명이라면 받아안은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휴~ 지금 이 순간에도 엔터키를 치면 자꾸만 '\'가 내려오지만, 그래도 이겨내야겠습니다.

 

어차피 앞으론 엔터키 일자형 키보드가 대세일 것만 같으니까 인제 내 몸을 그놈에 길들여 이겨내야겠습니다.

 

~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

 

 

 

Posted by 류중근
,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느닷없이 없어지니까 그 마음 매우 헛헛했습니다.

 

 

며칠 전 어느 날입니다. 동생과 나 부엌과 거실에서 뭔가를 만들려고 분주하게 설쳤을 때였습니다.

무슨 말끝에선가 어머니 별안간 자기 방에 벽시계가 며칠째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소릴 듣고선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서 어머님 방에서 문제의 그 벽시계를 내려왔습니다.

그놈의 시계 고장이라고 해봐야 AA 건전지 하나면 끝날 일이었거든요.

 

문제는 건전지를 넣기 전에 시곗바늘을 현재 시각에 맞게끔 돌려놓고 건전지를 넣던지 건전지 박은 뒤라도 그 시각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었지요.

한데, 그것 돌려서 맞추는 회전자가 아주 오래전에 부서져서 없어졌고 그 자리 병아리 눈곱만큼의 작은 흔적 정도만 남았으니 그런 상태에서 시각 맞추는 일이 여간 곤란한 정도가 아녔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제 방으로 가져와서는 제 시계를 때어 부엌에 걸고 부엌 시계를 어머니 방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저는 기왕에 가져왔으니까 시계에서 나사를 다 풀어서 초침부터 시침까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시각에 맞춰둔 뒤 조립하고는 나중에 그 시각이 돌아오면 잽싸게 건전지를 박을 생각이었는데요, 막상 풀고 나니까 쓸데없는 욕심이 일지 뭡니까?

개미 눈물만큼 흔적만 남은 시각 맞추는 회전자에 순간접착제 부어 튼튼하게 자루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맘으로 창고 주변 여기저기를 뒤져서 그런 거에 딱 좋을 만한 플라스틱 조각을 찾은 뒤 그 흔적에 꼭 끼이게끔 흠집마저 만들어서 흔적 위로 올린 다음 문제의 강력 접착제를 송곳 끝에 조금 묻혀서 거기에 적시려고 했습니다.

한방에 적시려고 했는데 흔들리는 제 몸이 어디 정상이었을 때의 정밀도와 용량을 투입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자신감만은 하늘만큼 땅만큼 크고 웅장했었는데~ 휴~~~

 

너무 많이 묻혀버렸습니다. 그렇게 많이 쏟아버리면 그것이 제구실은커녕 그 회전자가 시계와 독립해서 작동해야 함에도 시계에 철썩 달라붙을 판국이니 정말이지 난감하게 돼버렸습니다.

얼른 화장지를 잘라낸 뒤 접어서 그곳에 밀어 넣은 뒤 묻혀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벌써 손가락 마디 끝에 그것이 묻어서 끈적거리기까지 하는 거예요.

이것 미치고 팔딱 뛸 노릇입니다. 어떡해서든지 원상태로 돌리려고 했지만, 이미 원상태로 회복하긴 어렵게 됐습니다.

 

인제는 그것 초침마저 처음 일이십 초는 어떻게 돌기도 했지만, 이내 멈춰선 뒤 그 자리에서만 앞뒤로 까딱거리는 겁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기에 어머님 시계를 하나 사드리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어머님 방에 적당할 걸(무소음 대형 벽시계) 찾아보니까 그래도 만오천 원은 들여야겠데요.

그렇게 사나흘을 들여서 어머니 방 시계를 교체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 있던 시계를 막냇동생 방으로 옮겼고요, 제 방에는 빌어먹을 빈털터리 시계를 올려놓으려니 짜증-짜증 왕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랬어도 어떻게 해서든 고쳐볼 맘으로 몇 번이나 풀고 조이길 반복했는데 이거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날(지난주 금요일-4월 20일) 껍데기는 이놈으로 쓰고 안쪽의 시계만이라도 갈아볼 요량으로 또다시 쇼핑몰을 뒤졌답니다.

그렇게 해서 그날 택배비 보태 8천 원이 약간 모자란 놈으로 하나를 주문했지요.

 

좀 전에 배송 여부를 확인했더니 오늘에서야 드디어 택배사에 맡겨졌습니다.

밤새 달려서 잘하면 내일쯤 늦어도 모레는 우리 집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 가서 물건을 본 뒤에 결정해야겠습니다.

지금 맘 같아선 새로 온 시계에서 오로지 시계 몸통만 빼낸 뒤 놈을 지금의 맛이 간 시계 껍데기에 끼운 뒤 각종 바늘을 꽂고 건전지 꽂아 감쪽같이 새것으로 만들고도 싶지만, 그게 어디 제 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테지만♣♣♣

 

~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 01 ~

 

 

~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 02 ~

 

 

 

Posted by 류중근
,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육남매 63회차

 

 

그것 보는 동안엔 끼니를 거를 정도를 심각한 건 아녔지만(왜냐면 인터넷에 연결하면 아무 때나 다시 볼 수 있었으니까), 62회차를 마지막으로 더는 볼 수 없게 되자 그때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세상 그 어디서라도 63회부터 마지막까지 연이어서 볼 수만 있다면, 그까짓 끼니 두세 끼쯤은 두말하지 않고 접을 수도 있었거든요.

 

그랬던 드라마 육남매 63회분을 인제 드디어 맘만 굳게 먹으면 볼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까먹지 말아야지 까먹지 말아야지…'

 

정작 그런 날들이 다가오면 어찌 된 셈인지 깜빡 졸기 일쑤였어요.

밤새 얼마나 설렜던지 도통 잠이 오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가 동이 다 터서야 그때 비로소 쏟아져 내리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깜빡 졸아서 허둥대거나 늦어버리곤 했었거든요.

오늘 밤도 어쩌면 그럴 개연성이 있지만(이미 이렇게 각오했으니 그 개연성 멀어질 수도), 그래도 마침 월, 화, 수에 매일매일 하는 재방송엔 아침을 지나 초저녁에도 한탕을 더 뛰어주고요, 그다음 일요일에 몰아서 여섯 편 모두를 때려줄 테니 그 걱정도 한결 덜합니다.

 

고마워요. 하이라이트TV^ 고맙습니다. 육남매!!!

 

~ 하이라이트TV에서 육남매의 편성표 일부 ~

 

 

 

Posted by 류중근
,